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졸업을 위해 용기 있게 한 걸음씩 내딛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면접이 얼마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지 처음 알았다. 살면서 면접 볼 일을 되도록 적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여러 목표 중 하나가 됐다. 공무원 면접을 보고 나서 합격했을 때, 직업을 얻었다는 성취감 다음으로 컸던 감정이 면접장에 들어갈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었다.
사람 일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이번 인생에선 본인에게 적용될 일이 없을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가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한 지 6년 만에, 필자는 작지만 안전한 집을 뛰쳐나왔다. 그토록 가기 싫었던 면접장에 다시 들어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면접은커녕 간단한 발표할 일도 없는 직장에서 시간을 보낸 이에게 면접 준비는 고역이었다. 말주변이 없고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더욱 준비 과정이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면접 빈출 질문과 답안을 작성해 통째로 외우는 미련한 훈련을 하루에 몇 번씩 반복하며 없는 말주변을 커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에 올라와 면접을 간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름에 정규직과 계약직 면접을 각각 세 차례 봤다. 다만 여러 번의 경험으로 정규직 면접의 벽이 훨씬 높다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취준생 생활이 1년 반에 접어들었던 2025년 12월 초. 필자는 이력서를 취업 시장에 살포한 끝에 두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한 곳은 계약직으로 일했던 회사였다. 다른 한 곳은 인턴직이었음에도 지원자가 500명 넘게 몰려 서류 전형 합격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회사였다.
나는 서류 전형에서 100:1을 뚫고 넘어온 사람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정신적인 압박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이 한번 머릿속에 들어오면 사고회로를 나약함으로 끝없이 오염시킬 것이 자명했다. 정규직 자리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들어가 일을 해야 했다.
면접을 앞두고 이전처럼 취업 날개의 정장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려 했다. 아쉽게도 지원사업의 예산이 소진돼 자비로 정장을 대여했다. 얼마 남지 않은 피 같은 돈을 쪼개 쓴 만큼, 더욱 비장한 각오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어김없이 정규직과 계약직의 면접장 분위기는 큰 차이가 났다. 먼저 방문했던 정규직 면접 자리에선 고차원적인 문제 상황 판단과 대안 제시를 요구받았다. 반면 그다음 날에 치렀던 계약직 면접 자리에선 이력과 업무 경력을 바탕으로 답변할 수 있는 쉬운 질문을 받았다.
두 곳 모두 고용을 해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필자는 두 번째 면접이 끝난 당일부터 바로 하루에 한 곳씩 이력서를 넣는 하루를 반복했다. 이때부터는 지원할 회사의 폭을 넓히고자 토익 스피킹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일할 기회를 어떻게든 잡고 싶다는 마음에 하루는 계속해서 팽팽 돌아갔다.
1주일 동안 두 곳 모두 연락이 오지 않아 속으로 단념을 했다. 연말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채용 생각이 있다면 다음 일정을 빠르게 통지할 터였다. 30번 넘게 탈락을 경험한 이로서는 아무도 연락해 주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리하여 지인을 만나는 겸 15년 만에 부산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 일정과 약속을 잡았다.
1차 면접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2차 면접은 다음 주 화요일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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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이력서와 면접 결과를 보고
정규직 면접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1년 동안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2차 면접 제안은 여행 일정이 확정되고 나서 동시에 쏟아졌다. 더욱 당혹스러웠던 점은 서류 전형 통과를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회사도 면접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부산 여행 일정은 12월 20일 토요일부터 1박 2일이었다. 불쑥 튀어나온 제3의 회사의 면접일이 22일이었고, 1차 면접을 치른 양사의 면접일은 모두 23일이었다. 미래를 결정할 면접 3개가 여행 바로 다음에 배치되자 고민에 빠졌다.
대학 다니던 시점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면 주저할 것 없이 여행 일정을 취소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12월의 필자는 과거의 자신이 지켜봤다면 오만하다고 여겼을 정도로 배짱을 발휘했다.
