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제주도 겨울여행 2>

기행문

by 진다르크

저기요,라고 나지막이 부르자 열린 작은 문 사이로 여직원이 나와 인포로 다가온다. 방 키를 건네주며 퇴실 시간과 다양한 요가 수업 예약안내를 해주었다. 설명이 끝나고 나는 순간 다도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직원에게 찻잔을 들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는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내 행동이 다소 재밌었는지 작은 웃음을 지으며 아, 다도 수업은 1시간 후에 이용하실 수 있어요,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뒤를 돌아 사층으로 향하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는 동안 오른쪽 복도에 배치되어 있는 여러 도서들과 액자, 장식품, 바다가 훤히 보이는 테라스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깊고 진한 향냄새가 기분 좋게 코끝을 자극하며 나를 풀숲으로 데려다주었다. 초인종 위치에 있는 정사각형 전자 장치에 방 키를 대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눈길이 신발장에서 정면으로 향하자 한눈에 훤히 보이는 겨울바다와 새하얀 침대가 보였다. 그제야 제주도 겨울여행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와, 이쁘다. 나는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창문 너머로 일렁이는 제주도 겨울바다를 바라봤다.

다도 수업을 하기까지 40분이라는 여유시간이 있었다. 일층에 위치한 테라스에 들러 겨울 갈대밭과 녹차밭으로 보이는 푸르른 밭을 내다보았다. 춥고 외로워 보이는 갈대들이 바람을 타고 몸을 출렁이고 있었다. 테라스를 나와 책장에 꽂혀져 있는 다양한 도서들을 훑어보았다. 생각 외로 내 취향이 담긴 책들이 많이 보였다.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골라 가방 안에 넣었다. 잠들기 전 읽을 계획이었다. 이곳 숙소는 퇴실하기 전까지 다양하게 책을 빌려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짧은 일박 이일 동안 이 책들을 못다 읽을게 뻔하니 추후에 도서관에 다시 빌리려 책의 표지들을 찍었다. 해가 떠있는 제주도 겨울바다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서울도 이렇게 겨울에 춥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침묵했고 파도도 고요했다. 머리 위로는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여유롭게 시작 10분 전에 다도실에 도착했다. 다도 선생님의 차분하고 상냥한 안내의 따라 도구들의 명칭과 다도 순서를 익혔다. 간략한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자리를 비켜주시며 이제 고요히 혼자 남은 30분을 보내라고 하셨다. 아기 녹차에 맞게 녹차는 연한 맛을 띄었다. 몇 분 동안 잎을 더 우리니 선생님의 말처럼 떫은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따뜻한 찻잔의 온기와 녹차 맛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명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고요히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이다. 늘 생각이 어수선한 나는 마음이 자주 과거로 가있다. 계속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현재를 살아도 과거에 갇혀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식적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참으로 어렵고 평생 해야 할 수행이다.

차를 많이 마신 탓에 화장실에 들른 후 오후에 있을 명상수업을 위해 지하로 향했다. 아직 조금 시간이 남은 탓에 수련실 오른쪽에 위치한 판매점에 들렀다. 다양한 수제비누, 목재로 된 칫솔, 아로마 오일, 아기자기한 찻잔들, 말린 귤 칩, 엽서, 마음에 관한 도서들, 시원해 보이는 요가복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중에 나는 찻잔과 귤 칩을 구매했다. 집에서 차를 마실 일은 딱히 없을 것이 뻔하였지만 이쁜 것들을 보면 무작정 구매하고 싶어진다.

나처럼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회원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아주 널찍한 요가실 크기를 삼분의 이는 차지하고 있었다. 다들 요가 매트에 앉아 제주 갈대밭을 배경 삼아 차분히 몸을 풀고 있었다. 월요일인데도 나처럼 연차를 내고 오신 걸까, 멀리서 오신 분도 계실까. 스님과 남성분들도 꽤 보였다. 나는 이게 얼마 만에 하는 요가인지 기억을 더듬어가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두 다리를 뻗고 상체를 숙이니 고장 난 몸은 발끝에 닿지 않았다. 정말 수월하게 했던 동작이었는데 운동을 쉬었다는 것을 신체는 용케 알아챘다. 10년 전에는 다리 찢기도 완수했던 나였는데 요즘은 작문을 핑계로 더욱더 운동과 멀어진 삶을 살았었다. 여행을 명분으로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하고 돌아가리라.

명상 선생님은 가수 선우정아를 연상케하는 인상을 가지고 계셨고 한 시간 동안 차분히 수업을 이어나가셨다. 마음을 수시로 알아차리는 방법, 자신이 마음 수행했던 이야기, 잡념이 들어도 괜찮다는 말, 계속 연습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우리들을 고요한 숲속으로 데려다주셨다. 선생님이 따듯하게 데워주신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뜨거워지는 속과 맛에 집중했다. 차는 내 입맛에 너무나도 맛있었고 따뜻해진 장기들은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아빠 다리로 두 손으로 양쪽 무릎에 놓아 긴 호흡에 계속 집중했다. 잡념이 들면 얼른 알아차리고 다시 의식에 집중했다. 다리에 쥐가 나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두 다리를 뻗어 다시 명상에 집중했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수많은 정보 속에 휩싸여 늘 머릿속은 복잡하고 바쁘게 요동친다. 그러기에 고요히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이따금 전철을 탈 때 최대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있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자기 전에는 기도를 하고 명상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 제일 어렵고도 중요한, 모든 현대인들이 평생 해야 할 노력이자 수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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