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다르지만, 네 세상은 궁금하니까
고등학생 딸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부모에게 공유하고, 함께 즐기자고 손을 내미는 것. 사실 이건 부모 입장에서 꽤 기분 좋은, 낯선 환대였다. 사춘기라는 견고한 성벽을 쌓는 대신, 딸은 자신의 음악 취향 속으로 나를 기꺼이 초대했다.
시작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이었다. 뙤약볕 아래 잔디밭에 앉아 자이언티의 라이브를 듣고, 푸드트럭 음식을 맛보며 라우브의 공연까지 즐겼던 시간. 몸은 고단했지만 그 음악 현장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지루하던 일상을 단숨에 리프레쉬시켰다.
두 번째는 백예린의 콘서트였다. 딸과 나란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나는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음악을 하는 딸의 모습이 무대 위 가수의 실루엣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와 있었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나는 딸과 나란히 걸으며 방금 공연에 대해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내가 다른 부모와는 다르다는 우월감보다는, 이 멋진 자극 속으로 나를 끌어당겨 준 딸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저였다. 아이의 취향이 내 삶의 유통기한을 또 한 번 늘려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내 여동생과 큰딸, 우리 셋이서 소란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무려 스탠딩석이라는 거대한 도전이었다. "이 나이에 스탠딩이라니!" 싶었지만, 막상 첫 곡이 터져 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나 아직 뛰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날 이후 우리 집 거실에는 자연스레 소란의 음악이 흐른다. 티켓팅 할 때의 긴장감, "이 노래가 내 최애곡이야"라며 후기를 나누던 밤길, 그리고 조명이 꺼지고 첫 반주가 시작되던 그 전율의 순간들. 이 찰나의 감각들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단단한 힘이 된다.
나의 도전정신은 이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탐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이의 취미를 존중하는 단계를 지나며, 지금 이 시대에 얼마나 보석 같은 뮤지션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활동하고 있는지, 요즘 아이들이 어떤 호흡으로 음악을 소비하고 즐기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생경한 멜로디들이 어느덧 내 귓가에 익숙하게 감기고, 급기야 무한 반복 재생 목록에 이름을 올릴 때의 짜릿한 배신감이란!
공연 메이트라는 유연함을 선택한 덕분에, 나는 오늘도 딸의 세상 속에서 가장 신선한 자극을 수혈받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눈을 빌려 내가 몰랐던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일인가 보다.
분명 있는 그대로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멋지게 선언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은 그녀의 플레이리스트 앞에서 길을 잃는다. 락과 밴드 음악 특유의 그 웅장한 난해함과 인디 음악의 독특한 서정성 사이에서 그녀의 음악 세계가 생각보다 너무 심해(深海)였음을 깨닫는다.
거실에 울려 퍼지는 낯선 선율 속에서 남매들이 머리를 맞대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분명 보기 좋은데, 왜 내 고막은 자꾸만 조용한 클래식을 그리워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