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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일기 (6): 연봉 is 뭔들

by 장파덕

2025년 8월부터 연봉이 거의 3배 가까이 늘게 되었다. 지난 달에는 로펌에서 첫 월급을 받기도 하였다. 다들 내게 '로펌에서 첫 월급을 받은 기분이 어떠냐'라고 묻는다. 심지어 로펌의 같은 팀 어쏘 변호사님들도 첫 월급을 받은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군 시절과 비교하면 앞자리수가 수 차례 바뀐 금액을 받았다. 세전으로 따지면 월급의 자릿수부터가 차이난다. 그런데 생각보다 감흥이 크지 않았다. 일단, 지난 3년 동안 적게나마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장교로서 첫 월급을 받은 날이 오히려 내게는 더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드디어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게 태어났다. 우리 집은 부유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해외여행은 커녕 가족끼리 제주도 한 번 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적어도 학비를 부담해 주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는 환경이었다. 대학 시절에 기숙사비와 생활비, 교재비 등 필요한 비용은 부모님께서 모두 부담해 주셨고, 로스쿨 시절에는 3년 간 6천만 원이 넘는 학비와 생활비까지 모두 부담해 주셨다. 내가 '알바라도 하겠다.'라고 말하면 부모님께서는 '공부나 열심히 해서 빨리 돈이나 벌어라'라고 일축하시곤 했다(사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허락해 주셨겠지만, 내가 알바를 할 생각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 학자금대출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남들은 로스쿨을 졸업할 때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시작한다는데 나는 0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내가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한다는 것과 더불어 나름대로 나만의 재테크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빚이 있으면 빚부터 갚아야 하니, 재테크는 어려우니까. 아무튼 2022년 8월부터 다달이 정기적인 월급이 들어왔고, 당시 영내 간부숙소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전부 재테크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한 달에 얼마씩 모아서, 전역할 때 OOOO만 원은 갖고 나가야지'라는 목표와 함께.


비록 임관 첫 달에 세운 재테크 계획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토스인지 네이버페이인지, 신용카드를 만들고 첫 달에 얼마를 쓰면 15만 원을 돌려준다는 이벤트를 보고 신용카드를 만들어버린 탓이다. 신용카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초기에 세운 재테크 계획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나마 50만 원은 군 간부 적금을 넣어두어서 무조건 넣어야 했지만, 5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카드값(과 최소한의 비상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나마 명절상여금, 성과상여금과 자잘한 수당들이 들어와서 조금씩 주식투자도 하고 비상금(전역때까지 비상상황이 없으면 자취방 보증금으로 쓸 생각이었다)도 늘려나갈 수 있었다.


임관 첫 달에 받은 월급은 세후 210만 원 언저리였다. 처음에는 1달 생활비를 70만 원 정도로 책정했고, 비상금을 20~30만 원 정도로 책정하고 나머지는 전부 예적금이나 주식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보니 월 70만 원은 택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삼시세끼를 모두 사먹어야 했고, 시골에 있는 부대에 거주하다 보니 서울이든 대구든 가려면 교통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다행히 새해가 될 때마다 2~3%씩 기본급이 올랐고, 한 해가 지나면 호봉이 올랐고, 3년차에는 대위로 진급하면서 마지막 몇 달간은 월 세후 290만 원 정도를 받았다. 1달 생활비도 (계획상) 120만 원 정도로 책정할 여유가 생겼다.


