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타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특유의 성정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렇고 그런 인스타 감성류의' 에세이가 출판시장에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문학을 읽는다면 완전히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에세이를 읽었다. 친구가 전역 선물로 사 준 책이다. 선물로 준 책이니 당연히 읽어야 인지상정이다. 심지어 책 속에 짧은 편지도 적어서 주었다. 친구는 '단 한 번의 삶 속에 파덕이가 하고 싶은 일. 그 길 빛나는 꽃 길이 되리라 의심치 않아.'라는 격려의 한마디를 건네주었다.
김영하 작가의 책은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 하나를 읽은 게 전부였다. 치매노인의 시점에서 줄거리가 진행되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TV에 종종 얼굴을 비추는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핫한' 작가라는 점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별로 읽고 싶지 않기도 했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인스타 감성에 맞는 감성 에세이를 읽기에는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여겼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인스타 감성류의' 에세이는 아니였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 본인의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과 자신의 어린 시절(유년기와 청년기를 포함하여)을 주로 다루고 있다. 타인의 인생을 관음하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실 뾰족하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인생은 언제나 평탄했고, 어쩌다 조금 벅찬 일이 있고 어쩌다 조금 기쁜 일이 있었을 뿐이였다. 로스쿨 3년 수험생활은 '어쩌다 조금 벅찬 일'이었지만 내 삶을 부러뜨릴 만큼 힘든 일은 아니였다. 서울대학교, 로스쿨, 변호사시험 합격의 순간은 '어쩌다 조금 기쁜 일'이었는데, 사실은 주변 많은 사람들이 나의 합격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겼기 때문에 나조차도 엄청나게 기쁘지는 않았다. 그리 부유하지는 않지만 돈 때문에 내 인생의 선택지가 제한된다고 느껴보지도 못했다. 적당한 고난과 견딜만한 시련들만 있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 그리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느꼈다.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경험을 한 적도 없고, 삶의 낭떠러지에서 살아 돌아온 적도 없기 때문에, 자서전을 쓸 만한 사람도 아니고 내 삶에 대한 어떠한 기록을 남길 만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재수없는 말이지만 인생의 난이도를 1부터 100이라고 치면 지금까지 내 인생의 난이도는 10~20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적당히 평탄하게 살아온 '도련님(남들에게는 농민의 손자, 노동자의 아들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도련님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의 일대기가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단 한 번의 삶>에 나오는 작가의 삶을 보면 그렇게까지 굴곡진 삶을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는 중령 출신의 직업군인이었고, 당시 사회상과 군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돈 때문에 삶의 선택지를 제한받아 본 적도 없는, 적당한 중산층 정도의 유년기를 보낸 듯했다.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한 종합대학을 다니고,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작가가 되었다. 어찌 보면 적당히 평탄하게 살아온 도련님의 일대기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삶>은 자기자랑이나 건조한 사실의 서술에 머물지 않는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감상에 빠지게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가끔은 억척스러운 어머니, 때때로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아들의 모습은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글을 돌아보면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교훈적인 결말을 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내 행동을 반성하고, 어떠한 교훈을 얻고,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삶>의 여러 단편들을 보면 작가가 애써 교훈적인 결말을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라는 책 속의 몇 페이지들을 담담하게 서술할 뿐인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읽는 사람도 함께 과거로 빠져들게 한다. 그래, 내가 부모님께 처음 실망했던 것은 언제였을까?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위로를 건네는 '양산형' 에세이가 판을 치는 시장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막연한 위로를 억지로 내 입에 넣어준다고 한들 내일의 내가 바뀔 리는 없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아침 9시에 사람으로 가득 찬 지옥철을 타고 내키지 않는 출근길을 걸을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힘들 것이고, 대체로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때때로 과거를 돌아보며,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한 숨 돌릴 틈이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한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과거는 흘려 보내야 한다. 하지만 과거와 동떨어진 현재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현재만을 살아갈 수는 없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 쇼츠나 릴스를 생각없이 돌려보다 보면,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내 자신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뿐이다. 결국 어느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내리고, 나도 내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출근길에 다시 합류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단절되어 현재만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과거를 추억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에세이는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에세이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 속에서 문득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10분이고 20분이고 망상이든 잡념이든 상념이든 어떤 생각에 정신없이 빠지게 하는 그런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