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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Mar 07. 2022

대학생을 공무원으로 만든 '한 마디'의 나비 효과

너무 빨리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2017년 7월. 수강신청에 실패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듣게 된 수업들로 점철된 한 학기를 보낸 대학생이, 기분 전환을 위해 3박 4일의 해외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온 뒤였다.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한 여행이 상상했던 것보다 즐거웠던 덕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을 향해 가면서, 머릿속은 여행의 여운을 이야기로 풀어낼 준비를 하기 위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집 현관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뇌는 행복이 묻어나는 스토리텔링이 아닌 다른 이유로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여행의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려 시도하신 어머니의 한마디는, 청년의 하루뿐 아니라 삶의 궤도를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취업도 힘든 세상인데, 아직도 뭘 할지 못 정했다면 공무원 시험 준비해.
유학을 보내줄 만큼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오사카의 외진 골목의 식당에서 먹었던 꼬치 요리의 풍미를 묘사하기 위해 열심히 가동됐던 머리는, 여행의 즐거움에 가려져 있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갑자기 얼어붙고 말았다. 대학 입학 후 뚜렷한 목표 지점 없이 살아온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대한 대답과 그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 모두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산 오마모리(부적)의 의미는 '아들의 공무원 시험 합격 기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목표가 정해진 이에게 방황과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자의로 정하지 않은 길에 대한 의심, 열심히 해도 시간만 날리고 불합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힘들게 공부해 좋은 대학교를 들어와서, 다른 가능성을 1년 반 만에 포기하고 도망치듯이 최후순위라고 생각했던 공무원을 택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회의감까지. 세상 모든 그림자가 한 사람의 마음에 드리웠다.


  혈기 왕성한 만 스무 살 청년이 고소득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버리고, 통과 확률과 안정만을 좇아 현실과 타협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조차 뚜렷하게 정해 놓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의 기대를 짊어진 이상, 퇴로를 생각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대학생으로서의 자신을 내려놓은 뒤, 지치지도 않고 같은 모습을 한 채로 찾아오는 매일매일이 사계절을 가득 메워 갔다.


  제한시간이 맹렬하게 뒤를 쫓아왔던 필기시험,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 듯했던 면접을 관통하며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마음의 짐을 스스로 지우고 비틀비틀 걸어간 1년은 다행히도 보답을 받았다. '공무원 자녀'를 바라는 마음을 꼭꼭 숨기고 있던 부모님에게는 자녀가 독립을 할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고, 합격자에게는 삶의 보호막으로 삼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입장권이었다.


  불안이 완전히 안도로 대체된 일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이 직장에서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불안은, 남아 있는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에 관한 불안보다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포기한 진로에 대한 미련은, 작지만 확실한 보상을 약속받는 것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학생이자 예비 공무원이라는 정체성의 중첩이 주는 생소한 안도감은, 처음으로 일상이 '채워가는 하루'가 아닌 '떠나보내는 하루'가 되도록 했다. 일자리가 정해진 이상 높은 학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취업준비를 따로 해야 할 필요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제는 기한에 딱 맞추어 내고, 그 전에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새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대학생이기만 했던 때에 불필요한 걱정도 사서 하며 틈만 나면 한탄을 늘어놓던 청년은, 대학생이자 공무원이 된 뒤로 취직이 결정되지 않은 선배, 친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며 갖가지 고충을 듣고 달래주는 처지가 되었다. 인생의 갈림길에 놓여 헤매고 있던 애송이가 1년 만에 종착역에 도달한 것 같은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운명의 상한선을 정한 대가로 평화로움을 얻은 삶이 생소했지만,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왜 9급(공무원 시험)을 봤어? 너라면 7급이든 5급이든 해 볼 만할 텐데.
아무리 공무원이 좋다지만 너무 아깝지 않아?

조금만 다른 거 해 보다가 (공무원 시험을) 보지 그랬어.
아직 대학도 3년이나 남았잖아.


  임용을 유예하고 대학에 돌아온 뒤에, 주위 모든 이들로부터 비슷한 말을 듣게 될 것이라는 예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택한 길이 아니었던 만큼, 그런 말들에 대해 확신에 찬 대답을 매번 건네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불안과 의심이 피어오르려고 할 때면, '직장이 정해지지 않은 친구들에 비하면야…' 하는 생각으로 잠재우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마음의 도피처를 만드는 습관은 성적, 취업 준비 부담이 없는 자유로운 대학생의 일상에 완벽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 주었다.




  편안함이 넘치는 새 삶에 금방 적응해 버린 그는 인생이 계획과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평범한 젊은이가 마음을 놓고 살아가도 괜찮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편해 보이는 길을 가며 다시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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