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노란 네모'는 아니였을까?
어린 시절 집 책장 어딘가에서 이 책을 본 기억이 있다. 아홉 살 즈음, 다른 아홉 살 아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때 이 책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 책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집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금 발견하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는 꽤나 독서광이였는데. 요즘은 스마트폰만 붙들고 사신다. 아무튼,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우리 어머니는 책을 정말 좋아하셨고, 집에는 각양각색의 책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새삼 2002년도에 인쇄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의 문학소녀와 같은 감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한국나이로는 서른이 넘어서, 만나이로도 서른이 가까이 되어서 이 책을 다시 읽은 감상은 다소 양가적이다. 포근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책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작년에 읽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90년대 판자촌 아이들의 따뜻한 이야기라면, <아홉 살 인생>은 70년대 판자촌 아이들의 따뜻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조금 더 '짠내'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정도의 차이랄까. 책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판자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고, 동시에 그러한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무래도 2020년대를 사는, 여러 자극에 절여진 사람이라 그런지, 책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이지 않고 다소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아홉 살 소년 백여민은 한없이 정의롭고, 순수하고, 착하다. 전형적인 아이이고, 어른들이 아이에게서 기대하는 그런 모습을 최대한 갖추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하루아침에 전국 단위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조금은 속물적인 사람이 되는 모습도 나오지만, 그조차도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백여민의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가장의 모습으로 나온다.
백여민의 어머니 역시 집안일에 충실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홉 살 백여민의 여동생은 책 초반부에나 잠깐 언급될 뿐 후반부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가정에 대해 기대하는 그런 모습을 최대한 갖추고 있는 그런 가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난해서 판자촌에 살지만, 서로 가정에 충실하고,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자녀들을 돌보고, 배운 건 없지만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는 지혜로운 그런 부모님과 때묻지 않은 아이들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의 모습. 마치 자기소개서 첫머리의 '엄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다만 이 책이 그저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정상가족의 모습만을 그렸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하고 가치 있는 책으로 평가받지는 않았을 테다. 아이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려낸 것에서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 가정이 아닌 판자촌에 사는 가정에 대한 얘기를 함으로써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낼 수 있었을 테다. 주인공 여민이는 '왜 아무도 살지 않는 숲에 주인이 있는 거죠?'라는 질문을 하고, 여민이의 친구 기종이는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게 없고, 담임선생님은 월급기계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골방에 틀여박혀 정체 모를 공부에만 매진하는 '골방 철학자'의 모습은, 독재정권 하에서의 여러 제약으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힐 수밖에 없는 당대 룸펜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산동네 골목대장이었던 '검은제비'가 골목대장 자리를 여민이에게 물려주고 공장에 나가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영혼 없는 어두운 얼굴로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여민이의 어머니가 남편이 떼인 월급을 받으러 타지에 나간 동안 잉크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한 쪽 눈을 잃은 이야기는 당대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고발이나 다름없다. 어찌 보면 대단히 사회고발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어느 부분을 하이라이트라고 뽑으라고 묻는다면 사실 여러 장면이 생각나서 고르기 어렵기는 하다. 골방 철학자, 토굴 할매, 검은제비에 대한 에피소드도 정말 인상깊지만, 나는 아무래도 주인공 백여민이 '노란 네모'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깊었다. 주인공 백여민은 하루아침에 미술 관련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타게 되면서 학교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는데, 사실 여민이가 상을 탄 이유는 여민이가 그린 단순한 그림에 어른들이 지나치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영리한 주인공은 자신이 상을 탄 이유를 빠르게 파악하고, 자신이 마치 추상미술의 대가인 양 행세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부잣 집 친구네 집에 가서 어떻게 하면 미술을 잘할 수 있는지 묻는 어머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마치 미술의 대가인 양 행세하고 다녔느데, 어느 날 학교 미술시간에 주인공은 노란 네모를 그려 놓고,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란 네모로 형상화했다.'라고 입을 턴다(?). 그런데 주인공의 친구 신기종은, 주인공이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탄 이후로 변했다고 일갈하며, '나도 어머니를 그리워하지만 노란 네모처럼 그리워하진 않아!'라고 말한다. 네 별명은 '노란 네모'라고 말하며 주인공을 놀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기종이의 이런 놀림을 듣고 자신이 허영심에 빠져 속물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쩌면 나도, 마치 '노란 네모'와 같은 삶의 자세를 지니고 살지 않았는가 반성하게 된다. 실속은 없이 그저 그럴듯한 말을 붙이며 내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정당화해온 것은 아니였을까. 일단 저질러 놓고 사후에 그럴듯한 변명과 핑계를 덧붙이며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해 온 것은 아니였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그럴듯하게 입을 털면 성숙하다고, 어른스럽다고, 천재라고, 그런 좋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로만 그럴듯하게 해서는 안 될 때이다. 어른이 된 이상, 실제 행동으로, 실속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더 이상 노란 네모를 그려놓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입으로만 그럴듯하게 떠들어서는 안 된다.
이상이, '아홉 살 인생'을 만 스물아홉 살에 읽은 소감이다. 어쩌면 책의 주인공 여민이 부모님과 동년배일 나이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서른아홉, 마흔아홉에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감상이 생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