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은 어떻게 패턴이 되었는가
이어서,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동부로 가서 살 결심을 하는 대목.
I enjoyed the counter-raid so thoroughly that I came back restless. Instead of being the warm center of the world the middle-west now seemed like the ragged edge of the universe.
enjoyed the counter-raid를 ‘반격을 즐겼다’라고 읽었다면 피츠제럴드의 반어적 뉘앙스 캐치에 실패한 것이다.
번역에 있어 직역이 오역 다음의 큰 죄악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직역이 오히려 필요한 문장이 있고 반드시 의역을 해야 하는 문장이 있다. 그걸 구분하는 게 번역가의 일일 것이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안 되는 문장이다.
I enjoyed the counter-raid so thoroughly that I came back restless.
‘전쟁에 참가해 반격을 너무나도 즐긴 나머지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일 리가 없다.
진짜 의미는 ‘전쟁을 실제로 겪고(반어법적 enjoy),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
첫째, 전쟁광이 되어 돌아왔을 리 없고,
둘째, restless는 가만있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불안(anxiety)과 관련된 단어다. 신나서 들떠있는 걸 뜻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이 단어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일종의 경미한 ptsd라는 걸. (As any normal person would have after a war.)
셋째,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 여파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털어놓는다. ‘세상의 따뜻한 중심 같던 이곳 중서부가 이제는 너덜거리는 우주의 가장자리처럼 느껴졌다.’ (Instead of being the warm center of the world the middle-west now seemed like the ragged edge of the universe.) 이 문장은 오히려 직역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약, 피츠제럴드가 반어법으로 enjoy를 썼기 때문에 번역문도 똑같이 ‘반어법’으로 썼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restless와 이어진 다음 문장 번역에서 그 의도가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 김ㅇㅇ 번역 (ㅁ출판사, 2003년)
뒷문장을 제대로 옮겼다면 피츠제럴드의 반어법적인 표현이 미묘하게라도 전달되었을 것. 그러나 ‘활기찬 중심지 vs 초라한 변두리’에서 그런 의도는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njoy를 곧이곧대로 ‘만끽하다’라고 옮긴 것일 뿐. 그러다 보니 정작 단어의 본래 의미 그대로 옮겨야 할 warm을 ‘활기찬’이라는 엉뚱한 의미로 변형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시끌벅적한 세상을 겪고 와 시골이 시시해진 남자가 되었다. 원문의 의미에서 벗어난 엉뚱한 내용이다.
center vs edge보다 중요한 단어는 warm vs ragged.
또 하나.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에 나온 소설이다. ‘The Great War’를 ‘1차 세계 대전’이라 옮기면 어쩌자는 건가. 미래에 다녀온 후 쓴 글인가? 각주에 넣어야 할 말을 본문에 써버려 anachronism(시대 오기, 오류) 을 범했다.
2차 세계 대전(1939–1945) 후에야 ‘1차 세계 대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1920년대의 청년이 어떻게 2차가 있을 줄 알고 ‘1차 세계 대전으로 알려진’이라는 말을 씁니까. 백투더퓨쳐인가요?
• 김ㅇㅇ 번역 (ㅇ출판사, 2013년)
위 번역보다 더 확신에 차있다. ‘전쟁놀이에 신났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지루한 남자’.
논리적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오니 고향이 ‘초라해’ 보인다는 게 납득이 되는 정서인가? 문학을 번역함에 있어 중요한 자질은 ‘의심’이다. 자신이 아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
The Great War는 통과(이걸 통과하고 있어야 되는지… )
• 김ㅇㅇ 번역 (ㅁ출판사, 2009년)
‘하도 신이 났던 터라’. 반복되는 오독.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에서 톤을 눈치챘나 싶다가 뒷문장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활기찬 세상의 중심’ vs ‘초라한 세상의 끝’ X
1925년의 청년이 ‘훗날 1차 세계 대전이라고 불리운다’라는 예언(?)을 하고 있는 anochronism 까지 똑같은 패턴.
• 황ㅇㅇ 번역 (ㅎ출판사, 2025년)
역시 실패. 또 하나. 피츠제럴드는 전쟁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counter-raid를 쓴 것이지, 구체적인 군사작전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므로, 역습, 반격, 작전, 승리 이런 말을 그대로 쓰면 이렇게 enjoy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ragged edge와 벼랑 끝은 전하는 정서가 전혀 다름.
• 이ㅇㅇ 번역 (ㄷ출판사, 2012년)
실패. ‘세상의 따뜻한 중심’은 살렸으나. ‘초라한 변두리’에서 다시 멀어짐. center vs edge 가 아닌 warm vs ragged에 포인트가 있다는 의미는 뭐냐면, 정서의 변화를 보라는 의미.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것이 이제는 너덜너덜로 느껴진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너덜너덜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투영한 단어인 것이다.
여기서 center는 뉴욕, 대도시, 수도 같은 세상의 중심, 그런 중심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말하는 거고, 내가 살던 미드웨스턴, 중서부의 가치관, 정겨움,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전쟁을 겪고 돌아오니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 ‘에이 초라하고 시시해, 재미 찾아가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전쟁을 온몸으로 겪고 돌아오니, 마음이 쉽사리 평안을 찾지 못했다. 세상의 따뜻한 중심처럼 느껴졌던 중서부가 이제는 낡고 해진 우주의 변방 같았다.
• 김ㅇㅇ 번역 (ㅅ출판사, 2015년)
Fail. 게다가 ‘지리멸렬’은 어디서 튀어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delayed Teutonic migration 을 어찌할 바 몰라 그렇게 ‘처리’ 한 것으로 보인다. delayed의 의미는 1차 세계 대전 발발하고 한참 후(2년 후)에야 미국이 참전했기 때문에 닉이 냉소적으로 붙인 말.
• 안ㅇㅇ 번역 (ㅅ출판사, 2018년)
하나도 맞는 데가 없다. warm center를 아예 지어냄. 미드웨스트(오하이오, 미네소타)가 언제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의 중심지’였습니까. 그것도 20세기 초에.
• 황ㅇㅇ 번역 (ㄷ 출판사, 2018년)
‘열성적으로 싸웠다’는 의미는 다소 어긋나지만, enjoy가 진짜 enjoy 아님을 고민한 번역. ‘안락한’과 ‘황량한’의 대조도 정확한 뉘앙스. 그러나 ‘천하의 둘도 없는’ 같은 ‘성깔’을 꼭 추가하는 습관이 있는데, 닉의 보이스와는 동떨어진 어조.
• 방ㅇㅇ 번역 (ㅊ출판사, 2001년)
‘그 유명한 제1차 세계 대전’, ‘양상이 너무나 재미있’… UFC 참관 후기인 줄.

• 윤ㅇㅇ 번역 (ㅇ출판사, 2007년)
‘지구촌의 중심지’ㅎㅎ ‘지구촌’이라는 개념은 60년대에 등장한 개념으로 20세기 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
• 최ㅇㅇ 번역 (ㅇ출판사, 2013년)
가장 성공적인 번역. ‘즐겼던 탓인지’ 에서 ‘enjoy? 이 문장 맞게 본거야 내가 지금?’ 번역자가 의구심을 가지고 접근한 게 보임. 원문에 가장 가까운 톤.
- 6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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