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여주인이 읽어 준 편지
어느 해 스승의 날 이야기.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이 된 지 30년이 훨씬 지났건만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늘 숨고 싶어진다. 한때 교사들의 촌지 문제가 언론에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마치 모든 교사들이 스승의 날이면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는 것처럼 몰아붙여졌고 스승의 날 또한 그 의미가 퇴색되는 된바람을 맞은 적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학부모의 촌지와는 거리가 멀뿐더러 나 또한 그런 일로 부끄러울 일은 없기에 소수의 교사들 때문에 전체 교사들이 함께 비난 받는 것은 몹시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사실 스승의 날 아침에 아이들이 베풀어주는 작은 이벤트도 늘 어색하고 피하고 싶다. 요즘은 학급 담임을 하지 않아 그런 부담은 좀 줄었지만 아침에 학생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마저도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강당에서 간단한 스승의 날 행사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예쁜 호접란 화분 하나가 내 책상에 떡하니 올려져있다. 영이가 보낸 스승의 날 선물이다. 졸업한 지 10여 년이 지난 제자가 보낸 화분이니 뇌물도 아닐뿐더러 스승의 날을 맞아 옛 선생님을 기억해 주고 잘 지내고 있다는 자신의 안부를 전해주는 것이니 고맙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값비싸 보이는 화분을 보니 그저 기쁘고 즐겁지 만은 않는 것 또한 내 솔직한 심정이다. 어울리는 곳에 화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연휴가 시작된 그날 저녁, 서울로 가고 있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 화분을 배달했다는 꽃집 아주머니였다. 화분과 함께 전해 달라고 부탁받은 편지가 있었는데 깜박 잊고 화분만 배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꽃 배달이 많아 실수로 빠뜨렸다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너무 감동적인 편지라 선생님이 꼭 보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편지를 배달하지 않았느냐, 또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편지를 개봉하여 읽었느냐. 대꾸할 틈도 없이 꽃집 아주머니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한참을 읽더니 ‘선생님 더 읽을까요? 아니 직접 보셔야지요. 내일 학교로 갖다 드릴게요.’ 한다. 학교가 3일간은 쉰다고 했더니 그럼 선생님 댁으로 갖다 드릴게요. 10시 30분쯤 가게 문을 닫으니 늦은 시간이지만 선생님 댁으로 갖다 드리겠다고 한다. 내가 집에 없으니 우편함에 넣어 두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 나는 편지가 궁금해서 우편함부터 열었다. 그런데 우편함은 텅 비어있었다. 광고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어있는 우편함 앞에서 말과는 달리 아주머니가 약속은 잘 안지키는구나 생각했다.
다음날 편지가 없다는 나의 전화에 아주머니는 밤 11시쯤 편지를 분명히 우편함에 넣었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이라 친구와 함께 갔었다면서 증인도 있으니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달라는 투였다.
나는 아주머니가 앞부분만 읽어주었던 사라진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다. 어제 들었던 편지의 앞부분은 내가 담임한 일학년 때 말하기 대회에 출전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너는 잘 할 수 있어. 네가 제일 잘할 거야.” 하고 격려를 해주어서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영이를 말하기 대회에 나가도록 추천한 일은 생각났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또 그 말이 자신의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부탁을 해보았지만 그 편지는 찾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낭랑하게 편지를 읽어주었던 달뜬 아주머니의 음성 속에 내가 빨리 그 편지를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충분히 느꼈기에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아주머니가 잠시나마 얼굴에 미소의 꽃을 피웠다면 영이는 또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쉽지만 편지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단념했다. 그러자 문득 내가 읽어야 할 편지를 다 읽었을 그 꽃집 아주머니가 궁금해졌다. 내가 받을 감동을 가로챈 밉지 않은 아주머니가 어떤 분인지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다.
다음에 꽃을 살 일이 있으면 그 꽃집에 가리라. 가서 꽃을 사면서 말없이 그 아주머니를 만나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