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첫 문장에 관하여

vulnerable? 유약? 상처?

by Yejinsoul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위대한 개츠비’ 첫 문장의 vulnerable을 많은 번역이 ‘유약, 여림, 소심’으로 접근한다.


우선, vulnerable은 풍부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




• I’m in a vulnerable position.

위태로운(간당간당,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뜻이고,




• Thank you for being vulnerable.

힘든 얘기 솔직하게 털어놔줘서 고맙다, 이런 뜻이다.




흔히들 fragile의 동의어로 생각해서 ‘취약한’으로 이해할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나 vulnerable의 취약함은 태생적 취약함이 아니라 상황, 환경에 ‘오픈’되어있어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취약함이다.




그래서 이 예문 둘

• I’m in a vulnerable situation.

• Thank you for being vulnerable.




에 쓰인 vulnerable은 사실 그 근원은 같다. 전자는 openness 때문에 힘들다는 거고 후자는 자발적 openness에 대해 고맙다는 뜻.





‘위대한 개츠비’의 유명한 첫 문장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을 보자. 여기서 vulnerable은 소심하고 여린 ‘성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고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아 있던 어린 시절’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인 것이다. naive, inexperienced, unformed 이런 뉘앙스.




관용적으로 많이 쓰이는 in my formative years 이란 표현이 있다. 신체, 정신이 형성되던 시기, 성장하던 시기, 현재의 나를 만든 청소년 시기.. 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예. In my formative years I developed a deep love for reading)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는 그걸 문학적으로 쓴 것이다.




풀어쓰자면 ‘세상물정 아직 잘 몰라, 환경과 상황에 영향받을 일이 많아 어떤 사람이 될지 아직 몰라, 말랑말랑하던 때’ 그런 의미.




‘아직 어리고 말랑말랑하던 때’라고 하면 의미적으로 원문과 가장 가까운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대로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초판번역부터 많은 번역이 ‘내가 더 어리고 연약/유약했던 시절에’, ‘내가 더 어리고 상처받기 쉬었던 시절에’… 와 같이, 화자 Nick의 ‘성격’처럼 묘사한다.




vulnerable을 곧이곧대로 영한사전 뜻 대응 번역한 글이 왜 유독 거슬리냐면, 첫 페이지의 내용 면에서나 리듬 면에서나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원문에는 없는 산만함이다.




무슨 소리냐면,


첫 페이지를 요약하면 ‘어려서 아버지가 심어준 가치관 때문에 형성된 닉의 성향’, ‘머리 크기 전에 각인된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상처, 연약 운운하면 마치 아버지의 가르침이 인과관계에서 나온 말처럼 들린다. ‘약해빠진 놈에게 필요한 조언’을 했다는 소리로 들린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너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놈이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거라…?) 근거도 페이지에 없다.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이 구절을 지나치게 신성시 번역(직역)하는 이유는, 원작에 대한 압도와 더불어 초판번역을 의식한 데서 비롯된 거 아닐까 한다.




또 하나.


한국말은 ‘내가 어렸을 때’라고 하지만 영어는 ‘when I was young’이라고 하지 않는다. ‘when I was younger’라고 한다. 즉, In my younger years를 굳이 비교급을 살려 번역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더 젋었을 때’ 보다는, 담백한 ‘내가 어렸을 때’가 보통 영어를 쓰는 사람의 의도다. 즉, 한국어로 자연스러운 ‘내가 어렸을 때’가 그에 부합하는 표현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 ‘번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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