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곰님 Nov 10. 2024

타인의 스무 살이 나에게 다가온다.

김연수,스무 살

열심히 무슨 일은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는 것이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 기억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 한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김연수_스무 살 9쪽)


'김연수의 스무 살'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스무 살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내가 스무 살이 된 건 2000년이었다. 1999년이 지나고 2000년이 다가오면서 지구 종말이라는 우울한 이야기도 있고 정반대로 새천년이라는 희망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2000년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니 지금부터 20여 년은 더 지난 일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동안 스무 살의 나를 잊고 지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진다.


그 해 나는 청주로 올라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독립이라는 걸 한 것이다. 평소보다 잘 나온 수능 시험 성적에 나는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가기로 결정했다. 평소 즐겨보던 '집 고쳐주는 프로'를 보며 인테리어가게 사장이라는 꿈을 혼자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의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고 계셨고 평소 가족 간의 대화 같은 건 없는 집이었다. 그렇다고 화목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만큼의 소득이 없는 것을 나는 일찍부터 알았고 가난한 집안의 장녀답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께는 마음속으로나마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번 없으셨고 나의 대학 진로에 대해서도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으셔서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도 누구와 의논하지도 않았다. 아주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 후 내가 결혼하려는 남자를 부모님께 소개하는 자리에서 고3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은 나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내야 한다고 하셨고 아빠는 집안형편 상 지방 국립대를 보내야 한다고 하셨다. 십 년 만에 숨기고 계신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는 과외였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중개인이 학생을 찾아주고 첫 월급의 얼마간을 중개인에게 주는 조건으로 성사되는 계약이었다. 의 첫 과외 학생은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대학교 근처에 사는 학생이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걸어서 그 집으로 갔다. 주 2회 1시간 30분 정도의 수업을 하고 20만 원 정도를 받았으니 꽤 많이 받은 셈이다. 다행히도 그 학생은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서 큰 부담 없이 가르칠 수 있었다. 특히 시험  주에는 내가 전 과목을 봐주면서 학생 엄마의 믿음을 얻은 것인지 매 수업마다 음료와 간식을 내주셨는데 나는 그것들을 먹는 재미로 과외를 지속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공부하던 때를 떠올리며 나의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공부에 대한 관심을 두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몇 달간 과외를 하고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먼저 그만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머님을 앞에 두고 과외를 그만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어떤 장면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데 그 장면이 그렇다.


스무 살의 나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스무 살 때 그 학생은 14살이었으니 지금은 3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그 학생은 처음이자 마지막 과외학생이었지만 아마 그 학생은 그 이후에도 계속 과외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학생이 나를 기억할 확률은 낮아진다. 그래도 나를 꽤 성실한 선생님으로 기억하려나.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스무 살을 읽으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스무 살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책을 덮고 계속 떠올려보려 노력하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책을 열고 그의 스무 살을 읽는다. 그제야 한쪽 구석에 박혀 있던 내 기억 속 스무 살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통째로 잊고 지내던 나의 스무 살을 다시 기억해 내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면서, 문학이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쓴다.


나를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