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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논나 할머니의 북토크를 다녀온 후

장명숙,이경신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by 진다르크

유튜브 밀라논나 구독자 아미치로써 내가 시청을 하면서 늘 느낀 것은 나도 이런 멋지고 지혜로운 어른이 내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노인이 되면 이런 어른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해질녘 초가을 선릉역 근처 책방에 방문하였다.

오늘은 몇 주 전부터 신청해놓은 밀라논나 할머니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실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렘과 동시에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새로 출간한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책이 책방 문을 열자마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책을 펼쳐 저자의 책날개를 보니 1952년생이라는 글자에 1954년생이신 아빠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아빠도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할머니처럼 저런 백발이셨겠지.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시구나라며 책을 훑어보았다.


밀라논나 할머니의 실물은 걸어오며 등장하시는 모습부터 아우라가 있으셨다. 꽤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경청하였는데 정말 멋있으셨다. 진솔하시고 겸손하시고 쿨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말투를 가지고 계셨다.

밀라논나 할머니는 삶에 찌들지 않는 상큼한 늙은이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다. 순간 인생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내가 좋아하는 명언이 떠올랐다.


나는 고단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름 밝게 버티려고 의식적으로 더 많이 웃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더 많이 기도하는 나만의 인생 노하우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


2시간가량의 북토크를 경청하는 내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연마심이 올라왔다.

장명숙 저자는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이며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회를 잡으려면 평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내 밖의 하드웨어보다 내 몸의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비유와 함께.

그러면서 젊은 청년들을 보면 앞으로 인생에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너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딱하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한다.


"난 젊어봤잖아 그러니까 당당하게 늙어가면 돼"

"본인이 기관사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 떠나간 인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정거장에 태우세요."


손을 들며 질문하는 독자들에게 덤덤히 답변해 주시는 저자를 보며 저렇게 덤덤하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들을 겪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할머니의 어떤 모습을 보고 동경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잠기니 그분의 뚜렷한 신념과 가치관이라는 것을 알았다.나는 모든 것들이 다 연약하고 잘 흔들리는 내 모습이 싫어서 더 현명하게 살아가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을 찾은 확실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내 마음을 잘 돌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닌 할머니의 팬들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사회가 원하는 진짜 어른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마치 드라마 나의 아저씨처럼 말이다.

학창 시절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멘토나 어른이 난 없었다. 그래서 늘 책을 보거나 신앙에 의지하여 기도를 하였는데 한 명의 어른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방황했던 시기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잠겨보았다.


다른 독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쿨하게 인자하게 웃으시며

"인생 별거 없어요 재미있게 그냥 허들을 뛰어넘어요."라고 말씀하신다.


10년 전 각막과 장기기증을 신청한 내가 오늘 오전에 가톨릭 뇌은행 병원에 전화하여 사후 뇌 기증 신청을 하였다. 몇 달 전 읽은 종양내과 교수의 책 내용 중에 뇌 기증자가 있다는 내용을 읽게 되어 나도 나중에 해볼까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가톨릭 서울 주보를 훑어보다가 뇌 기증 희망자 모집이라는 단어에 바로 전화를 하여 신청하였다.


주변 친구들은 "너 진짜 천사다. 쉽지 않은데 넌 진짜 천국 가겠다"라는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죽으면 빈손으로 흙이 되어 무로 몰아간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어차피 난 이미 죽었는데 내 뇌로 연구원들이 좋은 연구에 쓰신다고 하면 뿌듯할 것 같아"라는 덤덤한 말과 함께.


그런데 밀라논나 할머니도 나처럼 장기기증자였고 더불어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반가운 마음과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죽고 나면 남기고 싶은 게 저는 없어요. 그냥 무로 돌아가는 거죠."

"80,90살이어도 살아있는 힘이 있는 한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현역이에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겨요"

답변을 하는 내내 명언이 줄줄 쏟아져 나오는 할머니의 모든 말을 다 받아 적고 싶어졌다.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하시며 백발이신 멋쟁이 밀라논나 할머니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과 꿈을 잃지 마세요. 행복은 찰나에요. 그러니 내가 나를 매일 설레게 하는 거죠"


2,3달 전부터 안 좋은 사건들이 생겨 어느 날은 분하다가 갑자기 또 우울해지다가 마음이 요동치는 내 마음을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며 마음고생 하였는데 장명숙 저자의 "용서하세요"라는 짧은 말이 다시 나의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늘 생각하는 '일체유심조'처럼.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늘 하는 기도 내용처럼 더 많이 봉사하고 진심을 다해서 사랑해야겠다.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나가시는데 젊은 내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봉사활동을 매번 참석하지 않았다.

북토크가 끝나고 길었던 싸인 줄이 내 차례로 돌아왔다. 막상 더 가까워지니 생각보다 긴장이 많이 되어 눈 마주침도 못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팬이에요. 저도 선생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제가 소설가가 꿈인데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라며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가 참 고단하죠. 소설가는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나중을 위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야겠네요." 라는 말을 끝으로 할머니가 나의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시는데 너무 긴장이 된 나머지 바닥을 내려다보며 나는 조용히 쑥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유튜브기획자이자 공동저자인 이경신분과 셋이 나란히 사진을 찍으며 책방을 나왔다.


덩달아 한강의 소설집까지 3권이나 구매했어서 가방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따스했다.

전철역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케밥집에서 케밥을 포장하고 선릉역으로 걸어가는 길이 즐거웠다. 2시간이 정말 충만한 시간이었다. 입가에 나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인연이 신기하구나.

그리고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닌 누구나 다 불안하구나. 나도 지혜로운 멋진 어른이 더 되고 싶어졌다.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더 가지고 싶어졌다.

이경신 공동저자처럼 빵집에서 친구와 팥빙수를 먹고 있는 밀라논나 할머니를 보며 진심을 다해 설득하여 유튜브를 제작하신 용기와 추진력처럼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지혜로움을 더 가지고 싶어졌다.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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