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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있는 도시에서 4박 5일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

by 김성현 JOSEPH

여행자가 밟을 수 있는 남쪽 길의 끝에 있는 도시,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티에라 델 푸에고 주’에 위치한 최남단 항구도시. 현지인들은 이곳을 ‘핀 델 문도(Fin del Mundo)’, 즉 세상의 끝이라고 부른다. 태평양이 모든 길을 넓게 열어 주는 자유의 땅이지만, 과거 죄수들의 유배지로 사용되기도 했던 고립의 땅이기도 했다.

지형적 특성상 범죄자들을 격리하기에 최적의 지역이었기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정치범, 중범죄자들의 유배지로 활용했던 것이다. 마을 동쪽 끝에는 일명 감옥 박물관 ‘마르티모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1920년 아르헨티나 전역의 강력 범죄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다. 1943년까지 운영되다가 해군 병원으로 개조되었고, 현재는 380여 개에 이르는 별실에서 다양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과거 모든 범죄자들을 한데 모아 격리했던 곳일지라도, 우수아이아는 대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도시다.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항구도시는 남극으로부터 불과 1,000㎞ 정도 떨어져 있어 남극 여행의 전초기지로도 유명하다. 세계의 끝을 느끼고 싶어 하는 여행객들은 이 도시에서 빙하와 숲, 늪지대를 둘러본다.


배를 타고 태평양과 대서양이 이어지는 비글해협(찰스 다윈이 타고 온 배 비글호를 따서 붙인 이름)에서 바다사자와 가마우지 떼와 만나고, 펭귄 섬에서 펭귄들 사이를 걷기도 한다. 우수아이아에는 항구도시답게 근해에서 잡힌 킹크랩 ‘센토야(Centolla)’를 요리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브라질에서의 이민자의 삶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 우수아이아는 남위 55도에 위치해 지구 최남단 도시이자 걸어서 갈 수 있는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나는 6년 정도 한국에서 가장 먼 땅인 남미에서 이민자로 살았고,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척박한 ‘파타고니아(황량한 해안)’ 같은 브라질에서 이민살이를 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면서 그동안 남미 중심 ‘상파울로’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고단한 삶을 남미의 끝 ‘우수아이아’에서 정리하고 싶었다.

우수아이아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마젤란(포르투갈 탐험가, 1480~1521)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이 절벽 위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 ‘불의 땅’ 즉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이다.


어찌 보면 너무 춥고 혹독한 오지인지라 불이 없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는 땅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지쳐 식어버린 내 마음에 불꽃이 일기를 기도했다. 그럼 지금부터 불과 얼음과 바다 그리고 황무지의 땅에서의 4박 5일을 시작하겠다.

첫째 날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우수아이아까지의 거리 2,365㎞. 비행기는 3시간 20분 만에 그 거리를 지나 목적지에 데려다주었다. 해안가에 있는 공항에서 바라본 우수아이아는 작지만 단단했고 세상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의연한 모습을 간직한 도시였다. 세찬 바람이 이는 바다와 아기자기한 마을 그리고 그 뒤를 둘러싼 설산(빙산)이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여행 기간 중 머문 숙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다가 은퇴한 멋진 노부부(모니카와 살바도르)가 운영하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는 그들의 미소를 보니 부모님 댁을 찾은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다. 짐을 풀고 도시 한복판으로 나가 아기자기한 거리를 거닐었다. 동양인은 보이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도 늘 그래왔던지라 불편함은 없었다.


그동안 쌓인 여독 때문인지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간절해서 ‘라모스 헤네랄레스(Ramos Generales)’라는 1906년에 오픈한 오래된 카페를 찾았다. 원래 이곳은 핫초코 맛집이라고 하는데, 나는 꿋꿋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인이 들어가니 피곤이 가시면서, 곧 허기가 몰려왔다.

둘째 날 : 모니카가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 주변 산책을 마친 후 렌터카를 예약하고, 하루 종일 우수아이아 시내에서 서쪽으로 12㎞ 지점에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ierra del Fuego)’을 둘러보았다. 세상 끝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우선 크기가 거대해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며칠씩 캠핑하며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많다.

점심 무렵 공원 안에 있는 식당을 향해 가고 있는데, 두 남녀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차를 세웠더니 다짜고짜 차 안으로 올라탔다. 알고 보니 야생 동물이 공격해서 잠시 대피한 것이었다. 야생이 살아 있는 오지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두 남녀는 이스라엘에서 온 커플이었다. 대학에서 히브리어를 전공한 내가 그들의 모국어로 몇 마디 말을 건네자 깜짝 놀라며 하는 말, “생명의 은인이 히브리어를 하다니!” 이래서 인생은 놀랍고 즐거운 게 아닌가!

셋째 날 :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브라질에서 살면서 6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눈.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은 ‘드라이빙 데이’로 정했다. 지도를 펼치자 우수아이아와 남극으로 가는 모든 화물이 도착하는 ‘히우그란데(큰 강)’라는 항구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이 소요되는 곳. 시동을 걸고 우수아이아를 빠져나가자 눈 덮인 설산과 봉우리들이 반겨 주었다. 이후 황량한 파타고니아 지형이 끝없이 펼쳐졌다. 가는 동안 지나는 차를 거의 못 볼 정도로 극 오지였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 외로이 뻗어 있는 도로를 혼자서 달리니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시내에 도착해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두 블록 앞에 ‘코레아’라는 간판이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니 진짜 한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이었다. 세상의 끝에서도 차로 3시간이나 더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항구에 한국인 상점이라니! 정말 어메이징 코리안이 아니던가!

넷째 & 다섯째 날 : 바다로 나갔다.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비글(찰스 다윈을 태우고 세계를 일주한 배 이름)해협은 일찍이 수많은 선박을 난파시키며 악명을 떨친 케이프 혼의 위험한 바다를 피할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양조위 감독이 만든 영화 <해피투게더>에 등장하는 ‘세상 끝 등대’(슬픈 기억을 묻어두고 오는 곳)와 무래 섬과 펭귄 섬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우수아이아에서는 흔하고 가격도 착한 킹크랩으로 점심을 먹은 후 산장 위에 있는 빙산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는 100여 명이었는데, 바람도 거세지고 눈보라까지 불어와 중간 휴게소에서 대부분 돌아가고,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사람은 나와 나보다 20여 분 앞서가는 두 사람뿐이었다.


정상 부근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신혼여행으로 우수아이아로 온 사만타와 다니엘은 나를 보고 “당신이 안 올라왔으면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했다”라며 고마워했다. 나도 “당신들 보고 정상까지 올라왔다”라고 하니 추위와 바람 속에서도 두 사람은 환하게 웃었다.

떠나는 날, 모니카가 건내준 (손수 만든) 그림엽서를 읽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우수아이아, 그 작은 항구도시에서 바라본 바다와 빙산 그리고 지났던 여러 길들에서 만난 사람들과 홀로 자유로웠던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졌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고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디오스(Adios) & 그라시아스(Gracias) 우수아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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