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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27. 2022

뜻밖의 유랑과 당연함의 재발견

소중한 깨달음은 언제 어디에서든 찾아올 수 있음을

  봄이 여름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준비하던 무렵, 건물의 정화조에 문제가 생겨 배관이 망가지는 바람에 열흘 가까이 화장실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오물이 변기를 통해 역류하는 모습은 완곡하게 표현을 하려 하면 머릿속에서 알맞게 정제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5cm 정도 되는 화장실 문턱이 그 물질들의 진격에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그때의 감정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다.


  본가에 내려와 있는 동안 지난 학기를 회상하면, 그저 다사다난한 4개월이었다는 감상만 떠오를 뿐이었다. 중간고사 시험기간에는 화장실을 쓸 수가 없어 땀을 흘리고도 제대로 씻지를 못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고, 조부모상을 치르는 동안 과제와 수업이 밀리면서 한동안 후회와 긴박감이 뒤섞인 나날을 보냈다. 평온하던 일상에 풍파가 몇 번씩 닥쳤기 때문에, 올해 남은 기간에는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으로 2학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여름 내내 비웠던 방으로 돌아와 보니, 믿을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 영역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친한 후배에게 부탁해 방의 상태를 중도에 확인한 바가 있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벽지뿐만 아니라 이불, 옷에도 곰팡이가 구석구석 침투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방 주인분과 상의를 한 뒤 벽지를 교체했고, 옷과 이불에 스민 곰팡이를 소탕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든 채 몇 번이고 세탁소를 오갔다. 끝내 구조하지 못한 희생자도 있었지만,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입한 끝에 소중한 친구들이 대부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이 넉넉히 주어지지는 않았다. 매일 보는 뉴스에 대형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기사가 뜬 것을 처음 본 날, 밥이 제대로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또 생길 것이라는 직감은 어김없이 현실이 되었다. 힌남노라 불린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는 힘을 많이 잃어버린 뒤였다. 그러나 아무리 무딘 창이라도 종이 방패 정도는 뚫는 법이다. 비가 굵어지면서, 도로를 접하고 있던 벽면과 화장실 부근에서 물이 새어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 길을 개척한 물줄기의 진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새벽에 도망치듯이 방을 나와 인근 숙박업소로 향했다.


건물이 보수가 제대로 안 됐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았어 ?


  이튿날 처음으로 이쪽을 향한 말소리가 귓가에 하염없이 맴돌았다. 급한 연락을 받아 오전 수업도 팽개치고 방으로 달려온 입장이었다. 하지만 학기 중에 다른 방을 알아봐야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둔 학생으로서 짧은 기간 동안 지낼 수 있는 방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했다.


  무릇 학생이라면 학교 생활에 중심을 두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닥쳐오자, 방을 찾고 구하다 남는 시간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괴이한 일상을 보내는 처지가 되었다. 8월에도 잡기 힘든 방이 9월에 쉽게 잡힐 리 만무했고, 어떻게든 묵을 방을 찾기 위해 눈높이를 한없이 낮춰야 했다. 그러나 필터를 아무리 관대하게 적용해도, 어떤 것이 되었든 무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따름이었다.




  9월 6일은 이 삶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날짜일 것이다. 살던 방을 떠나 이곳저곳을 전전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고, 이전처럼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으며, 마지막 수강신청 정정마저 망치면서 자포자기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짐을 끌고 돌아다니느라 몸은 피로에 절여져 있었고, 지은 적 없는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듯한 절망에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다.


일단 당장 잘 곳 없으면 한동안 우리 집 와서 자라.

  그러나 그 날은 동시에 고통의 크기에 비례하는 값진 깨달음을 얻은 날이기도 했다. 한숨이 뭉쳐져 만들어진 듯한 하소연을 들은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방을 당분간 내어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신청 마감'이라는 야속한 글자가 비치는 모니터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던 졸업 예정자, 이내 차오르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아득바득 애를 써야 했다.


  친구의 방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1시간이 걸렸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소중한 깨달음을 되새기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 저녁은 실로 놀라운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감격의 눈물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좋은 친구의 가치는 알았지만 그 가치에 합당한 감사함을 표시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메마른 벗에게 아무리 막막해보여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길이 있다는 것까지 가르쳐줬다. 그저 무안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에게 하루라도 신세를 덜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새 방을 잡아야 했다. 친구가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었으나, 새 거처를 마련하고 보답을 하는 것이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발이 부어오를 정도로 걸어다니고, 교통카드 결제 금액에서 만의 자리수가 두 번 바뀌고 나서야 겨우 살 만한 빈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 하면 으레 현대적 이미지, 끝없는 고층건물의 숲부터 시작해 각종 판타지를 연상한다. 21세기보다는 20세기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성북구의 한적한 동네에서 3년 반이나 지낸 대학생인지라, 그러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부연설명이 없다면 서울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향토적인 분위기가 나는 곳에 살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 살게 된 방은 무려 55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얄궂은 우연의 연쇄작용으로,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 ─내년이면 헐릴 예정이라고 하는─ 지극히 유서 깊은 방이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지낼 곳이 되었다. 당장 거처를 구해야 했던 시골 생활 경력자에게 어딘가가 무너질 일은 없는 방, 비가 새거나 벌레가 집결하진 않는 방이라는 매력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화장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방,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 방. 심지어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 이사를 하고 나서 새로 알게 된 이 방의 새로운 특징들이다. 아마도 태풍이 많은 비를 뿌리지 않았더라면, 전에 살던 방에서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며 지금 살고 있는 방은 헐릴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사실적 가정이 배제된 시공간에서 그럭저럭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일단 잘 먹고 잘 지내야지. 그것 말고 바라는 건 없어.

  일상을 살다 보면 종종 과거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을 되새김질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적어도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9월이 올해 가장 힘든 시간을 어깨 위에 지웠지만, 힘들었던 만큼 많은 것을 얻었음을 느낀다. 태풍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여지껏 그래왔듯 부모님께 1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침수 사건 이후로 이전보다 자주 연락을 주시고 있다. 자식이 이전보다 5배는 높은 빈도로 연락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연락할 때 대부분의 내용은, 누구든 부모님으로부터 흔하게 들을 법한 저 한 마디에서 뻗어나온다. 세탁비와 교통비로 인해 불어난 지출 때문에 식비를 아껴야 했던 고통, 머무를 곳이 없어 겪은 당혹을 체감하고 나서 그 흔한 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이런 9월이 없었다면 몸은 좀 더 편했겠지만, 몸이 좀 더 고생을 한 덕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부적절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꼭 고쳤어야 할 나쁜 버릇을 적당한 대가를 치르며 제때 바로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한 달 전에 생각했던 미래와는 많이 다른 현재를 보내고 있으나, 바람직한 목적지에 도달한 것에 만족하면서 주위의 모든 존재들에 감사를 표하고 10월을 맞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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