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에게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후배가 내게 말했다. “언니, 이러다 저만 애 키우는 기계가 되어 썩어 없어질 것 같아요.”
전업주부치고 이런 서늘한 공포를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젊음이 아이에게로 흘러가 아이가 그 생기를 오래 유지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지만, 나나 후배 같은 보통의 인간들은 아직 그런 숭고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나'라는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뜨거운 존재들이었으니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근무하던 중 찾아온 둘째는, 사표를 던질 가장 완벽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과중한 업무 탓에 첫째에게 소홀했던 미안함, 먼 곳으로의 발령, 그리고 임신 초기라는 조심스러운 상황들이 맞물려 나는 고민 없이 사표를 던졌다.
처음엔 모든 것이 옳아 보였다. 첫째의 일상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안도감과 둘째를 온전히 내 몸속에서 건강하게 키워낸다는 축복의 시간. 하지만 둘째가 백일을 맞이할 즈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안일한 마음으로 선택했던 이 길이 사실은 쉼표가 있는 '사직'이 아니라, 훨씬 더 험난한 조건의 '이직'이었다는 것을.
전업주부라는 직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직장 생활과 닮아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성실히 임해야 하고, 때론 스트레스에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어진다. 그러다 아이의 웃음 같은 아주 찰나의 보상에 다시 열정을 불태우고,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한다.
다만, 이 직장에는 결정적으로 결핍된 것들이 있었다. 숫자로 찍히는 보수도, 승진이라는 사회적 인정도, 나를 증명할 자기계발의 기회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혹한 것은 퇴근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몸과 마음이 고된 것은 아마도 이 끝없는 무한 근로 시스템 때문이었으리라.
만약 내가 이 길을 처음부터 이직에 의한 새로운 커리어로 인식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육아라는 업무에서 오는 희로애락을 좀 더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장엄한 결심으로 이 길을 선택하지는 말라고. 엄마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조르다가도, 막상 전업주부가 된 엄마에게 다시 회사에 다니라고 말하는 게 아이들이다. 그런 유연하다 못해 변덕스러운 자식의 마음을 내 인생의 근거로 삼는 것은 너무나 위태로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동안 나는 전업주부였다가, 다시 워킹맘이 되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이직을 반복할 수도 있다. 어떤 자리에 있든 내 마음을 근거 삼아 결정하고, 그 순간의 선택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믿어주는 것. 그것이 전업과 복직, 그 무수한 경계를 오가는 우리가 살아남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다.
전업주부라는 낯선 이름표를 달고 애쓰는 당신에게. 나는 그 우울함과 싸우기보다 그저 자연스럽게 곁을 내어주라고 권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이라고 해서 늘 행복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동료와의 갈등, 야근, 억울한 일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억들이 우리에겐 이미 충분하다.
전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지칠 때는 가족들에게 '근면성실 우수사원상' 정도는 당당히 요구해도 좋다. 훗날 우리는 이 길의 끝에서 분명 값진 공로상을 받게 될 테니까.
퇴근길 동료와 나누던 맥주 한 잔처럼, 오늘은 그때의 후배와 소탈하게 차 한 잔을 나누고 싶다. 놀랍게도 그 후배와 나는 몇 년이 흐른 지금, 다시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우리는 그저 순간순간을 전심으로 살아낼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거창하게 쓰고 나니 내가 꽤나 단단한 철학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아이들의 마음만큼이나 유연한 게 바로 내 마음이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이직이라는 단어만 보면 가슴이 뛰고, 막상 일터로 나가면 집을 그리워한다. 전업주부의 안정감을 누리면서도 손가락은 부지런히 구직 사이트를 새로고침 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적응하는 순간 지루함이 찾아와버리는 내 고질적인 캐릭터가 참 힘들다.
그러나 이 변덕스러운 마음 덕분에 나는 전업과 워킹맘이라는 두 세계의 결핍과 풍요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이 분주한 발걸음이, 결국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기꺼이 이직을 꿈꾼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경건한 설거지 더미로부터, 내일의 또 다른 나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