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 B. Luoma 등,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by 장파덕

로스쿨생 시절, 고려대병원 정신과의 담당 선생님께서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차분히 관찰해 보라고, 내가 지금 우울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는 도대체 우울하다는 감정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의례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때 그 의사선생님께서 어떤 취지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실제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수용전념치료는 단지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수용전념치료는 그 과정 속에서 불편함을 직시하게 한다. 수용전념치료의 목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스로 원하는 가치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때때로 불편함, 고통과도 마주해야 한다. 수용전념치료는 (1) 수용, (2) 인지적 탈융합, (3) 현재에 존재하기, (4) 맥락적 자기, (5) 가치 있는 방향 정의하기, (6) 전념 행동이라는 6가지 요소를 통해 '심리적 유연성'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어떻게 걱정, 불안과 싸우기보다는, 어떻게 걱정, 불안과 함께 잘 살지를 고민하는 치료이다.


수용(기꺼이 하기)란,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극복'하거나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기꺼이 그러한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인지적 탈융합이란, 언어적, 논리적 작용으로 인하여 어떠한 사고방식과 '융합'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냐, 단지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냐는 구분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현재에 존재하기'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맥락적 자기란,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씌운 '프레임(예: 난 무능해!)'에서 벗어나 맥락 속에서 변화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가치 있는 방향 정의하기란,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정신적으로 조금 더 안정적으로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삶 속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내는 방법이다. 전념 행동이란, 앞서 설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에 전념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6가지 방법을 통해 수용전념치료에서는 심리적으로 유연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고통과 불편함을 직시하고, 또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동안 나 역시 불안, 걱정, 우울, 무기력에 대해서 그것들을 제거, 극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나 느낌들은 영원히 제거할 수 없다. 결국 불안, 걱정, 우울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복직을 하루 앞둔 지금도 어떻게 보면 평소보다 불안, 걱정이 고조된 상태이다. 하지만 불안과 걱정을 회피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배웠다. 수용전념치료에 의하면 내가 지금 불안과 걱정을 느끼는구나, 불안과 걱정에 대한 생각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될 뿐이다. '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탈융합에 큰 도움이 된다.


어떻게 보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 단순한 정신승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스트레스는 바로 당장 느껴지는 것이고, 당장 내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내일 회사에 복귀하고 나서, 어떻게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지, 파트너변호사들에게 어떻게 복귀를 알릴 것인지(대면으로 인사를 돌아야 할지, 이메일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근심걱정들이 있다. 그동안 쌓인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데, 그 와중에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별하는 것부터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리고 걱정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삶 속에서 고통과 불편을 겪지 않는 방법은 없으니까. 고통과 불편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그만두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런 도피 내지 회피를 통해서는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인 '언젠가 우리 사회에 도움을 주는 변호사가 되기'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그저 마주치고, 불편이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내 자신을 관찰자의 시각에서 마주치며 '그놈 참 대견하네'라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챙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고민해 보았다. 되든 안 되든 명상하기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마음챙김의 방법들(목욕탕 가서 피로 풀기, 따뜻한 디카페인 차 마시기, 매일 블로그에 짧은 일기 쓰기, 시집 필사하기, 부모님이나 편한 친구와 통화하기, 아침에 러닝하고 출근하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저그런 평범한 월요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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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자, 마음이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리고 그 불안을 느끼고 불안에 다가가면서 자신이 이곳에 머물러 보는 것이 불안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주고 자신의 삶을 위해 살 수 있을지를 배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죠? 불안이라는 녀석한테 좀 더 열린 태도로 다가서는 것이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 보시겠어요? 지금 이 질문도 여기에 같이 머무르게 합시다. 그러면서 바로 지금 당신의 삶이 이 질문을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세요. 현재에 머무르고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것이 정말로 원하는 엄마가 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중 일부라면 어떻겠습니까? 이제 그 목표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세요. 지금 불안을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요? 자신의 몸 어디에서 불안이 느껴지나요?" - p. 450


"이 상황이 체스 게임이라고 해 봅시다. 검은 말과 흰 말이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치료자는 '체스 말'로 표현하기 위해 종이판 위에 다양한 물건을 올려놓는다.] 이 은유에서 체스 말은 당신의 다양한 생각, 감정, 기억 등 당신 안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자, 이제 당신은 흰 말이 이기게 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합니다. 당신은 흰 말과 함께합니다. 체스 판 안으로 들어가 말과 기사 위에 올라타고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런데 그 때 일어나는 일은 당신이 '충분히 속도를 늦추고 있어'라는 생각과 정말로 함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생각이 흰 말이고 당신은 그 체스 말이 이기게 해야 하는 것이니까, 검은 말이 정말 위협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아시겠지만 당신에겐 그러한 검은 말이 굉장히 많을 거에요, 그렇죠? 이 말은 모두 당신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체스 말에 대해서 이런 식의 태도를 갖는 순간, 당신은 엄청나게 큰 당신의 일부분과 전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당신 삶은 전쟁터로 변합니다. 그리고 체스 말은 체스 판에서 서로를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경험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검은 말,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라든가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것 등 당신이 싫어하는 말을 삶에서 없애 버리려고 했을 때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나요? 이 은유에서 만일 당신이 체스 말이 아니라 사실은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맥락인 체스 판과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보세요, 체스 판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모든 체스 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체스 말이 많든 적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체스 말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지금 제가 손으로 체스 말을 앞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체스 판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 체스 판 수준의 자신과 만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연습을 같이 기꺼이 해 보시겠어요?" - p. 461~462


"어떤 치료자는 당신이 걱정을 조절하는 데 사용할 더 많은 기술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저의 접근 방식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당신은 마치 걱정과 계속 전쟁을 치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치료법에서는 당신이 그 전쟁에서 싸울 수 있도록 더 많은 무기를 당신에게 줍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런 접근법을 사용하는 치료자에게 당신을 의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치료는 전쟁터에서 떠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과 좀 더 비슷합니다. 전쟁은 여전히 계속 진행될 수도 있고, 당신은 그걸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전쟁터에서 살지는 않게 되는 겁니다. 불안이나 두려움, 걱정과 싸우는 이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 작업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당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 47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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