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달살기의 케미스트리
신도시 조호바루에서의 삶은 메디니 몰과 시트린 허브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MR.DIY로 달려가 허접하지만 유용한 프라이팬과 신발장, 그 외 집기들을 사 모았다. 낯선 마트에서 집어 드는 물건 하나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질감과 향을 가졌고, 그 낯설음이 주는 자극이 나를 깨어있게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에코네스트의 코인 빨래방이었다. 숙소 세탁기에서 끝도 없이 모래가 나오는 탓에 순전히 빨래를 하기 위해 찾은 이곳에서, 세련된 카페 'Tom & Danny'의 라떼 한 잔을 마시며 갓 건조된 빨래의 포근한 향기를 맡았다. 남들에겐 고생으로 보일 빨래 원정이었지만, 나에게는 조호바루의 공기를 가장 깊게 들이마시는 휴식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모험이었겠지만, 사실 혼자 낯선 도시를 생활형으로 누비는 매 순간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유소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며 95번 노란색 노즐을 꽂을 때의 긴장감, 주차 정산 기계와 씨름하며 1링깃을 지불해낼 때의 작은 성취감. 나는 이곳에서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한 명의 탐험가였다.
변화와 자극을 사랑하는 나였지만, 조호바루가 주는 의외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뜻밖의 평화를 맛보았다. 아이들을 어학원에 보내고 혼자 렌터카를 몰며 현지 라디오를 들을 때, 한국에서의 복잡한 소음들이 차단된 채 오직 '나'와 '현재'만 남는 기분이었다.
자야 그로서리에서 초록색 뚜껑 생수를 고르고, 현지인들처럼 나시르막에 도전해보는 소소한 일상들. 그랩 배달로 피자를 시켜 먹고, 샤오미 스틱으로 넷플릭스를 연결해 아이들과 마틸다를 함께 보는 평범한 저녁. 한국에선 당연했던 것들을 낯선 곳에서 하나씩 구현해 내는 이 과정은 나에게 가장 짜릿한 자기 갱신의 시간이었다.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꽤나 깔끔을 떨고 음식을 가려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조호바루의 부킷인다 수요야시장과 말라카의 야시장에 가면서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웬걸, 아이들은 북적이는 인파와 생경한 냄새 사이를 탐험가처럼 누볐다.
가장 놀라웠던 건 큰딸이었다. 그 지독한 향기 때문에 모두가 뒷걸음질 치는 과일의 왕, 두리안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분 좋은 배신감이었다. 내가 알던 아이의 세계가 한 뼘 더 넓어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건 부모로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니까. 물론, 냄새에 예민한 둘째가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건 생존의 문제"라며 마스크를 쓰고 두리안 재앙에 대한 연설을 늘어놓는 통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변화와 자극을 사랑하는 내가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내려다주고 나시르막 맛집을 찾아다니며 나만의 최애 메뉴를 정하고, 단골 카페를 정해 정해진 자리에 앉아 일기를 썼다.
누군가는 "새로운 곳까지 가서 왜 맨날 똑같은 걸 해?"라고 묻겠지만, 나에게 이것은 지루함을 견디는 게 아니라 지루함을 즐기기 위한 전략이었다. 낯선 환경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나만의 단단한 루틴을 만들어 놓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가치는 '끊임없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줄 작은 반복들'을 설계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메디니몰 광장에서 "엄마, 이거 동물 학대 아냐?"라며 10링깃짜리 물고기 잡기 놀이를 하던 막내. 그 옆에서 "엄마, 현지 엄마들은 저기 앉아 있더라. 엄마도 저기 앉아 있어"라며 나의 '현지인 코스프레'를 강요하던 아이들. 조호바루의 평화는 사실 아이들의 이런 엉뚱한 참견 덕분에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