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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인터뷰로 만나는 태국 민주주의>를 읽고

태국의 민주화, 가능할 것인가?

by 장파덕

친하게 지내는 형이 이번에 태국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고 하여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정치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에 진학한 나와는 다르게 정치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멋진 형이다. 학부생 때 "동남아의 정치와 외교"라는 수업을 듣기는 했으나, 그 수업은 주로 아세안에 대해 다루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태국 정치에 대해서는 달리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한국 언론에서 다루는 대단히 피상적인 정보들, 예컨대 탁신 가문이 태국 정치계의 '로얄 패밀리'라거나, 탁신에 반대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국왕이 이를 승인하였다거나, 이 정도의 정보 외에는 태국 정치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현재 태국의 상황은 대단히 복잡적이다. 2020년 이후 진행된 시위에서는 그동안 금기시되던 '왕실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이슈가 되었고, 광장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새로운 정치세력이 '왕실모독죄 개정'을 내세우며 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전히 쿠데타의 주역인 군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헌법을 개정하여 상당한 정치적 패권을 쥐고 있고, 기존에 군부와 대립하던 탁신 계열 정당도 집권을 위해 군부와 손을 잡았다. 결국 왕실모독죄 개정을 내세우던 새로운 정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다. 현재 탁신계열 정당이 집권당이지만, 어디까지나 군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집권한 것이라 완전한 문민정부는 아니다.


아무튼, 현재 태국은 완전한 권위주의도 아니고, 완전한 민주주의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권위주의에 더 가까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군부와 왕실이 결탁하여 정치적 기득권을 쥐고 있고, 민간 정치세력은 그들이 허락한 한도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태국은 명목상 입헌군주제 국가이지만, 왕실모독죄가 존재하고 왕실에 대한 사소한 비판까지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 군부가 왕실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찾는다는 점을 보았을 때 완전한 입헌군주제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왕실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책에는 11명의 태국 시민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 중에는 활동가도 있고, 시위에 참여했으나 지금은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평범한 부부도 있고, 심지어 고등학생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수록하였으나 어찌 보면 이들의 메시지는 공통된 점이 많았다고 느꼈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르게 태국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왕실 개혁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 2020년 당시에는 변화에 대한 열망,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한 절망, 정치적 구심점의 존재 등으로 대규모 시위가 확산되었다는 점. 그러나 두 번에 걸친 개혁성향 정당의 해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무너졌다는 점 등등.


특히 인터뷰 대상자들의 답변 중에서 일관되었다고 느낀 것은, 최초에 왕실 개혁을 내세웠던 개혁 성향 정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한 두 번의 해산을 거치면서 점차 타협적으로 되어 갔고,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였다는 점이었다. 최초의 개혁 성향 정당은 광장과 거리의 시위를 주도하였고, 광장의 메시지를 정치과정에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첫 번째 정당 해산 이후에는 광장에서의 활동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한 변화를 앞세웠고, 두 번째 정당 해산 이후에는 광장의 목소리를 멀리하고 의회에서의 활동을 중시하지만 기성 정당들과 점차 타협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듯하였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태국과 같이 반쯤은 권위주의에 가까운 나라에서 대화와 타협만으로 개혁과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실과 군부라는 기득권이 공고하고, 헌법 자체가 그 기득권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고, 앞서 말했듯 민간 정치세력은 왕실과 군부가 '허락'하는 한도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선거에서의 승리, 의회에서의 활동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심지어 개혁 성향 정당은 지난 2023년 총선에서 (과반수는 아니나) 제1당의 지위에 올랐으나 결국 집권하지 못하였다. 의회에서의 활동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해가 가는 지점도 있다. 두 번에 걸친 정당해산으로 인하여 개혁 성향 정당이라 하더라도 왕실개혁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상당수의 광장 시위대의 리더들이 왕실모독죄로 인하여 구속되거나, 혹은 외국으로 망명하였다. 광장의 에너지는 지속되기 어렵고, 2020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에너지를 상실하였다. 대규모 시위를 하였음에도 무언가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무기력을 학습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마냥 개혁 성향 정당이 시위를 조직하지 않고 의회에서의 활동에만 골몰한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지점도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기다림의 시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보면, 1980년대 '서울의 봄' 이후에 신군부의 5. 17. 비상계엄 확대, 5. 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1985년 총선에서 민주정당이 큰 승리를 이루었고, 조금씩 정권에 균열이 이어지다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발생하여 마침내 정권 내부의 균열(6. 29. 선언)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거리와 광장의 이른바 활동가, 운동가들의 활동은 꾸준히 존재하였다. 그러나 1985년 총선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라는 특정한 계기를 바탕으로 광장의 에너지가 폭발한 것이다.


태국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시위가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고, 많은 활동가, 운동가들의 리더들이 투옥되거나 망명하여 구심점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왕실과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들로 인한 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태국 시민들의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압력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다가, 특정한 계기가 발생할 경우 거리와 광장에서 큰 폭발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회정치만으로 변화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장의 에너지만으로 변화를 만들 수도 없다. 광장의 에너지는 일시적이고, 결국에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의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광장정치와 의회정치는 결국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의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개혁과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사람들을 동원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그러한 활동가들의 활동이 어느 계기를 만나 폭발하기에 이르렀을 때, 의회정치의 플레이어인 정당이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하여 지속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대의정치가 필수적인 한 광장만으로 거대한 현대국가를 움직일 수는 없다. 결국에는 의회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광장의 목소리를 수용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개혁정당이 광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두 번의 정당해산을 딛고 새로이 출범한) 태국의 개혁정당이 태국의 활동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이른바 '운동권'과 민주정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광장의 목소리가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만약 태국의 개혁성향 정당이 거리의 활동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불신의 대상이 된다면, 광장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폭발하더라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제도화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개혁정당조차 광장의 시민들로부터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된다면?


어쨌거나 광장의 목소리가 폭발하는 순간은 일시적이다. 길어야 한두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에는 광장의 요구를 법과 제도의 언어로 바꾸어서 항구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당과 의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른바 개혁정당을 비롯한 모든 기성정당들이 '기득권'이자 '청산'의 대상으로 취급받는다면, 광장의 목소리는 제도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이른바 민주정당과 집권당이 '야합'하여 헌법을 졸속으로 개정하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야합이나 졸속 개정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결과였다.


결국, 개혁과 민주화를 위해서는 광장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 태국은 변화와 개혁을 위한 목소리가 잠시 누그러진 상태이지만, 지금도 변화와 개혁을 위한 압력이 점점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많은 인터뷰이들이 자신이 죽기 전에 태국의 민주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는데, 지금도 축적되고 있는 변화를 위한 압력이 특정한 계기를 만나서 폭발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시기에 태국의 개혁정당이 광장과 충분히 우호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충분히 가까운 시일 내에 태국의 민주화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연대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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