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에 전역신고를 하자마자 곧바로 그 다음날인 8월 1일에 서울 소재 모 법무법인으로 출근을 하였다. 당분간은 안양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하기에, 아주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왔다. 안양에서 회사까지 도어 투 도어로 대충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경기도 사람들이 매일같이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은 늘 학교나 부대 근처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출퇴근의 애환이라는 걸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처음으로 출근시간 만원지하철을, 그것도 한여름에 정장을 입고 가니 이제 진짜 내가 사회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이렇게 살아야 할 테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이라고 하면 조금 거짓말이고, 아무래도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또 어디든 로펌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야근이 일상인 곳이라고 들어서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도 첫 날부터 일을 본격적으로 시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첫 출근을 했다. 회사 로비에서부터 경비원 분이 '새로 오신 변호사님이신가요'라고 물어보며 N층으로 가면 된다고 안내해 주셨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출근할 때마다 내가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목례를 하며 인사를 해 주신다. 굳이 이렇게까지 변호사에 대해 의전(?)같은 걸 해야하나 싶긴 한데, 신입이 왈가왈부하기엔 조심스러운 일이다.
친구들이 말하기로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의외로 곧바로 일을 시키거나, 혹은 방치당한다고 하더라. 이제서야 어떤 말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첫 날에는 행정 담당 직원분께서 와서 새로 입사한 변호사들에게 개인정보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변호사 장OO라고 적힌 명함을 나눠주고, 각자의 사무실을 안내해 주었다. 알아야 할 사항은 이메일로 보내줄 거니까 읽어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리고 나는 사무실로 갔다. 대충 가방을 정리하고, 회사에서 쓰이는 이런저런 사이트들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제 뭐 해야 하지..? 그래서 일단 회사 기본 안내서랑 사내 규정을 훑어봤다.
8월 1일이 하필 법원 휴정기에 휴가철이 겹쳐서, 우리 팀 사무실을 돌아가면서 인사를 드리긴 했는데, 안 계신 변호사님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출근하신 파트너변호사님들, 그리고 동료 어쏘 변호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무려 2만 원이 넘는 고오급 리조또를 먹었다. 신입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해서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파트너변호사님들은 거의 아버지뻘이라서 더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쏘 변호사님들은 나와 3~5살 정도 차이라서 조금 더 편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게 점심까지 먹고 나니 오후에는 정말로 할 일이 없었다. 그냥 안내서, 규정집을 읽었다.
사실은 입사 5일차인 오늘까지도 딱히 주어진 일이 없다. 입차 1일차, 2일차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입사 3일차부터는 슬슬 쫄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료 어쏘변호사님, 입사 동기분과도 얘기를 해 봤다. 이거 혹시 나를 시험하는 건가요. 파트너변호사님을 찾아가서 일을 달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데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우리 회사가 그렇게 신입을 테스트할 만큼 대단한 회사도 아니고 그렇게 까다로운 파트너변호사님도 없다. 휴가철이고 법원 휴정기가 겹쳐서 신건이 안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조만간 일 많이 하게 될 테니 잠깐의 여유를 즐겨라. 법무관 선배님도 자기도 2주 정도는 별 일 안 했다고 말하셨다.
아무튼 입사 5일차까지는 크게 하는 일 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식사도 같은 팀 어쏘들끼리 같이 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서, 월요일에만 어쏘 단톡방에 '식사 같이 하실 분~' 올렸고, 화, 수, 목은 입사 동기나 법무관 선배 등등 사내에 연이 있는 분들과 약속을 잡아서 먹고 있다. 아마 내일은 혼자 편하게 밥 먹을 것 같다. 나는 메뉴 정하는 게 머리 아파서 그냥 한식뷔페를 가지 않을까 싶다. 변호사협회 등록이나 법조인대관 등록 같은 기본적인 행정처리를 하고, 공부라도 해야지 싶어서 오전, 오후에 각각 판례공보 요약본을 프린트해서 읽고 있다. 7월, 6월 공보는 다 읽고 5월 판례공보를 읽고 있다. 그 외에는... 프리 타임...ㅎㅎ
동료 어쏘 변호사님들을 통해서 회사의 여러가지 꿀팁들을 전수받고 있다. 회사 근처에 괜찮은 식당, 카페는 물론이고, 사내에 음료와 커피머신이 있는 곳이라든지, 회사 내 이런저런 복지혜택들, 그리고 파트너변호사님 대하는 예의, 사내 데이터베이스 검색 방법, 평균적인 야근 빈도(ㅠㅠ) 등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회사의 신입 안내서나 규정집에는 없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다. 법무관 시절과 다르게, 잡다한 행정업무들은 모두 사무직원분들이 해 주시니 편하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직접 해도 괜찮은 것까지 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법조인의 업무에만 충실하라는 취지겠지 싶기도 하다.
아무튼 5일째 일이 없어서, 판례공보와 법률신문을 읽고, 변호사협회 등록 같은 잡다한 행정처리를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말 그대로 쉬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의 오피스텔로 이사가게 되는데, TV와 가구를 알아본다거나, 회사에서 주는 전자기기 구입비로 무슨 노트북을 살지 고민한다거나, 뉴스를 보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고 있다. 하지만 늦어도 법원 휴정기가 끝나는 다음주부터는 일이 쏟아지리라는 걸 알고 있다. 파트너님들도 휴가 다녀오셔서 사건을 열심히 수임하실 테다. 어떻게 보면 폭풍 전야인 셈이다. 일이 빡세다는 걸 알고 왔고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어떻게든 잘 적응하겠지.
군에서 퇴직금을 받고, 또 법인에서 첫 월급을 받으면 고민해야 할 게 많다. 일단 퇴직금은 부모님께 상당부분을 드리고 동생에게도 조금 주고,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대접할 생각이다. 첫 월급은 일단은 부동산 복비, TV와 가구 구입비로 일정 부분 쓰이고, 당장 카드값을 갚는 데에도 쓰일 테다. 그리고 슬슬 재테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도 해 봐야 한다. 아직 입사 1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이 회사에서 파트너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2~3년 정도 여기서 경력을 쌓은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공익인권 분야'도' 다루는 로펌으로 언젠가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인생은 길고, 인생에서는 돈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워라밸도 있고, 인간적 성숙, 건강, 가족이나 연애, 그리고 사회정의와 연대 같은 가치들 말이다. 이 회사에서도 그런 가치들을 충분히 추구할 수 있다면 아마 이 회사를 오래 다니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2~3년 정도 뒤에는 그런 가치들을 좀 더 추구할 수 있는 회사로 옮기지 않을까. 물론 다니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서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잘 길러볼 생각이다. 첫 발을 내딛었으니 모든 게 잘 풀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