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니또에게>

by 진다르크

작년 연말에 이어 올해도 유기견 봉사에서 열리는 송년회에 참석했다. 올해는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고 습작에 몰두하느라 봉사를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위치는 집에서 가까운 선릉역 먹자골목 쪽이었다. 사람들이 늦게 왔을까 봐 오히려 정각에 맞추어 도착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로 일찍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일 년 동안 봉사도 안나갔고 초면인 사람들이 많이 보여 다소 위축된 마음으로 빈자리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작년 송년회 때와 봉사를 같이 했던 분들이 몇몇 보여 유쾌히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동안 잘 지냈냐며 강아지의 안부를 물었다. 일 년 사이에 결혼을 준비한다는 동생과 초면인데도 마음이 편한 언니, 그리고 구급 대원인 남동생, 헤어샵 오픈을 준비 중인 언니, 학원을 운영하는 오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유난히 마음이 편했던 앞자리에 앉은 언니에게 성당에서 그동안 속앓이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언니는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주체인 나를 늘 생각하고 남에게 휘둘리지 말기, 주님을 보러 성당에 오는 거지 사람을 보러 성당에 오는 것은 아니라는 조언과 나의 마음가짐이 기특하다는 칭찬까지 덧붙어 주었다. 이윽고 언니는 2년 전에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나간 말티즈 반려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언니는 이야기 내내 빨개진 눈시울을 간신히 참으며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벌써 10살이 된 팝콘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나도 겪을 불가피한 이별의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에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양장피, 치킨, 피자, 과자 등을 먹으며 쉼 없이 경청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마니또의 시간이 다가왔다. 각자 준비한 선물에 번호표를 붙이고 제비뽑기로 선물을 받아 가는 방식이다. 내가 받은 선물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접시와 포크, 귀여운 포크 받침대였다. 나의 취향에 매우 딱 맞는 운 좋은 마니또 선물이었다. 헤어샵을 준비 중인 옆 단발머리 언니는 연신 나의 선물이 부럽다며 탐내는 눈빛을 전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가 준비한 마니또 선물을 전해줄 시간이 왔다. 나의 작은 편지와 디퓨저를 받아든 청년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좀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할걸,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작년 봉사 날, 나에게 카풀도 해주고 내가 도움을 건넸을 때 흔쾌히 도움을 줬던 아기 엄마인 H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는 나의 이름을 선뜻 기억해 주며 환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어쩜 저렇게 사람이 밝고 성격이 좋을까. 다시 한번 그들의 기운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고 송년회 자리에 참석하니 확연히 연말을 마무리하는 실감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남역에서 내려 지하 계단으로 올라가는 찰나였다. 가운데 기둥으로 된 전광판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하모니카를 부르고 있는 왜소한 아저씨가 보였다. 매우 남루하고 추워 보이셨다. 아저씨의 하모니카 연주는 강남역 지하상가 전체를 울렸다. 나는 몇 주 전 로또에 당첨되어 지갑에 있는 이만 오천원이 언뜻 생각났다. 나는 아저씨에 다가가 오천원을 박카스 상자에 넣었다. 상자 안에는 천원짜리들이 담겨있었다. 자리를 뜰려던 찰나, 아저씨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앉아보라고 하셨다. 살짝 경계심을 가지고 쭈그리고 앉아 아저씨를 마주 보았다.

"이거 나한테 왜 주는 거요?"

아저씨의 목소리는 매우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당겨 다시 물어보았다. 아저씨의 같은 질문에 다소 당황한 나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 행복하시라고요."

"그러면 내 소원 들어줄 수 있어?"

"네? 어떤 거요?"

"쌀 한 가마에 27만원인데 빌려줄 수 있는 마음이 있소?"

아저씨의 매우 작은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로 정확하게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다.

"제가 그럴 현금은 지금 없어서요."

나는 지갑을 마저 열어 현금 만원을 다시 건넸다.

"그래도 이거는 드릴 수 있어요. 아저씨 행복하세요"

아저씨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셨다.

로또에 당첨된 현금이 어디에 쓰일지 궁금했는데 그래도 의미 있는 일에 쓰였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가 작은방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셨던 기억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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