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군복무 중 휴가나온 후배를 만나서 이야기하던 중에,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후배 말로는, 부대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면 그저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오직 '돈'인 사람이 가끔 있는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자기는 1억 원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하기에, 1억 원을 모으면 뭘 할 거냐고 물으니, 그 다음엔 20억 원을 모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20억을 모은 다음엔 뭘 할 거냐고 물으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그 후배는 돈은 어디까지나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고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데, 돈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게 별로라고 말했다.
나도 그러한 후배의 말에 동감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말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 온 사람이라면, 당장의 생존을 위해 돈 그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근 유튜브에서 본 이른바 '파이어족'들의 삶에 대한 영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파이어족'이란 보통 은퇴하는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은 나이에 일찍 은퇴하여, 그동안 모은 돈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막상 '파이어'에 성공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니, 막상 은퇴하고 배당금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만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고들 말한다
당연히 그 '파이어족' 분들이 그럴 의도는 아니였겠지만, 어쩌다 보니 '파이어'나 '경제적 자유'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막상 경제적 자유를 누릴 시기가 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방황과 권태의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돈을 버는가? 1차적으로는 당연히 생존 내지 생계 유지이다. 그래도 실수령 200은 벌어야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면서도 가끔씩 취미생활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따지면 월 200만 원만 버는 삶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생계 유지만으로는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대략 20여년 쯤 전에 차모 국회의원이 1일치 최저임금으로 하루 살아보기 체험을 하면서, 1일치 최저임금으로도 '황제의 밥상'을 먹을 수 있다고 글을 썼다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실수령 200만 원만 버는 삶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과연 지속될 수 있느냐, 예상치 못한 큰 지출에 대응할 수 있느냐에 대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실수령 200만 원으로는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서도) 저금을 많이 하기는 어렵다. 큰 병이 들거나, 사건사고에 휘말려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할 때 당장 수중에 목돈이 없다면 자유롭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실수령 200만 원짜리 일자리라고 해도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실직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물론 실업급여라는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3개월치 이상 생활비를 목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구직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월 200만 원을 받는 일자리를 갖고 살면서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의 발생에 너무 취약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살기에는 제한사항이 크다 하겠다. 그렇다면 실수령 월 300만 원 정도라면 괜찮을까? 사실 군생활 3년의 마지막 즈음에 실수령 300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살았다.
사람은 200만 원을 받으면 200만 원에 맞춰 살다가, 300만 원을 받으면 300만 원에 맞춰서 소비를 늘리게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여유가 생기면 친구들에게도 괜히 밥 한끼 사게 되고, 평소에 가지 않던 조금 비싼 식당에도 가게 되고, 맨날 아메리카노만 먹다가 어느 날에는 스무디나 에이드 같은 비싼 음료도 먹게 되고, 괜히 사촌동생이나 조카들에게 용돈도 주게 된다. 하지만 확실히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니 저금할 수 있는 여윳돈도 꽤 많이 늘어난다. 월 200만 원정도를 벌 때 한 달에 50만 원도 저금하기 어려웠다면, 월 300만 원을 받으면 한 달에 많으면 100만 원 이상 저금할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군에서 말년에 받은 봉급을 넘는 수준의 월급만 받는다면, 생계유지도 하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저금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금전적 여유를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을 어느 정도 내린 셈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신에, 지금 월급을 포기하고 세전 350만 원(세후 300만 원)정도 받는다면 그래도 할만하지 않나..싶은데, 너무 철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기는 하다. 어제 후배를 만나서도 그런 얘기를 했다. 나도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고, 파이어를 하고 나서 공익인권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근데 생각해 보니 파이어를 하고 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 공익인권 활동을 하는 것과, 그냥 지금 월 200~300만 원을 받으면서 공익인권 단체에서 공익전담변호사 활동을 하는 거랑, 어차피 배당금에서 200~300만 원이 나오나 근로소득에서 200~300만 원이 나오나 비슷한 게 아닌가? 이런 말을 했었다. 파이어를 하려면 최소 6~7억 원은 모아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15년은 바라봐야 할 거 같은데, 너무 늦는 건 아닌지? 반면에 공익인권 단체에서 공익전담변호사가 되는 건 자리만 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내가 큰 돈을 벌기 위해 애써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이런 고민을 후배에게 얘기했다.
그런 나의 철없는 말에 대한 후배의 조언은 이랬다. 파이어를 하고 나서 공익전담변호사를 하면 되지 않냐. 배당금으로 200~300받고 거기에 근로소득으로 200~300을 더 받으면 되지 않느냐. 어차피 100세 시대인데, 40대 중후반이라고 해도 늙은 나이는 아니지 않냐. 뭐 그런 취지였다. 생각해 보면, 6~7억 원을 모아서 매달 200만 원 남짓 배당금이 나온다고 해서 내가 놀고먹기만 할 것은 아니다. 뭐라도 일을 할 것이고, 유급이든 무급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후배의 조언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15년동안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 15년 동안은 '파이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내가 막상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공익전담변호사가 되었는데 막상 그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거나, 막상 공익인권단체에 가서 1/3토막 난 월급을 받으니 견딜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익인권단체에 간 이후에 다시 '일반 로펌'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재직하고 있는 '중대형 로펌'에서 2~3년 정도는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게 합리적 전략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고민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