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소녀
1학기 2차 고사가 끝나자 교실은 이미 여름방학의 설렘으로 술렁인다. 수업을 마치고 “방학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니?” 이런 재미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선생님 앞에서 말하지 않을 거니까. ‘머리 염색할 거예요.’ ‘잠을 실컷 자고 싶어요.’ 하며 모두 신이 났다. 맨 앞자리에 앉은 민이 작은 소리로 방학을 하면 바로 인도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랑?” 했더니 “혼자요.” 한다. “정말?” 똥그랗게 커진 눈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선생님은 오십 대가 되어도 못한 일을 너는 십 대에 하는구나. 그런데 조심히 잘 다녀오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무수히 상상했다. 그렇지만 겁이 많고 길눈이 심하게 어두워 혼자 외국 여행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열아홉 소녀가 혼자 인도에 간다는 말을 듣고 부러웠다. 그런데 이 당찬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미소 띤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인도에서는 상식 밖의 행동만 하지 않으면 위험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조심히 다녀오라는 내 말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를 바보스럽게 만들었다. “그래, 신나게 잘 다녀와 인도 소녀!” 하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방학 중에 가끔 인도 소녀가 떠올랐다. 즐겁게 잘 다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후가 다르고 위생 관리가 그리 철저할 것 같지 않은 곳이라 배앓이라도 하지 않을까 염려됐다.
개학을 했다. 문학 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인도 소녀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미소와 눈빛으로 인사를 나눴다. ‘잘 다녀왔구나!’ ‘선생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다녀왔어요.’ 이런 무언의 인사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인도 소녀가 쭈루루 따라 나왔다. 빨간 가방을 쑥 내밀었다. 손사래를 쳤더니 선생님을 생각하며 준비했다며 내 손에 꼭 쥐어 준다.
교무실에 와서 열어봤더니 선물이 한 보따리 들어있는 게 아닌가? 인도 스윗과 인도 대표 음료 짜이. 스윗과 짜이가 인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선물마다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쓴 설명이 붙어있었다. 선생님께서 스윗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거라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는 쪽지, 물이 빠질 위험이 있으니 장식용으로 사용하시라는 인도 냄새 풀풀 날리는 예쁜 가방과 프쉬카르에서 흥정해서 샀다는 동전 지갑, 동전 지갑에는 인도 동전이 들어있었다. 인도 과자와 초콜릿, 색색의 팔찌 열 개, 그리고 인도 여행 도중에 찍은 사진 200장과 작은 노트 한 권. 너무 많은 물건이 들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노트 첫 장을 폈더니 여행하면서 쓴 일기였다. 일기를 허락 없이 볼 수 없는 일이라 바로 덮고 아이에게 선물이 잘못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모두가 선생님께 드리는 마음이란다. 노트를 넘겨보니 웬걸, 인도 여행의 기행문이 일기 형식으로 시작해서 선생님께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두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맞았다.
새벽 2시에 터미널에 나가 “2시 30분 인천공항 표 주세요!” 했다가 “매진입니다.”라는 직원의 말을 들었을 때의 절망감, 부랴부랴 옆 동네 대야로 가서 다행히 공항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기행문 편지를 따라 나도 신발 끈을 마음으로 조이며 인도로 떠나고 있었다.
선생님께 인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찍었다는, 뒷면에 자세한 설명을 써놓은 사진으로 나는 인도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아침에는 나도 버섯 토스트를 먹으며 라임 주스를 마실 것이고, 점심 식사는 망고와 파파야를 실컷 먹을 것이다. 아즈메르행 기차에서는 아이스크림을 꼭 사 먹을 거다. 아, 그리고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이살메르에 가서 낙타 사파리를 하고 모래 언덕에 담요 2장 깔고 누워 한밤중에 사막에서 별을 보는 것이다. 내 가슴으로 쏟아지는 그 별들을 모두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될 거다. 상상만으로도 가장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모험심을 본받아 이제 인도를 향한 가상 여행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