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후 바뀐 점들>

by 진다르크

원래의 나라면 앞을 보며 걸어가면서도 항상 잡념에 휩싸이느라 하늘, 나무, 구름 등을 관찰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구름을 관찰하고 감탄하며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제는 소금 빵 같은 구름이었는데 오늘은 하트 모양이네. 이 꽃의 이름은 뭘까. 여름밤공기, 신호등, 처음 가보는 동네 골목길, 하늘, 그리워지는 겨울밤공기까지.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은근히 둔한 면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타인의 행동, 말투, 손짓, 특징 등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습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관찰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소설 속 인물들을 만들어 나간다. 더불어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각색하여 소설로 쓰기도 한다. 게다가 불쾌하고 슬펐던 경험들, 화났던 경험들, 결핍 또한 어느 순간 내 소설의 자양분, 주인공들이 되었고 그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들이 승화되었다.


이른바 메모병에 걸렸다. 자기 전에도 문득 아이디어나 문장이 떠오르면 얼른 메모장을 킨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까먹을세라 얼른 메모를 한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 노트북 한쪽 구석 폴더 안에는 나만의 비밀들이 가득 들어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글을 쓰고 나서부터 진짜 책벌레가 되었다. 글을 쓰다가 집중이 안되면 소설책을 읽는다. 그리고 독서의 집중이 떨어질 때면 다시 노트북을 키고 글을 쓴다. 그리고 창작의 고통이 생길 때도 소설책을 읽는다. 독서와 글쓰기의 무한 반복이다. 나는 활자가 더 좋아진 사람이 되었다.


나는 5년 동안 요가에 아주 푹 빠져서 자격증도 준비하고 진지하게 요가강사를 업으로 삼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만큼 요가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마라톤, 등산 또한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오랫동안 앉아서 글만 쓰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운동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작문 도중 몸이 찌뿌둥해질 때면 강아지와 산책을 하거나 아주 간단한 요가 동작만 한다. 한 달 전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요가를 하였는데 유연했던 나의 몸은 어디로 가고 실력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다소 충격을 먹기는 했다.


국어사전은 중학교 2학년 국어 수업 시간 때만 펼쳐보고 다시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노트북 즐겨찾기에 네이버 국어사전이 등록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나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었다고? 영어 공부가 아니라 한국어를 다시 공부해야겠어. 게다가 박완서 소설을 읽었을 땐 모르는 단어들이 정말 너무 많아서 책이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아직 나는 이렇게 수준 높은 소설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구나. 그리고 나는 아는 단어도 사전으로 한 번 더 검색해서 정확한 뜻을 다시 익힌다. 소설을 읽다가 중간중간마다 책을 덮고 단어를 찾기에는 맥이 끊기므로 수첩에 모르는 단어들을 적어놨다가 추후에 한꺼번에 뜻을 검색한다. 적어놓은 수첩만 지금 몇 장이 된다. 단어들을 많이 알아야 글이 더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북토크나 독서모임을 좋아해서 자주 갔었지만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의식적으로 더 자주 방문하게 된다. 실제 작가들을 만나면 나의 꿈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도 들고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에는 책방에서 에세이 작가님에게 8주 동안 글쓰기 수업을 듣기도 했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수업 내용은 '슬픔에 대해 쓰고 싶으면 슬프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매일 쓰레기를 쓰겠어.' 이 두 가지다. 심지어 후자는 실제 여자 영화감독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완벽해 보이는 예술가들도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과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을 때는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느껴지게 할까 사유해 본다. 아, 그리고 새로운 루틴도 생겼다. 집 앞 도서관을 주 3회 정도 방문하여 책도 빌리고 (덕분에 책값이 많이 줄었다.) 열람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독서를 한다. 근데 인간은 환경이 정말 중요한 듯하다.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싶고 빨리 멋있는 작가가 되려면 북토크, 도서관, 작가, 책에 가까운 환경을 더 접해야 한다는 걸.


