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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일기(7):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

by 장파덕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스트레스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언행에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히 언행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완전히 거꾸로의 신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니 시쳇말로 '천재'들이 많았고, 나는 거기에 감히 낄 수조차 없는 '범부'였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변방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생각했던 것보다 사실 타인은 내게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삶의 신조의 변화로 인하여, 자기검열에서 한층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언행에 별 관심이 없다면 내가 나의 언행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의 수많은 플레이어, 아니 플레이어조차 아닌 NPC 중의 한 명이 하는 말을 누가 그렇게 귀 기울일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편하게, 다른 한 편으로는 내 마음대로 살았다. 남을 신경쓰지 않고 나의 방식대로 삶을 살았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노래를 부르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고 살았다. 내가 세상의 변방에 있다고 생각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내게 아주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내 바뀐 머리 스타일, 바뀐 패션이라든지 그런 외형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였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대학생 시절, 로스쿨생 시절 '너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돈다.'라는 말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런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세상의 변방에 있는데,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는 걸까? 그냥 여러 얘기를 하던 중에 나에 대한 얘기가 잠깐 튀어나왔다가 잠깐 사라진 거겠지. 나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데. 그리고 곧바로 잊어버렸다.


그러나 어느샌가 대학에서든 로스쿨에서든 부정할 수 없는 '이상한 놈'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부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부당한 평가에 대해 최소한의 항변조차 하지 않은 나의 과실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과실이라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off)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세상의 중심이 아닌 세상의 변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면서 무관심을 바라다니, 만용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고, 하고 싶은 행동을 다 하고 살아서, 어쩌면 편하게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편안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면서 대놓고 보이는 곳에 '숨는' 어린아이처럼, 혹은 천적을 마주하고 모래더미 속에 대가리를 쳐박는 타조처럼,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다 하면서 정작 타인의 차가운 시선은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하나하나 의식하고 사는 것 역시 끔찍한 삶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역시 썩 좋은 삶은 아니라는 점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다. 어쨌거나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나는 세상의 중심도 아니지만 완전한 변방에 있지도 않다. 타인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매일 혀클리너를 사용하고, 샴푸만이 아니라 린스도 사용하고, 바디워시도 샤워할 때마다 사용하고, 세탁시에 섬유유연제를 사용하고, 가끔은 향수도 뿌리고, 최소한 무신사에서 유행하는 옷이라도 사 입고,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매서운 말, 혹은 너무 비굴한 말은 자제해야 한다. 무엇이든 중용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에 대하여 하는 말이 어쩌면 대체로는 가십에 불과한 말, 그야말로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나의 평판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내게 '요새 블로그 잘 보고 있어'라고 말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타인의 블로그를 그리 열심히 읽지 않는다. 종이매체가 아니라서 그런지 스마트폰으로는 아무래도 긴 글을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새 블로그 잘 보고 있어'라는 친구들의 말 역시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아는 상태에서 하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내 글을 꽤나 정독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글을 자세히 읽어봐야지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단순 호기심일수도 있을 것이고,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일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관심이라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타인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살아야겠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야겠다. 여전히 평판 따위에 얽매이며 살아가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이웃이 되기 위해 필요한 애정어린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할 테다. 어쩌면 내가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보다,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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