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빅테크 자본주의를 멈춰라

by 장파덕

책을 선물받는 일이 썩 많지는 않은데, 오랜만에 책을 선물받았다. 군생활 중인 후배가 모처럼 휴가에 나와서 서울에서 밥을 먹었는데, 후배가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최근 유행하는 책'을 잘 읽지 않으려고 했다. 인생은 짧고, 좋은 책만 읽기에도 인생은 모자라기에, 되도록 오랜 기간 검증된 책을 읽으려고 했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제목만 보고,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 스마트폰과 SNS를 줄여야 한다는 그런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반쯤만 맞았다. 사실 이 책은 좌파적인, 조금은 불온한 사회과학도서이다.


제목만 보고 예상했던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SNS를 비롯한 인터넷에 쓰고 있어서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느끼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살아보기로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인터넷 기능이 없는 구형 휴대폰과, 인터넷이 되지 않는 구형 노트북만을 들고 3개월 동안 어느 바닷가 마을에 가서 집필활동에 매진한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마음가짐이, 집중력이, 나아가 삶이 달라졌는지를 상세히 말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책을 썼다면, 어쩌면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가 해봤고, 성공했고, 너희들도 할 수 있다. 뭐 그런 양산형 자기계발서.


그러나 저자는, 평생 스마트폰과 SNS 없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기존의 삶으로 돌아와야만 하니까. 업무상 이유에서라도 인터넷, 스마트폰, SNS는 필수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결국 저자는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왔고, '마법 같던 3개월'동안 다짐한 대로 스마트폰과 SNS를 최대한 줄여 보려고 다짐했지만, 결국 몇 달 만에 예전과 다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다시 스마트폰과 SNS가 자신의 집중력을 잠식하는 그러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여기에서부터 이 책은 양산형 자기계발서와는 전혀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많은 자기계발서는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이 책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일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며,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 이유와 해결방안에 대해 들어 본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터넷, 스마트폰, SNS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물론 어떤 전문가는 수면 시간의 감소, 정크 푸드의 보편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 과도한 노동시간과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이러한 집중력 문제는 빅테크 기업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결국 오늘날 집중력 위기는 빅테크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문제라고 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과 같이 수많은 SNS가 우리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개인방송이라고 해봐야 아프리카TV 정도를 떠올렸고, 그나마 소수 마니아들의 취미생활일 뿐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유튜브는 여론 형성의 중요한 수단이고,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본다. 최근에는 이른바 '숏폼'이 트렌드가 되면서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영상을 계속 넘겨보면서 시간을 떼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사실 자기 전에 '쇼츠'를 넘겨보다 잠이 들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SNS와 숏폼이 단순히 사람들의 여가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빅테크 기업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더 오랜 시간 SNS를 이용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빅테크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SNS에 '중독'시키려고 한다. 창을 아래로 내리면 끊임없이 새로운 컨텐츠가 나오도록 한다.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컨텐츠를 계속 제시한다. 특히 SNS의 알고리즘은 사람에게 더 자극적인 컨텐츠를, 더 극단적인 컨텐츠를 제시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오래 SNS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더 극단화된다. 깊이 있는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의 신념이 옳다는 생각만을 강화한다.


SNS는 집중력의 위기를 불러오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편으로 숏폼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 이상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요즘 청소년들은 조금만 긴 글만 보면 읽기 싫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사실 나도 블로그를 하지만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주의 깊게 읽지는 않는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긴 글을 못 읽는 편이다. 기후위기와 같이 전 인류가 공동지성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많지만, 사람들은 점점 깊은 생각을 하기를 멈춘다. 최근에 '브레인 랏(brain rot)'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뇌가 썩고 있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도 이러한 집중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SNS 앱을 삭제하거나, 개인적으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미 집중력 위기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어떻게든 이용자들이 SNS에 중독되도록 사회 구조 전체를 조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 아예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이미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웍스(works)와 같은 모바일 앱을 통해서 여러 업무상 연락이 오고간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겠답시고 카카오톡, 네이버웍스를 안 하겠다고 하면 난 해고당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일상생활 속 시스템이 스마트폰의 보유를 전제로 돌아간다. 최근 지하철을 타면서,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하기 위해서 스마트폰 앱을 깔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스마트폰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은 더이상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할 수 없다. 기차표 예매, 고속버스 예매, 공항버스 예매와 같은 일상적인 일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이 없이는 이용하기가 굉장히 불편해졌다. 공인인증서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수많은 민간인증 역시 스마트폰의 보유를 전제로 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기업들 역시 수시로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다. 그때그때 업무연락을 확인하고 이에 응대하기를 요구한다. 디지털 감옥이다.


많은 자영업자들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와 같은 SNS 없이 마케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웬만한 기업들은 이제 유튜브를 통한 홍보창구를 두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고, 한 번 시작한 이상 인스타그램을 그만두기는 너무 어렵다. 유튜브는 더욱 삭제하기 어려운 게, 유튜브를 보는 게 너무나도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떼웠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내가 인스타그램 앱을, 유튜브 앱을 삭제할 수 있을까? 카카오톡도 광의의 SNS인데, 카카오톡 없는 삶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저자는 이러한 집중력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물론 개인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빅테크에 대해서 규제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입법이 필요하고, 결국에는 시민들이 단체를 만들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물론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화력 발전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수많은 시민들과 NGO의 활동 덕분에 이제 유럽에서는 탄소중립과 탈탄소가 대세가 되었다고. 빅테크와 맞서 싸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편으로, 집중력 위기는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부터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추세는 1890년대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사람들의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은 점점 더 가공식품을 많이 먹고 있고, 사람들의 근무시간은 늘어나고 있고, 어린이들은 점점 더 통제받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이러한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경제성장' 그 자체라고 말한다. 경제가 점점 성장해야 한다는 그 관념, 최대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 관념이 문제다. 사람들이 자는 시간을 더 줄이고, 소비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그리고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하여야 한다. 끊임 없이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만약 모든 인류가 하루 8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면 수많은 산업이 붕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SNS를 그만두고,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 친구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고 해도 그렇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제성장 그 자체가 문제라는 말은 결국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라는 말과 같다.


누가 우리의 집중력을 훔치는가? 빅테크와 그들이 만드는 중독적인 SNS가 훔치고 있다. 그리고 수면시간을 줄이고, 정크 푸드를 먹게 하고, 근로시간을 늘리고, 사람들에게 정신과약을 과도하게 먹이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이 사회 구조가 우리의 집중력을 훔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빅테크는 중독적인 SNS를 만들고 있는가? 사람들이 SNS에 중독되어야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빅테크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가?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사람이 아닌 이윤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SNS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저커버그 황제'에 맞설 노력에도 나서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호사일기(10): 대구라는 율도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