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었을 무렵 한 3달 정도 노트북에 일기를 거의 매일같이 쓴 적이 있다. 최대한 담담하게 사실관계를 나열하고 내 감상을 몇 줄 개조식으로 덧붙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가 일기 쓰기를 3달 만에 그만 둔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도 있으나, 일기쓰기가 내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 하는 것 같아서였다. 매일매일이 집착과 미련과 아쉬움의 기록으로 남게 되니, 일기를 쓰는 게 내 정신건강에 더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 때의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걸 찾아봐야 내 정신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글을 통 쓰지 않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법조계 현직자로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어쩐지 내 우울감을 기록하는 페이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다. 물론 많은 법조계 현직자들이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을 달고 산다는 것에서 그 또한 법조계 현직자의 생생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우울한 얘기, 힘들다는 얘기,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얘기나 하게 될 것 같아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로스쿨생이나 로스쿨 준비생에게는 이 모든 게 합격자의 배부른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법조인이 되긴 하였으니까.
하지만 지난 11월 초부터 현재까지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먼저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붉어졌다. 11월 초부터 눈물로 밤을 새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난 달, 추석 연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업무가 늘어나면서, 사실 내가 힘들다는 점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왜 힘들다고 느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조차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무언가 불안하고 힘들고 우울한데 이유를 모르겠었다. 그런데 11월에 한 번의 출장, 한 번의 공판기일 출석을 통해서 그 원인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업무량 자체가 많아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업무량 때문에 힘들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편이긴 하다. 우리 팀 평균 월 타임(실근무시간)이 150~180시간인데, 지난달까지 아직 월 100시간을 넘겨 본 적이 없다. 11월의 근무일이 평달보다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월 100시간 언저리 일했다. 로펌에서 이 정도 근무시간이면 적은 편에 속한다는 점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일이 많아서 내가 힘든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파트너변호사 대하는 것도 당연히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게 직접적으로 정신적 위해를 가한 파트너는 없다. 풍문으로 들은 바는 있으나 아직까지는 내게 친절하다.
그래서 내 정신건강의 위기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에 처음으로 출장과 재판을 다녀오면서, 잘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내 스트레스와 우울감의 원인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야근을 (상대적으로) 적게 하고 있으니, 야근을 좀 더 많이 하면 나아질 것일지도 모른다. 개별 사건마다 시간을 더 투자하면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모르는 것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야근에 대한 두려움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크지 않다. 어차피 로스쿨 3학년 때도 매일 밤11시에 귀가했었으니까.
원인도,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번 정신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하다 거기서 회복하기란 굉장히 쉽지 않았다. 우울, 불안, 무기력이 한 번 깊게 찾아오면 평상시로 돌아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특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회사생활에서는 더 그렇다. 겨우겨우 급하지만 간단한 업무들(이메일 작성 등)만을 처리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오늘 당장 퇴사 얘기를 해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과 걱정들을 진지하게 하였다. 지금 회사의 업무나 사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지금 당장 정신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퇴사만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친구 이상의 존재가 나를 많이 위로해주고 또 응원해주었다. 힘들다는 카톡 한 마디에 전화를 걸어서 1시간 넘게 위로와 조언을 건넨 친구도 있었고, 일단 고기를 사 줄테니 시간부터 내라는 친구도 있었다. 밤마다 펑펑 우는 나를 안아주며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어디서 복을 많이 얻어서 이렇게 좋은 위로를 받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들로부터 아주 약간의 힘을 얻어서, 일단 퇴사라는 선택지는 접어두고, 일단 정신과 일정을 당기기로 했다. 상담 끝에 약을 조금 증량하기로 하였다.
마음의 투병생활이 어느정도 정리되나 싶더니, 몸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에 술자리에서 약간 과음을 한 이후부터 소화불량이 지속되었다. 몸의 이상신호였다. 이상신호를 무시하고 평소와 같은 식습관을 유지하다가 지난 금요일에 탈이 났다. 친구와 위로의 삼겹살을 먹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심한 체기가 느껴졌다. 소화제를 먹었으나 나아지지 않아 다음 날 아침 동네 내과를 가서 소화제를 처방받았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아 일요일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여러 검사 끝에 담낭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바로 수술일정이 잡혀 화요일에 담낭제거술을 하고, 일주일 간의 입원 끝에 오늘 퇴원하게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무려 전신마취가 동반된) 수술이라는 것을 했는데,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갔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우울증이 악화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사실 너무 아플 때는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고, 우울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욕구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통증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며칠 동안 뜬눈으로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수술 이후 점차 통증이 나아지면서부터는, 일단 퇴원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막상 퇴원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는 것과 더불어,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좌절감이 찾아왔다.
'좌절감'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쓰다가 지우다가, 다시 썼다. 지금 감정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정신과 약 증량으로 조금 괜찮아진 상태였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당장 모레 월요일부터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한다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몸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정신적으로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일을 해야 한다. 물론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누군가를 붙잡고 울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덜 운 것 같다. 이 일에 적성이 맞는걸까 싶기도 하고. 그리 유능한 변호사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을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지난 7월 제주도 여행에서 봤던 인상깊은 문구가 있었다. '안 되면 되는 거 해라'라는 말. 우리 어머니께서도 자주 하는 말이다. 일단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물론 회사가 그럴 만한 여유를 줄 지는 미지수이다. 이성적으로는 아직 퇴사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하지만 조금 적게 벌더라도 조금 더 편한 일자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조금 덜 복잡한 사건들, 하지만 조금 더 소소하게 재미있는 사건들을 하고 싶다. 적당히 힐링되는 공공기관에 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
그래도 퇴사는 안 된다. 왜? 11월 30일치까지의 임금을 20일에 선지급받았기 때문이다. 11월 30일까지는 일해야 한다. 그래야 월급을 반납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