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만나는 여행] 쿠알라룸푸르이주 시물레이션

#3. 랑카위, 쉼표의 재발견

by 온셀OnCeLL

01. 여행 중의 여행, 머무름이라는 생경한 자극

말레이시아의 북서쪽, 안다만 해에 떠 있는 99개의 섬 중 가장 큰 주인공인 '랑카위'.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섬이자, 섬 전체가 면세 구역인 여행자들의 낙원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로 고작 1시간이면 닿는 거리지만, 그곳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사실 이번 랑카위 여행의 동기는 명확했다. 2주간 쿠알라룸푸르에서 현지 적응이라는 미션을 치르며 우리 가족은 꽤 지쳐 있었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낯선 도로 위에서 비명을 지르던 일상. 우리에겐 생활이 아닌 진짜 여행이,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방전의 시간이 절실했다.


쿠알라룸푸르가 치열한 생활의 시뮬레이션이었다면, 랑카위는 그 중간에 찍은 커다란 쉼표였다. 재미있는 건, 3주간 머물던 쿠알라룸푸르가 어느새 집처럼 느껴져 랑카위로 떠나는 길이 마치 집 근처로 다녀오는 2박 3일 동남아 휴양지 같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30년 된 클래식한 '홀리데이 빌라 리조트'에서 3일 내내 수영복을 입고 지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새로운 자극과 갈망을 좇아 자리를 금방 뜨는 사람이었다.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며 여유를 누리는 법을 몰랐던 내게, 이번 휴양은 그 어떤 액티비티보다 생경하고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02. 오래 머물러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성급하게 자리를 뜨지 않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인피니티 풀에서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자, 하늘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찬란한 보랏빛 선셋을 선물했다. 물놀이 후 나른한 몸으로 먹는 감자튀김의 고소함, 끝을 정해두지 않은 채 누리는 편안함은 초반의 호기심만 채우고 떠났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감각이었다.


해 질 녘까지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놀던 아이들은 한식당에서 한식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렇게 좋은 랑카위를 어떻게 잊어"라고 속삭이는 아이들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비로소 분주히 움직이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 함께 웃는 기억의 신선도였음을 증명하는 밤이었다. 무한할 것만 같던 랑카위의 휴양은, 나에게 '멈춤' 역시 성장의 한 방식임을 가르쳐 주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7yke7b7yke7b7yke.png 랑카위의 순간들


[여담: 사실은 이렇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사악했던 주류세가 랑카위에선 마법처럼 사라진다. 캔맥주가 생수만큼이나 저렴해지는 기적을 마주하며, 어른들의 휴양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 가족을 무장해제 시킨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식당에서 만난 된장찌개와 김치전이었다.


낯선 향신료와 단순한 음식에 지쳐갈 때쯤 만난 그 칼칼하고 시원한 맛은, 너무나 다정한 위로가 되었다.

진짜 맛있다며 깔깔거릴 수 있는 익숙한 편안함. 결국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것을 보는 짜릿함 50%와, 그 낯선 곳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익숙함을 재발견하는 안도감 50%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랑카위의 밤은 그렇게 가장 세속적이고도 가장 충만한 행복의 농도로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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