예전에는 독서보다 넷플릭스를 더 많이 시청했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스타로 하루를 허비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SNS에 사용하는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고 독서에 심취하다 보면 자연스레 SNS와 멀어졌다. 오히려 독후감을 SNS에 올리거나 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적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유튜브 시청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SNS에 소비하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에는 핸드폰 속 인스타 버튼을 누르는 대신 전자책 앱으로 손이 가는 탁월한 능력도 생겼다.


나는 학벌도 좋지 않고 학교 공부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중력도 짧아서 독서시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시간이 짧다. 반면에 지적 호기심은 또 매우 많은 편이라 나보다 어느 한 분야에 지식이 많거나 학력이 좋거나 소설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심이 생기며 매우 닮고 싶어진다. 김연수와 류시화, 최진영의 소설을 보면 어쩜 글을 이렇게 잘 쓸까, 감탄하며 신기해한다. 그러는 동시에 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며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서도 동기부여와 나름의 자극이 되어서 더 많은 배움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동사무소에서 악기도 배우고 헬스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우리 집은 결코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부모님들은 늘 우리 가족처럼 싸우는 줄 알았고 대부분의 집이 가난한 줄 알았다. 그리고 자상한 엄마도 있다는걸, 화목한 가정도 있다는걸, 사이좋은 부모님도 계시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항상 나의 내면 아이는 구석에서 주눅 들어 있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슬퍼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내면아이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그동안 미워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어린아이에게 그동안 힘들었지, 괜찮아라고 말하며 꼭 끌어안아준다. 결국 소설 속 화자들이 결국 나의 내면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나의 상처와 결핍이 소설을 통해 치유되고 성장하고 교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으로서 그리고 약간의 성인 ADHD와 HSP와 함께 사는 나로서는 글은 최고의 선물이다. 아니, 축복이다. 미래가 불안해지면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리며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고 친구가 없어 외로운 날에는 글을 쓰거나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한다. 괴로운 과거가 자꾸 떠오르는 날에는 오히려 복기하여 글을 통해 상처를 인정하고 마주한다. 결국 글쓰기는 나에게 치유의 과정이다. 그리고 일상이 단순하고 익숙한 걸 더 선호하는 나는 기상 후 청소를 하고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서 독서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글을 쓴다. 친구가 없는 나로서는 글쓰기는 나에게 친구나 다름없다. 호기심으로 사주를 몇 번 여러 곳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전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계속 쓰라고. 돈복이 많다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이었다. 제일 기분 좋은 말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글쓰기를 시작한 후 나쁜 점은 운동을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이것도 사실 나의 게으른 핑계긴 하지만) 이외에는 전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더 행운아다. 종종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지 취미로 삼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는데 정답은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걸 지금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왕왕 습작 과정 속에서 돈도 안되는 걸 내가 지금 왜 하고 있지, 정말 힘들다, 독자 없는 소설가, 이게 나중에 뭐가 된다고, 나는 뛰어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은 그걸 왜 하냐며 반문하는 등 여러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포기할까 싶은 마음과 함께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뭐 돈 벌려고 작문 시작했어? 등단되면 좋겠지, 공모전 수상하면 좋겠지, 책 많이 팔리면 좋겠지. 근데 내가 단지 좋아서 하는 거잖아. 그만 생각하고 그냥 하자. 그냥 하는 거야. 왜냐하면 좋으니까. 왜? 그냥.


좋은 글은 힘이 있고 따뜻한 글은 독자를 위로해 주는 힘이 있다. 결국 나는 사랑을 위해,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은 거였다. 삶을 이루는 여정 속에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결국 나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모든 작가 지망생들, 존경하는 문학인들, 그리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오기를. 꿈이 이루어지길.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ㅡ 아우구스티누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육체의 눈과는 차원이 다른 정신의 눈이 있어 미래를 보고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인생이 한 방향으로만, 그러니까 책장을 넘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른다는 생각을 버렸다. 시간은 인간의 언어. 측정 도구. 약속. 인간이 발명하고 이름 붙인 것. 그러므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처럼.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나는 종종 과거와 미래를 헷갈리는 것만 같다. ㅡ 최진영, <쓰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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