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 따사로운 날 이곳에 왔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
박경리 선생님이 살았던 집 뜨락에 바람 없는 햇살이 가득하다.
잔설이 잔디 위에 듬성듬성 남아있지만 저만치 다가오고 있는 봄의 소리가 한낮의 공기 속에서 화사하게 퍼지고 있다.
작가가 생전에 살았던 회색 2층 슬래브 집인 이곳은 토지 4부와 5부를 완성했고 완결 편을 썼던 곳이란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암 수술을 받고 상처의 붕대를 풀기도 전에 원고를 썼다는 작가의 정신이 생각나서이다.
집 앞에는 꽤 넓은 마당이 있고 왼쪽에 텃밭이 있다. 어느 잡지 인터뷰 기사에서 보았던, 텃밭에서 직접 손으로 벌레는 잡으며 고추 농사를 짓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라면, 그것도 토지의 작가라면 유명인답게 고상하고 귀하게만 생활할거라 여겨지는데 작가는 농사를 지으며, 외손자를 키우며, 글을 쓰며 그렇게 살았다.
문학공원은 박경리 문학의 집, 박경리 선생님 옛집, 그리고 토지의 배경을 옮겨 놓은 홍이 동산, 용두레벌, 평사리 마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접 집필을 하고 생활을 했던 옛집 마당에서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서성이고 있다.
어느 겨울, 겨울 방학.
우리가 자주 가던 찻집에서 편집장이 D일보를 꺼내 탁자 위에 탁 놓았다. 이즈음의 겨울이었지만 매섭게 추웠다. 기온만 낮았겠는가, 한파는 정치에도 사회에도 언론에도 맹렬하게 닥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학보사 편집장이던 선배가 내 앞에 펼친 D일보 사회면에 실린 대문짝만한 사진 속에서 솜저고리를 입은 박경리 선생님이 포대기로 손자를 들쳐 업고 형무소 앞에 서있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는 사위 김지하 시인을 기다리는 2월의 어느 오후.
주름살 가득한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는 편안함이 느껴졌고 꾸밈없는 차림은 오히려 당당했다.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소설가의 모습이 나로서는 감히 근접하기도 흉내 내기도 어려운 존경의 대상이었다.
선배가 주머니에서 색연필을 꺼내더니 그 사진과 기사에 박스를 만들었다. 그 시절 신문을 편집할 때 우리는 빨간색 색연필을 사용했다. 말없이 상자를 그리던 선배는 손짓과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발령받고 떠난다는 인사를 받은 나의 스승은 내게 몇 가지 당부를 했다. 교과서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지 마라. 한 시간에 5분은 철학을 얘기하는 선생님이 되어라. 그리고 한 달에 두 권 이상의 잡지를 읽어라.
그리고 나는 첫 월급을 받자 계간 문학평론지 한권과 월간 순수문예지 한권을 정기구독 신청했다. 그때 구독했던 문예지에 작가의 소설 「토지」가 연재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오면 배달된 책이 내 책상에 놓여 있곤 했는데 봉투를 뜯는 순간의 설렘을 지금도 기억한다. 책을 펼치면 차례를 훑어본 후에 바로 토지부터 찾아서 읽었다.
서정성이 뛰어난 문장은 자주 나를 감동시켰고 그럴 때면 교무실 창밖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특히 첫 문장에 매료될 때가 많았다. 장이 바뀔 때 시작되는 첫 문장은 시적이기도 하고 회화적이기도 해서 내 가슴 속으로 아련하게 젖어오곤 했다.
바람 많은 언덕 위의 학교에서 아직 두발을 다 내딛지 못하고 어쭙잖게 지내던 시절에 연재소설 토지를 기다리는 일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다음 호에 펼쳐질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작가의 역량을 기다리는 설렘. 막연하게 소설가를 꿈꾸던 햇병아리 작은 여선생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의욕을 안겨주던 작가였다.
작가는 마지막 생애를 이곳 원주에서 보냈다. 사위 김지하 시인이 자주 투옥되면서 딸이 시댁이 있는 원주에 와서 살게 되었고 외손자를 돌봐주려고 왔다가 이곳에 안착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곳에 와서 알았다. 외손자를 일곱 살까지 손수 키웠다니 존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잠깐 외손자를 봐주면서 힘들다고 온갖 투정을 부리며 언제 해방이 되나 기회를 보고 있는 나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작가가 텃밭에서 일을 하고 난 후 자주 앉아 쉬었다는 바위에 작가의 좌상이 있다. 한번쯤 뵙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작가 곁에 이제라도 가까이 앉아 본다.
좌상의 작가도, 전시실의 작가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행사 현수막 속의 작가도 모두 편안하고 자애로운 모습이다. 작가의 시선만큼 따사로운 햇살이 공원 가득 내리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