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기(18): 트럼프, 마두로, 대한민국

by 장파덕

불과 몇 주 전,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납치'한 것을 두고 전 세계가 들썩였다. 어떤 사람들은 13년 동안 철권통치로 야당을 탄압하고 독재정치를 일삼았던 마두로의 '체포' 소식에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환호하기도 하였다. 아마 베네수엘라의 상당수 민중들도 독재자의 '축출' 소식에 기뻐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마두로가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베네수엘라 민중에 의해 그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 군대에 의해 하루아침에 '납치'되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어쨌거나 베네수엘라도 주권국가인데, 외국기 주권국가의 지도자를 '체포'할 권한이 있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미국이 타국의 대통령을 '납치'했다기보다는 미국의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보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심지어 미국의 국제규범 위반과 주권 침해행위를 비판하는 진보성향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의 논평에 대해서 비판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어쨌거나 베네수엘라가 해방된 것이 아니냐,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잘 된 일이지 않냐,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원하던 결과가 아니냐고 말한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반미주의자', '빨갱이'라는 비난은 덤이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들 일부도 미국이 한다는데 괜히 비판해서 우리가 좋을 게 뭐가 있냐고, 진보정당을 비난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마두로는 독재자가 맞고, 반대 정파를 무력으로 탄압했고, 13년 동안의 철권통치로 베네수엘라 민중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다. 심지어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마두로를 제거하는 것은 선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늘날 국제사회의 규범과 UN헌장을 비롯한 국제법은 침략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 UN헌장은 원칙적으로 전쟁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UN안보리를 통한 절차를 거친 경우와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경우에 한하여 전쟁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은 그 어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베네수엘라를 침략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일부가 아니다. 엄연히 주권국가이고, 오늘날 국제사회의 규범은 모든 주권국가는 동등하다는 전제에서 성립되어 있다. 투발루와 미국은 주권 행사의 측면에서 동등하다. 니콜라스 마두로는 독재자이지만, 베네수엘라의 법과 제도에 의해,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저항권을 행사하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에 의해 축출되었어야 했다. 외국 군대가 하루아침에 '납치'하는 방식은, 베네수엘라의 주권,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주권자인 민중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물론 13년 철권통치 하에서 민중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그렇다면 야당이나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등 간접적 방식을 동원해야 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악한 수단을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악한 수단을 통한 선한 목적의 성취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폴 포트 도 어쩌면 좋은 목적을 내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이 지구상에 수많은 피가 흘러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니콜라스 마두로 역시 '나만이 베네수엘라를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라는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부정선거든, 야당 탄압이든 무슨 수단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와 니콜라스 마두로는 무엇이 다른가.


물론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가 '미국 내 마약 유통의 총 책임자'라는 혐의를 받는, 미국 법에 의해 기소된 범죄자이므로 범죄자를 체포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중국으로부터 펜타닐이 유입되고 있다고, 멕시코로부터 수많은 마약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국 행정부가 시진핑 주석이나 멕시코 대통령을 마약범으로 기소한 사실은 없다. 설령 마두로가 미국에 마약을 유통시킨 장본인이라고 하더라도, 타국의 국가지도자를 타국의 영토에서 '체포'하는 것은 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한 국제적 공조를 통하여 국제법을 준수하는 하에서 체포할 수도 있었다.


어찌보면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그저 마두로에 대한 '납치'를 조금이나마 정당화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천인공노할 독재자가 전 세계에 니콜라스 마두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제3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 부정선거와 야당탄압, 철권통치를 자행하는 독재자들이 수두룩빽빽하다. 미국이 조금만 조사하면 그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범죄혐의점을 내세울 수 있고, 마두로와 똑같은 방법으로 군사작전을 통해 '체포'하여 미국 본토로 압송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이 현재로써는 그렇게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 경찰은 법의 집행자이지, 무법자가 아니다. 미국은 '세계의 깡패'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모든 주권국가는 평등하고, 어느 국가도 타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은 모든 주권국가가 평등하다는 국제사회의 대원칙을 근본부터 훼손하고 있다. 2026년 미국은, 강대국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약소국을 침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 따위는 강대국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략이 정당하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대만 침략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강자의 말이 곧 법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므로, 미국이 주도하는 '약육강식'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승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약육강식의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동맹국'이 될 수 있을까? 동맹이란 동등한 지위를 가짐을 전제로 한다.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천자국의 제후국 또는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은 한미동맹이 양국에 이익이 되고 있지만, 언젠가 미국이 내미는 청구서를 갚느라 온 나라가 허덕이고 말지도 모른다. 한국이 미국이라는 플레이어의 장기말에 불과하다면, 언젠가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상 카드로 한국을 내다버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결코 강국이 아니다. 그러므로 약육강식의 국제질서가 확립되는 것을 막는 게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아무리 허울뿐인 규범이라지만, 말 뿐인 명분이라지만, 국제법이 아무리 무시당한다지만, 그러한 규범, 명분, 국제법이라도 있는 것과, 그러한 규범도 명분도 전혀 없이 강자의 말이 곧 법인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라는 명분이 아무리 허울뿐이라도 그러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행동은 최소한의 제한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으킬 때 '후세인이 아니꼽고 석유가 탐나서'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무력화'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은 다 이유가 있다.


2026년 미국은 이제 그저 자신들이 필요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덴마크의 주권에 속하는 그린란드를, 그린란드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기들의 영토로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세계의 깡패' 미국을, 단지 '우리 편 깡패'라는 이유만으로 감싸줘야 할 이유는 없다. 깡패가 왜 깡패인가. 이제 우리에게 보호비를 걷으려고 할 것이다. 세계의 깡패 미국에게 '세계의 경찰'이라는 가면을 다시 쓰게 하려면, 우리는 허울뿐일지언정 국제규범과 국제법에 더욱 호소하여야 한다. Make America Goo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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