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38개 번역본 비교 - 3

오독은 어떻게 패턴이 되었는가

by Yejinsoul


이 시리즈를 쓰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된 단락. 소설의 진짜 시작이자 소설의 근간인 부분이다.



No-Gatsby turned out all right at the end; it is what preyed on Gatsby, what foul dust floated in the wake of his dreams that temporarily closed out my interest in the abortive sorrows and short-winded elations of men.



압도적으로 많은 번역자들이 No – Gatsby turned out all right at the end.’를 ‘그렇다. 개츠비는 옳았다’라고 번역했다. (예시는 뒤에)


마치 원문이 Yes, Gatsby turned out to be right at the end. 인 것처럼 변형시킨 셈이다. 대체 왜?




He’s all right.

He’s right.


둘은 다른 말이다.


He’s all right. 걔 괜찮은 애야.

He’s right. 걔가 맞아.




all right 은 “옳다”가 아. 니. 다. 매우 기초적인 영어다. 그러므로 번역자들이 하나같이 뜻을 몰라서 ‘개츠비가 옳았다’고 번역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도적으로 오역을 선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왜 그들은 원문의 의미를 다 함께 버렸을까? 이전 문장과의 자연스러운 연결(불현듯 등장한 No 처리)과 문학적 여운을 위해 자의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번역가들이 이 의도적 오역을 똑같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저 말이 나오기까지 오프닝의 흐름 요약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하지 않는 나(닉)조차도 한계에 이를 만큼, 동부에서 인간의 환멸을 맛보았다. 개츠비라는 인간만 제외하면. 그 역시 내가 경멸할만한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대단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No – Gatsby turned out all right at the end;


왜 갑자기 No가 나왔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일종의 ‘잠깐!’으로 ‘내가 세상에 대한 혐오에 빠지게 된 계기들 중에 개츠비도 포함된다고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데,’ 이런 의미로 나온 문장이다. ‘잠깐, 오해 말길. 개츠비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세미콜론(;)을 찍어 이어지는 문장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환기시킨다. 세미콜론은 일종의 접속사다. 두 문장이 어떤 관계로 연결되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No-Gatsby turned out all right at the end; it is what preyed on Gatsby, what foul dust floated in the wake of his dreams that temporarily closed out my interest in the abortive sorrows and short-winded elations of men.



강조의 It is A that B.


‘B 한 것은 바로 A다’


즉, temporarily closed out my interest in the abortive sorrows and short-winded elations of men 한 것은 바로 what preyed on Gatsby, what foul dust floated in the wake of his dream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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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 단락의 구조를 쉽게 정리하면


‘아니 잠깐, 개츠비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미콜론의 의미 – 괜찮지 않았던 건, 문제였던 건, 나를 환멸에 빠지게 한 건) B 였던 건, 바로 A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 김ㅇㅇ 번역 (ㅁ출판사, 2003년)



원문이 전달하는 두 문장의 연결감이 실종되었다.

1. 개츠비 승리(정신승리든 진정한 승리든) 선언 2. 나의 이야기. 상관없는 두 문장으로 읽힌다. 완전히 개조한 문장 1과 성실히 정갈하게 옮긴 문장 2인 셈이다. 의미상 하나인 문장인 걸 간과한 것.




• 김ㅇㅇ 번역 (ㅇ출판사, 2013년)



드러났다, 판명되었다.. turned out 을 과잉 해석한 번역들 중 하나. turn out 을 ‘알고 보니’ 정도의 뉘앙스 이상으로 옮기면 의미가 뒤틀린다. 소설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다. 개츠비의 옳음(?)이 드러난 서사는 소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김ㅇㅇ 번역 (ㅁ출판사, 2009년)



안 그래도 연결이 끊어진 두 문장에서 뒷문장을 ‘자신 스타일 글쓰기‘로 가는 바람에, 주절주절이 증폭되었다. 한글 문장 자체로 읽히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개츠비를 삼킨 것들 =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부유하는 더러운 먼지들’ 동일한 현상을 2개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기에 ‘그리고’ 라는 병렬 관계로 묶은 것도 오역.




세미콜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미콜론이 의미하는 ’논리의 링크‘를 복원해야 한다. 모두 하나같이 연결성 없이 툭 끊긴다. 그 여파로, 이어지는 문장이 난해하게 읽힌다. 그렇다면, 끊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개츠비는 옳았다’ 라고 오역을 했기 때문에 연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개츠비는 옳았다’ 라는 “그럴듯한 명문 한 줄”을 위해 맥락은 버린 것. 솔직히 말하면, 전략적인 선택(‘명문’을 취하고 ‘맥락을 포기하자’ 라는) 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맥락과 그다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장 하나만 빼서 창의력(?)을 발휘한 것이다. 최초 번역자부터 많은 번역자들이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의 모호함에 압도되어, 또는 편승해 뭔가 그럴듯한, 문학적인, 심오한, 소설의 메시지인 듯한 문장을 앞뒤 생각 안 하고(소설의 근간을 생각 안 하고) 만든 것뿐이다. 원문은 그런 모호함을 전하는 문장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독자들 대부분이 서두부터 ‘아 뭔가 심오한 소설이구나’ 움츠러든다. 제목도 ‘위대한’인 데다, 서술자가 ‘옳았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개츠비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라는 신화가 형성된다.





올바른 번역


오해 마시라. 개츠비는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인간의 서 푼짜리 비애와 일회성 환희에서 한동안 관심을 거둔 것은, 개츠비를 갉아먹은 바로 그것, 그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다니던 그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을 뿐이다.





