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곰님 Nov 11. 2024

근데 매일 뭘 쓰는 거야

1년 10개월 만에 궁금해진 거야?

토요일 아침, 평일과 같은 6시 알람소리에 일어난다. 등교하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남편이 모두 늦잠을 자는 토요일은 평소보다 아침을 늦게 먹는다. 나에게는 쓰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는 날이다. 평일엔 6시에 알람이 울리면 바로 쌀을 씻어 밥솥에 넣는 게 우선이다. 토요일 아침은 바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다. 평일에는 6시에 일어나서 쌀을 씻고 아들 방으로 들어와 스탠드불을 켜고 앉아 25분 정도 글을 쓴다. 그마저도 남편이 일찍 일어났냐고 문을 열고 아는 체를 하면 쓰던 흐름이 깨져서 시간이 더 줄어든다.


토요일 아침. 나는 아무도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바로 쓰는 일을 시작한다. 심지어 의식적으로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잠귀 밝은 남편이 깨서 거실에 앉아있기라도 하면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있어도 내내 신경이 쓰인다. 갑자기 내가 있는 방문을 열고는 


"오늘 아침은 무얼 먹을까?"라든가 

"쓰레기 지금 버리고 올까?" 하는 자질구레한 질문을 할 수 있으니까. 


작년 1년 동안은 쓰다 말다를 반복했고 해는 꽤 성실하게 썼다. 쓰는 내용은 사사로운 나의 신변잡기에 관한 것이고 분량도 스트링줄 노트 한 페이지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이젠 아침에 쓰지 않은 날은 영 기분이 개운하지 않을 사람이 되었다.


어제 아침에도 평상시와 같이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방문을 빼꼼히 열고

"근데 도대체 멀 그렇게 쓰는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1년 10개월 만에 부인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뜻밖의 질문에 나는 얼버무리며 책 내용을 필사한다고 둘러댔다. 나는 쓰기 전 내 나름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책을 펼쳐놓고 쓴다. 글을 쓴다고 말을 하는 건 너무 낯간지러워서 필사를 한다고 말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이다. 실제 책 내용을 필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쓴다. 


다행히 남편은 나의 답에 추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역시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숨기고 싶은 것이다. 아들방 책장 맨 위 왼쪽 구석칸에 나의 글쓰기 노트를 꽂아놓는다. 노트가 얇아서인지 그동안 쓴 노트만 5권이고 지금이 6권째이다. 나머지 5권은 내 옷장 구석 맨 아래에 있다.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보기도 민망하거니와 혹여나 남편이나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구도 볼 수 없게 꽁꽁 숨겨놓았다. 고민이 적혀 있기도 하고 반성이 적혀있기도 한 글들은 누구에게도 절대 보이고 싶지 않다. 늘어나는 노트가 이렇게 짐이 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문득 박완서 작가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서 읽은 부분이 생각났다.


난 꼭 한밤중에 뭐가 쓰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머리밭에 스탠드를 켜고는 두터운 갈포갓이 씌워졌는데도 부랴부랴 벗어놓은 스웨터나 내복 따위를 갓 위에 덧씌운다. 그래도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고 코 고는 소리가 고르지 못해 진다. 까딱 잘못하면 아주 잠을 깨 놓고 말아 못마땅한 듯 혀를 차고는 담배를 피어 물고 뭘 하느냐고 넘겨다보며 캐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물어물 원고 뭉치를 치운다. (382쪽)


그래도 나는 별로 낮에 글을 써 보지 못했다. 밤에 몰래 도둑질하듯, 맛난 것을 아껴가며 핥듯이 그렇게 조금씩 글쓰기를 즐겨왔다. 그건 내가 뭐 남보다 특별히 바쁘다거나 부지런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나는 아직 내 소설 쓰기에 썩 자신이 없고 또 소설 쓰는 일이란 뜨개질이나 양말깁기보다도 실용성이 없는 일이고 보니 그 일을 드러내놓고 하기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일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 (383쪽)


이 내용은 1971년. 그러니까 박완서 작가님이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등단하고 다음 해에 쓰신 글이다. 첫 작품이 공모전에 당선되고도 글을 쓰는 일이 부끄럽고,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고 하는 작가님을 보면서 나의 생각이 보통 사람의 생각임을 확인한다.


가족들에게 '나도 글 쓰는 사람'임을 공표하고 자랑스럽게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유는 쓰는 시간을 당당하게 얻고 싶어서이다. 매일 아침 30분의 시간이 너무 짧기도 하고,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커서 나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나에게도 점점 여유시간이 생겼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그때부터 한 시간 정도 글 쓰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얻고 싶다. 그러나 걱정되는 건, 무엇을 쓰는지 읽어보고 싶다고 할 가족들의 반응이다.


나는 계속 몰래 글을 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이 있는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