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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곰님 Nov 17. 2024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이별

신규철,유빙(流氷)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다.


헤어질 때가 왔음을 알고 있는 연인이 있다. 커피잔을 마주하고 둘은 말이 없다. 사람은 시계방향으로, 다른 사람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듯이 둘은 계속 커피잔을 젓는다. 밖은 눈이 내린다. 밖에는 하필 다정한 연인이 걸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그들도 그런 적이 있었음을 각자의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다. 커피잔 젓는 것을 멈추는 누군가가 먼저 말을 해야 한다. 차라리 서로 소리치며 싸우는 이별이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입김은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다.  양가적인 감정이 생기는 건 이별의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인가.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지금 마주 앉아 있는 연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뒤돌리는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나간 시간 중에 좋은 기억들만을 추려내고 이별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아서 서로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자리를 벗어나면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테니 서로 잠시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시계방향으로, 나는 반 시계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던 손이 멈추면 커피잔 속의 소용돌이도 서서히 멈춘다.  그들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이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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