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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익, <스물둘, 열정과 패기로 떠난 세계 여행>

도전하는 자의 아름다움

by 장파덕

이 책의 저자 장현익은 고등학교 친구이다. 사실 고등학생 때는 문과반, 이과반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같은 반이 아니라서 많은 교류를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현익이는 내게 아는 척을 하며 괜히 말을 붙여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어필을 많이 해 주었다.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내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해병대에 입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전역하자마자 세계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끝낸 다음에는 책을 낸다고 말하며 내게 책 제목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겨우 학부 3학년쯤이었던 내게는 참 멋있고 존경스러운 친구였다.


현익이가 이 책을 출판하고 난 직후에 이 책을 사서 한 번 훑어 보고는, 집 책장 속 어디엔가 꽂아 두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대구 본가를 방문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도 친구가 쓴 책인데, 다시 한 번 제대로 읽고 독후감이라도 남겨 보자. 해병대원, 세계여행자, 대학생, 간호사를 거쳐 이제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현익이의 브랜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소 늦게라도 독후감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장현익은 군대를 전역하고 불과 10여일만에 호주로 가서 워킹홀리데이로 5개월 간 2,000만 원을 벌고, 1년 5개월동안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사실 여행의 목적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고자 한다. 한편으로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서 심신의 회복과 재충전을 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 장현익은 단연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호주로 뛰어들었다. 돈이 없었기에 호주에서 '쓰리잡'을 뛰면서 5개월 동안 2,000만 원을 번다. 1~2시간 거리는 걸어다니고, 숙소비를 아끼려고 노숙을 불사하고, 식빵 하나로 하루 종일 끼니를 떼우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젊어서는 사서라도 고생한다.'라는 말의 표본과 같은 세계여행이었다.


그 와중에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도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비록 최대한 많은 도시와 국가를 다녀오는 걸 목표로 하였기에, 어쩌면 주마간산 식의 여행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저자에게 세계여행이란 세계의 랜드마크를 보는 것보다는 여행의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지갑을 잃어버리고, 소매치기를 당하고,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고 곤란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온다. 가장 대단한 것은, (물론 때때로 도움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서 감내했다는 것이다. 내가 22살 때는 무엇을 하고 살았지? 뭘 이루고 있었지?


부끄럽게도 나의 22살은 고등학교 5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나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아직 성인이 덜 되었던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전혀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주시는 용돈으로 생활했고, 스스로 돈을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딱히 해 보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일단 좋은 성적을 받아서 빨리 로스쿨에 가서 얼른 취업하는 게 효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랬기에 부모님의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대학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곤 하였다. 부모님께서는 '그래 대학생일 때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지'라고 말씀하시며 흔쾌히 여행지원금을 주셨다.


물론 해외여행을 통해서 배운 게 없지는 않았지만, 나의 해외여행은 대체로 '놀자'판에 가까웠다. 넉넉한 여행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는 숙소에서 지냈고, 그래도 패스트푸드보다는 그럴싸한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다. 물론 자유여행인 이상 여러 계획을 짜야 했고, 때때로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일도 있긴 했다. 동행한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익이가 겪은 것처럼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신용카드를 몽땅 분실하는 정도의 일은 없었다. 어쩌면 굉장히 호화로운 여행을 부모님 돈으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얻은 것이라면 약간의 검색능력, 계획능력 정도..?


내 인생의 결정을 내 스스로 내리고,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내 노력을 오롯이 쏟아붓는 경험을 많이 하지도 못한 것 같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관으로 복무할 때까지는 정해진 코스대로 달려왔다. 대학생 때는 학점을 잘 받아야 했고, 로스쿨 때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했고, 법무관 때는 시키는 일을 잘 하며 무사히 복무를 마치면 되었다. 그러다가 전역을 앞두고 진정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올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직장에 들어와서는 물론 시키는 일을 잘 하면 되는 것이지만, 군대와 달리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또다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인생의 목표도 흔들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22살 세계여행을 통해 빨리 어른이 된 것 같다. 누군가는 주마간산 식의 여행이라고, 그저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도시를 '찍먹'하듯이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계획을 완수하는 그 과정 자체를 통해 저자는 크게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난 아직까지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렵고, 아는 사이라도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게 어렵고, 굳이 나서서 고생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말이 안 통하는 낯선 곳이 두렵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세계여행자처럼, 이 책의 저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대문자 'E'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그 정신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완수하는 그 과정이 너무 멋있고 존경스럽다. 어쩌면 저자는 22살의 세계여행을 통해서 오늘날 사업가로서 자신의 꿈을 펼칠 밑바탕을 쌓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30살이 되어서야 하기 시작한 고민을 22살에 미리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떠한 도전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떠한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법무관 생활을 마무리한 순간부터 더이상 인생에 정해진 코스는 없고, 정해진 답도 없다. 흔히 말하는 N대 로펌에 입사하였지만, 오히려 중소형 로펌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법무관 동기들이 더 재미있게, 더 치열하게 일하는 것 같아 내심 부럽기도 하다. N대 로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무게감이 가끔 나를 짓누르곤 한다. 내가 괜히 욕심을 부린 것인가, 조금은 과분한 회사에 들어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지 못한 길,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누군가 정해준 목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따라 가야 한다. 나의 법조인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신나게 살기, 재미있게 살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기,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전문성을 기르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무엇을 목표로 삼더라도, 적어도 4개월 만에 첫 회사를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도피하고 싶지 않다. 다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최소한 1년은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 설령 퇴사하게 되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도망이 아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퇴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한국에서의 힘든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호주로 떠나지만, 누군가는 세계여행의 목표를 안고 호주로 떠나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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