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
'독서에 대한 독서'라든지, '공부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럴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실제 내 삶에 유용한 공부를 더 많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아주 우연하게, 자취방 앞 분리수거통 속에서 건져낸 책이다. 이런저런 수험서들과 함께 이 책이 버려져 있었는데, 책 상태가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지식 소매상'을 자임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이니만큼 그래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읽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것 보다는 뭐라도 책을 읽는 것이 당연히 낫다고 생각한다. 요즘 교사들은 하루종일 숏폼을 보는 아이들보다는 만화책이라도 읽는 아이가 차라리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책도 책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양산형 자기계발서, 삶의 태도와 습관을 바꾸면 당장 내일부터 내 삶이 180도 달라질 것이라고 달콤하지만 영양가 없는 속삭임을 내뱉는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며칠 정도는 삶의 태도가 바뀔 수 있겠지만, 결국 내 삶을 바꾸는 것은 실천과 경험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읽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 성인의 독서율을 나날히 떨어지고 있지만, 정작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 않나. 뉴미디어 시대, 전자책의 등장, 1인 출판의 대중화 등의 영향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특히 최근에는 AI를 전적으로 이용하여 작성된 책의 출판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책은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책을 쓰는 사람은 많아지는 시대라면,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되도록 '검증된 책'을 읽으려고 애쓰고 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책을 읽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책을 고를 때는 웬만하면 '고전'이나 '스테디셀러'를 위주로 구매하게 된다. 오랜 시간을 통해 검증된 책이라면 그래도 비교적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때의 유행으로 어떤 책이 단기간에 많이 팔릴 수는 있겠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리기는 어려울 테니까. 물론 최근에 출판된 책, 신진 작가의 책 중에서도 좋은 책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기에는 인생이 짧게만 느껴진다. 좋은 책을 골라 읽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래서 최근에 출판된 책, 검증되지 않은 책을 읽었는데 '좋은 책'이 아니라 오히려 '나무에게 미안한 책'을 읽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을 따름이다.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가 청년 시절에 읽은 책을, 중년이 된 이후에 다시 읽고 자신의 달라진 소감에 대해 쓴 책이다. 총 1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고, 그 중 5권이 문학, 9권이 비문학이다. 사실 쉬운 책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문학도 소개한 5권 중 3권이, 등장인물 이름 외우기도 힘들다는 그 유명한 러시아 문학이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책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 소개, 그리고 청년 시절의 감상과 중년이 된 시점에서의 감상을 읽고 나니, 왠지 모르게 읽고 싶은 느낌이 든다. 역시 기가 막힌 지식 소매상이다.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충분히 갈릴 수 있지만, 지식 소매상으로서는 좋은 사람이다.
유시민이 추천한 책이면서 동시에 오랜 시간을 거쳐 검증받은 이른바 '고전'에 속하는 책들인 만큼,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한 14권의 책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은 앞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사실 제목은 들어봤고 대충 어떤 내용인지도 들어봤지만, 정작 원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있다. 최인훈의 <광장>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 일부분 읽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다. <공산당 선언> 역시 첫 문장과 끝 문장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역시 과거 운동권들의 사상적 기반이 된 책이라는 점 정도만 들어봤지 읽은 적은 없었다.
특히 읽어보고 싶은 책은, <청춘의 독서>를 통해서 처음 들은 책인데,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다. 요즘처럼 부동산 문제가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이슈인 적이 없다. 최근 대통령이 '부동산 정상화'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최근 10여년 사이에 서울 주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중산층으로서는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급등하였다. 이제는 처음 본 사람에게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 아파트가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자의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곳이 없어 떠도는 사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헨리 조지는 단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얻는 '지대'에 대해서 높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의 표현대로라면 '부동산 보유세'를 크게 걷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동산 그 자체는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주식은 그래도 회사에 투자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라도 있지, 부동산으로부터 나오는 지대는 우리 사회에 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 보수적인 노태우 정권에서 '토지공개념'을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양극화를 완화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소득세는 낮추고, 재산세를 늘리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하긴 한다.
물론 부동산 보유세를 높였을 때,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염가에 처분하는 대신에 세입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에서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서는 대책이 있다고들 한다. 부동산 보유세가 높아지면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고, 월세 가격이 오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저소득층이나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의 공급, 혹은 세입자 권리 강화와 같은 대책들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유럽의 경우 세입자 권리가 너무 강하다보니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면접까지 한다고 해서, 세입자 권리 강화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만.. 결국 궁극적 대책은 지방분권과 수도권 집중 완화겠지.
아무튼, '독서에 대한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시민 작가 덕분에, 내가 평소라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책들, 단순히 교보문고 홈페이지 스테디셀러 코너에서 볼 수 없을 법한 책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내 지식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또 내 마음 속 '책 구매 대기 리스트'에 대기 중인 책들이 늘어났다. 회사생활은 바쁘고, 책을 읽을 시간은 별로 없는데, 언제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루 50쪽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가끔은 사회에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삶, 그것이 천국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