이 회사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2차 면접 기회를 준 것이다.
기본적인 질문에만 철저히 대비하고 이외의 질문이 나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데 집중하자.
이런 생각은 스스로 상정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질문이 나오면 어차피 임기응변해야 할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입사 지원과 탈락을 겪은 정신은, 최종 합격이 걸린 중대한 일정 앞에서도 약속을 깨지 않는 의리를 선택할 용기를 냈다.
부산행 열차 안에서 면접 예상 질문이 담긴 워드 파일을 몇 번 훑어보고 내용을 되뇌며 2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면접 예정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뒤 부산역에서 내렸다.
부산에서 보낸 시간은 무척 좋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광안리에서 실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바다의 야경을 즐겼다. 항구도시답게 부산은 지하철 도착 예정 알림이 뱃고동 소리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말로만 들어본 서면이라는 곳이 특히 밤에 젊은 사람들로 서울 못지않게 붐빈다는 것도 알게 됐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아주 짧게 느껴졌다. 좋은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면접일이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전의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월요일에 치른 것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AI 면접이었다. AI 면접관은 예상보다 이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무엇을 말해도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여 주는 면접관을 앞에 두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실존하지 않는 면접관 덕에 말하면 말할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특이한 면접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오전과 오후 시간대로 나뉘어 면접을 한 차례씩 치렀다. 인턴 자리에 지원했다가 다른 포지션으로 추가 제안을 해줬던 회사의 면접이 오전에 걸려 있었다. 결전을 치르기 위해 강남으로 향했다.
면접장에서 필자는 두 분을 홀로 상대했다. 도전자의 방어력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는지, 감사하게도 그분들께서는 받아치기 어렵지 않은 질문으로 약한 공격을 가하셨다. 그중에서도 지원동기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답변을 한 직후에 의도를 알 수 없는 파생 질문이 하나 들어왔다.
이력서를 보니 좋은 학교도 나오셨고,
자격증 여러 개 있으시고 경력도 있으신데
다른 좋은 회사 지원해도 되지 않나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 것이 정석이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왜 이렇게 답변했는지도 모른다.
제가 해온 것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할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사가 제게 그런 기회를 줄 곳이라고 판단해서 지원했습니다.
상술했듯 필자는 말주변이 없는 편이다. 말보다 글이 훨씬 편한 사람이다. 그러나 뜻밖의 질문에 맞닥뜨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말을 본능적으로 꺼냈다. 뇌에서 정제할 여유 없이 꺼낸 말이 너무 그럴듯하게 나와 스스로 놀라움을 느꼈다. 질문을 꺼낸 면접관께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셨다.
저 한마디가 나온 이후로 면접은 아주 호의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두 분께서는 필자가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업무 경험을 높이 쳐주셨다. 면접 내내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도 도움이 된 듯했다.
면접 예정 시간은 30분이었다. 그보다 15분이 더 걸렸지만 면접을 마치고 나서 피로감 없이 도리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는 사람, 오후 면접이 남아 있는 사람이 느끼기엔 과분할 정도의 상쾌함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 면접을 보기 위해 강북으로 향했다. 자신감이 어느 때보다 충만한 상태였다. 오전 면접에서 받은 긍정적인 기운을 그대로 오후 면접에 끌고 가고 싶었다.
심적 여유를 잃지 않고자 면접장 근처에 1시간 반 일찍 도착해 카페에 들렀다.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만 잠깐 달랠 심산이었다. 평소 가성비가 나쁘다는 이유로 손에 대지 않는 카페 샌드위치를 사서 한입 물었다.
샌드위치와 함께 주문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여러 웹사이트에서 많은 채용 공고 알림을 받고 있었기에, 여느 때처럼 알림을 살짝 보고 지우려 했다. 그러나 그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평소에 받는 것과는 다소 이질적인 제목을 가진 그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레 스크린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