임관 첫 달부터 전역하는 달까지 나의 재정계획은 늘 비슷한 기조였다. 마지막 몇 달 간을 예로 들면, 290만 원을 받으면 50만 원은 적금에 넣고, 120만 원은 생활비, 40만 원은 자췻방 월세로 쓰고, 보험료나 기부금으로 20만 원을 쓰고,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매달 나머지 60만 원을 주식투자에 쓰거나 비상금으로 적립시켜야 했다. 하지만 대체로 신용카드를 늘 120만 원 이상 쓰다 보니, 실제 주식투자나 비상금으로 투입하는 돈은 4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파워 J이기 때문에, 전역하는 해의 1월부터 이미 전역 후 예상 연봉에 따른 매월의 재정계획을 세워놓았다. 기본적인 지출구조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로펌은 점심, 저녁 중 최소 하나는 식대 지원을 해 주니까, 변호사로서 품위유지(?)에 돈이 조금 더 든다고 하더라도, 생활비는 월 120만 원으로 유지. 자췻방 월세는 월 60~70만 원정도로 책정해서 자취방을 구하고(결국 현재 월 70정도를 쓰고 있다). 보험료로 월 15~20정도, (기부하고 싶은 곳이 많아서) 기부금으로 월 15~20정도. 그러면 고정비용이 210~230정도 든다. 나머지 금액은 연봉이 얼마든 간에 (경조사, 질병, 여행 등 예상치 못한 크 지출을 대비한) 비상금과 투자(예적금, 주식, 펀드 등)에 적절히 배분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로펌에서 첫 월급을 받은 지난 달부터 그렇게 재정을 운용하고 있다.


만약 매달 실수령액이 월 500이라면 고정비용을 제한 270~290을 비상금, 투자금으로, 실수령액이 600이라면 380~390을 비상금, 투자금으로, 실수령액이 700이라면 480~490을 비상금, 투자금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러한 재정계획 하에서는 실수령 월급이 얼마든 간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매달 동일하다. 비상금은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을 대비하는 돈이므로 원칙적으로 평소에는 꺼내 쓰지 않는 돈이다(다만 군 시절에 그랬듯 카드값이 '예상치 못하게' 많이 나오면 비상금을 꺼내 쓸 수도 있다). 투자금은 예적금이든 주식이든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성질의 돈이 아니다. 즉 연봉과 무관하게 소비여력은 동일하다.


사실 첫 월급도 입금되자마자 바로바로 생활비통장, 자동이체통장(월세, 전세대출이자, 보험료, 기부금이 자동이체되는 통장), 비상금통장, 주식 예수금계좌로 좌르륵 이체되었다. 그리고 생활비통장에 든 돈으로 곧바로 그동안 쌓인 카드대금을 모두 정산했다. 그래서 월급이 계좌에 들어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내 월급통장은 돈의 흔적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첫 월급을 받았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군 시절이나, 지금이나 지출의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정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상금과 주식에 투자되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매달 소비할 수 있는 돈은 군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당연히 이렇게만 글을 끝내면 재수없는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아무리 연봉과 무관하게 소비여력을 동일하게 재정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연봉이 올라가면 결국 비상금이든 투자금이든 쌓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 만큼을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면 자산 증식의 속도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 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내가 매달 주식투자에 할애하는 금액을 보면 '군 시절이나 지금이나 소비여력에 차이가 없다.'라는 말은 위선이자 기만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나는 그저 개인적으로 군 시절과 비교하여 급여가 엄청나게 달라진 점을 잘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봉이 지금에 비해서 줄어들더라도 오히려 큰 체감을 못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연봉이 군 시절만큼 줄어드는 게 아니라면야, 고정지출은 거의 동일할 것이고, 소비여력도 동일할 것이다. 단지 비상금과 투식투자에 할애하는 금액이 줄어들 뿐이다. 하지만 매달 조금이라도 자산이 늘어나기만 하다면(적자가 되지만 않는다면)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차라리 나는 연봉이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더라도 마음의 안정, 삶과 일의 균형, 일로부터 얻는 보람과 전문성을 더 추구하고 싶다. 어제도 군 동기들과 얘기했는데, 서울에 아파트를 사겠다는 목표를 버린다면, 나아가 탈(脫)서울을 한다면 더 살 만한 삶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적당한 시골 소도시에 가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마음에 여유가 있고 일로부터 보람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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