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아가미>, 구병모
주인공 곤은 물고기 인간이다. 삶이 매우 버거워도 매일 헤엄친다. 마치 인생이 힘들어도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 같다.
나도 판타지 소설을 꼭 쓰고 싶고, 쓸 것이지만 작문 실력이 우수한 소설책들을 접할 때마다 무기력해지기보다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꾸준히 쓰니 실력이 늘어나기는 한다.
소설가 구병모의 글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장황하여 다소 같은 문장을 두세 번 되읽어보게된다. 순간 내가 난독증인가 싶은, 다소 생소한 단어, 생소한 비유들을 두 눈으로 깊이 되새겨본다. 어쩜 이렇게 막연한 감정들을 긴 구절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글로 쓸 수 없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쓰지. 왜 이러한 문장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걸까. 나의 작문 실력에 자책을 하며, 이 정도 실력은 돼야 진정한 소설가, 예술가라 할 수 있지 라며 단정 짓는다.
힘겹고 우울한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선을 내내 생각하며 글을 쓰면 나에게도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이 될 텐데, 나는 그렇게 쓸 자신이 있을까, 나는 그냥 밝은 것만 써야 하나, 고민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 강하처럼 알고 보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면 내가 오해한, 그들만의 사랑 방식이 아니었을지. 문득 몇 년째 연락하고 있지 않은 가족들과 지나간 시절 인연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그들만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했을 텐데 내가 너무 단정 짓고 미워했구나, 회한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