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만나는 여행] 쿠알라룸푸르 이주 시물레이션

#2. 30%의 이해로 100%를 경험하다

by 온셀OnCeLL

01. 이제 내 눈으로 확인할 시간

이튼 국제학교에서의 5일.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참치 주먹밥, 토스트, 샌드위치 등을 쌌다. 사실 비행기 탈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엔 글로벌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등교시키는 우아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학교 급식을 맛본 아들이 "엄마, 내일부턴 점심 도시락도 좀 싸줘. 입에 안 맞아."라고 했을 때, 나의 낭만은 빠르게 반납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등굣길 핸들을 잡고, 그러나 현실은 움푹 패인 아스팔트 위에서 비명을 질러가며 도착한 학교. 낯선 교실을 향해 줄을 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연한 소문 대신 학교의 진짜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할 시간이었다. 낯선 언어와 문화라는 파도에 아이들을 기꺼이 던져 넣고, 그 안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낼 수 있을지를 냉정하게 가늠해 보기로 했다.


02. 아들과 딸, 그 미묘한 온도차

5일간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남매가 학교 문을 나서며 내뱉는 첫마디의 온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G5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은 거의 학교 감사팀에서 파견 나온 요원 같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 올라타더니 평론을 시작했다. "엄마, 여기 애들도 선생님 말 안 듣는 건 한국이랑 똑같아. 영어는 한 30% 알아듣겠는데, 수학은 우리나라 학습지가 더 어려운 것 같고..." 자유로운 국제학교의 공기 속에서도 아들은 흔들림 없이 팩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반면 G3 수업을 받고 있는 막내딸은 이미 이 학교와 사랑에 빠진 금사빠였다. 차 문을 열자마자 하이톤의 돌고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마! 나 이 학교 평생 다닐래! 친구들이 나보고 왜 교복 안 입냐고 계속 물어봐. 나 내일은 꼭 교복 입고 가면 안 돼?"


냉철한 분석가 아들과 열정적인 체험가 딸. 이 극과 극의 온도차 사이에서 운전대를 잡은 나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아들의 말대로라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싶고, 딸의 반응을 보면 '당장 이사라도 와야 하나?' 싶었으니까. 결국 이 팽팽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나는 오늘도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배고파!"라는 남매의 공통된 외침에 엑셀을 밟았다. 역시 국적과 학제를 불문하고, 성장이 급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방과후 간식이었다.


03. "가서 보고 결정해" : 대부분의 선택이 그렇듯이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수영 수업이었다. 낯선 친구들 앞에서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웠던 막내는 전날 밤부터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저 "수영복은 챙겨줄게. 할지 말지는 네가 가서 보고 결정해"라고 공을 넘겼다.


하교 후, 막내는 상기된 얼굴로 튀어 나왔다. "엄마! 나 수영했어! 진짜 재밌었어!"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니, 어젯밤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자신을 가로막던 문턱을 가뿐히 넘어선 듯한 아이의 표정를 보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직접 겪어본 현실 위에서만 자기만의 안목이 자라난다는 것을. 환상을 걷어낸 자리에는 그렇게 각자의 진짜 경험이 채워지고 있었다. 아이의 수영 수업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선택이 그렇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실제보다 거대하고 두렵지만 일단 발을 담그고 나면 그 파도는 생각보다 견딜 만하고 심지어 즐거울 때도 있다.


04. 떠날 사람들과 남을 마음

등교 후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왜 막상 국제학교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이토록 망설여지는 걸까?"


단순히 돈이나 영어 실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니, 그 망설임의 끝에는 관계의 유통기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곳 국제학교라는 생태계는 태생적으로 떠날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언젠가는 각자의 나라로, 혹은 또 다른 목적지로 흩어질 인연들.


나는 생각보다 정서적 유대감에 깊은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다. 이건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이 싫은 외로움과는 결이 다르다. 내 삶의 지표가 흔들릴 때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연속성 있는 관계,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뿌리 깊은 유대감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이다.


결국 이 3주는 나에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험의 크기'뿐만 아니라,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돌아갈 서울의 일상 속에는, 결코 유통기한이 다하지 않을 단단한 관계의 뿌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Gemini_Generated_Image_25ww7b25ww7b25ww.png 국제학교 체험수업


[여담: 사실은 이렇습니다]

"신나게 놀다 오겠다"고 했지만, 내 머릿속은 최적의 교육 환경과 가족의 행복 사이에서 답을 찾느라 과부하 상태였다. 3주간의 임상 시험을 마치고 나니, 신기하게도 머릿속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물론 국제학교행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밀려오는 감정은 뜻밖에도 도시락으로부터의 장렬한 해방감이었다. 서울의 맛있는 학교 급식이 주는 그 평화로운 안온함이 세상 눈물겹게 고마워졌다.


반면,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큰딸의 농담 섞인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다. "엄마, 나중에 커서 전 세계에 친구 한 명씩 있으면 진짜 멋질 거 같아. 특히 중국인 친구 한 명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듯?! " 아이들에게 다국적 친구들과 교제할 기회를 없애는 것 같아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우리는 "말레이시아 국제학교가 좋다더라"는 풍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겐 직접 걸어본 교정과, 함께 나눠본 대화와, 그리고 정직한 땀방울이 있으니까. 우리만의 데이터, 이 확신을 얻은 것만으로도 내가 이 낯선 길을 기획했던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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