• 고ㅇㅇ 번역 (ㅇ출판사, 2022년)






• 한ㅇㅇ 번역 (ㅇ출판사, 2011년)






이쯤에서 단락뿐 아니라 작품 전체 맥락에서도 ‘그렇다. 개츠비가 옳았다’ 이 문장이 왜 잘못된 삽입인지를 얘기하려 한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여기서 닫아도 된다)


개츠비가 옳았다면, right about what?

— 어떤 면에서 그가 옳았는가.


Right about Daisy?

No. 데이지는 배신한다.


Right about the past?

No. 과거를 되살리는 데 실패한다.


Right about the dream?

No. 바로 그 꿈이 그를 파괴한다.


Right about morality?

No. 범죄와 타락의 세계에 연루된 사람이다.


한국말의 ‘옳았다’가 풍기는 ‘이겼다’ 승리의 뉘앙스는 더욱 빗나간 해석이 된다. 모든 면에서 그는 결국 패배하고 죽는 인물이다. 꿈 때문에 파멸한다. 그가 죽은 후 ‘개츠비가 옳았던 거였어…’ 라는 서사는 소설의 그 어디에도 없다. ‘위대한 개츠비’는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 계급, 위선이 빚어낸 파멸의 매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처음부터 정교하게 짜여진 파멸의 설계도, 그 중심에 개츠비가 있다. “그가 옳았다”라고 하는 순간, 그 파멸의 서사에서 개츠비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주인공이니까 옳다는 식의 단순한 도식이다.


‘파멸했지만, 꿈을 꾸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 아닌가?’ 이 부분이 대부분의 독자와 번역자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1장 서두는 9장(소설의 끝) 까지의 일들을 겪은 지 2년이 지난 닉의 고백이다. 소설의 끝, 9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닉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꿈은 이미 뒤에 있다는 것을. 도시를 넘어 저 광대한 미지 속 어딘가, 밤의 장막 아래 이 나라의 어두운 들판이 펼쳐지는 곳에 있다는 것을.”



닉은 개츠비의 꿈을 옳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안타까워한다. 단순히 이루기 힘든 꿈이기 때문이 아니라, 좌표가 어긋난 꿈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를 꿈으로 설정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에 가깝고, 과거를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물리의 법칙을 거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무리에서 개츠비의 그 ‘어리석음’을 한탄했던 그가 2년이 흐른 후, 소설의 1장 서두에서 ‘그렇다, 개츠비가 옳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설의 자기부정이 된다.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소설의 ‘수미상관‘을 인지조차 못한 듯하다.


닉은 개츠비가 옳거나 훌륭하거나 순수해서 그 편에 선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그 편에 선 것뿐이다. ‘더러운 세상에서 개츠비만이 때 묻지 않은 사람이었다. 개츠비 포에버!’가 아니라, ‘ruined, but not rotten 망가진 사람이었을 뿐, 썩은 사람은 아니었다. (진짜 썩은 인간들은 따로 있다)‘ 라고, 썩은 무리와 구별하고 있을 뿐이다. ‘No, he was okay. He was not a real problem.’


닉의 개츠비에 대한 감정은 연민이다.

1. 옳았다 판결을 내려 주는 것도 아니고,

2. ‘진정한 승리자는 개츠비’ 정신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3. 순수에 대한 찬미는 더욱 아니다.

거의 모든 번역자와 독자가 3으로 오해한다.


이걸 이해하고 보면 번역문들이 왜 어처구니없는지 더 분명해진다.




• 조ㅇㅇ 번역 (ㅎ출판사, 2008년)



‘밝혀졌다’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지는 번역.




• 김ㅇㅇ 번역 (ㅂ출판사, 2020년)



주절주절 느낌을 없애려고 애를 썼으나, 억지.




• 최ㅇㅇ 번역 (ㅇ출판사, 2013년)



이건 또 뭔가요. 잘 살아냈다구요? 책 끝까지 읽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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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수지만 ‘원문대로’ 번역한 버전들. ‘좋은 번역’인지는 판단해 보시길.




• 이ㅇㅇ 번역 (ㄷ출판사, 2012년)



‘그렇다’만 쓰지 않았을 뿐, 역시 같은 오독. 인물 예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인물’ , ‘판명’. 되풀이되는 패턴.




• 김ㅇㅇ 번역 (ㅅ출판사, 2015년)



톤은 이게 정확한 톤.

아쉬운 점. ‘문제가 없었다’ 보다는, ‘문제가 아니었다’가 나았을 것. 뒷문장도 어긋남. ‘개츠비를 잠식한 원흉’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나(닉)를 이토록 환멸에 이르게 한 원흉’에 대한 이야기.


나를 환멸에 이르게 한 원흉 —> 개츠비가 아니었다

나를 환멸에 이르게 한 원흉 —> 개츠비를 잡아먹은 그것,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니던 먼지 (같은 현상을 2개의 이미지로 그린 것)




• 황ㅇㅇ 번역 (ㄷ출판사, 2018년)



성공한 번역. 거기에다 ‘개츠비가 아니라’를 넣어 의미가 분명해졌다. 아쉬운 건, ‘따져보면’이라는 표현. 왜 썼는지는 이해 간다. 의미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at the end = 따져보면, 모든 걸 고려했을 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뉘앙스기 때문에. 그러나 그걸 문자 그대로 쓰는 순간, 닉의 점잖은 회상톤, 우아함이 떨어진다. 문장 전체를 잘 옮겼기 때문에 ‘따져보면’ 없이 그 뉘앙스는 이미 전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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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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