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까이 몸담고 있던 교단을 떠났다. 정년을 이년 반 남기고 갑자기 명예퇴직을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그만두는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궁금해했다.
‘그냥 좀 쉬어야죠. 좀 쉬고 생각하려고요’
이렇게 가볍게 대답했던 것은 타인에게 설명할 만큼 할 일이 구체화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거창하게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대답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어있었다.
3월의 아침에 나는 섬의 해안 길을 걷고 있었다. 하늘도 물도 육지의 그것과는 다르게 눈부시게 푸르렀다. 푸른 것은 바다와 하늘만이 아니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얕푸른 냄새를 흩뿌리며 스쳐 가고, 촉촉한 공기 속으로 짙푸른 에너지의 알갱이들이 분수처럼 흩어지는 아침이었다.
주머니 속의 전화벨이 울렸다. 개학했는데 학교에 선생님이 안 계신다고, 어느 학교로 전근하였는지 묻는 학생의 전화였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 전화 뚜껑을 닫자 잠시 상반된 양가감정에 걸음이 휘청거렸다. 이제 매일 아침 출근할 일이 없어졌다는 허탈감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안도감이 내 안에서 질서 없이 충돌하며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모두가 서둘러 출근하여 숨 가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월요일 아침에 자유롭게 이 길을 걷고 있다는 낯섦과 두려움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이곳의 푸름의 하모니에 흠뻑 젖지 못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나의 은퇴를 내면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면 바로 출근해야할 것만 같고 아이들을 만날 것 같았다. 제주도 여행은 현실을 바로 인지하고 나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몸담고 있던 교단을 떠나고 제주도를 시작으로 이곳저곳 다니며 낯선 곳에서 길게 또는 짧게 살아보려 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손주 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날 기르느라 수고한 어머니에게 내 자식까지 돌봐달라는 부탁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던 큰딸이 출산하게 되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손주 보기를 떠맡게 되고 말았다.
내가 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워킹 맘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여자는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었다. 분만 휴가도 한 달이었기 때문에 출산 한 달 만에 아이를 두고 출근했다. 기혼 여성 인력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당당하기 힘들었다.
대체 인력이 없어 육아 휴직은 불가능한데 출근할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딸은 벼랑 끝에 선 듯 마음을 졸였다. 그 아이를 낳았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에게 내 아이를 맡길 것인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었고 태중에 아이를 막 가졌을 때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어느 날은 “엄마 가지 마!”하며 매달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엄마 같이 가!”하면서 외투를 챙겨 나오던 아이의 모습이 늘 지워지지 않았다. 중요한 시기에 아이의 하루하루를 엄마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가슴 아픔이 원죄처럼 터를 잡고 있는데 딸이 또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상황이었다. 안타깝고 애틋하여 애줄없이 육아를 떠맡고 말았다. 엄마의 존재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겠지만 그나마 엄마의 대체물로서 가장 유용한 존재는 할머니가 아니겠는가?
속죄라도 하려는 듯 딸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내 나머지의 에너지와 열정을 다 해 손자를 키워보기로 했다. 내가 낳은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았다는 가슴 저릿한 흥분과 행복은 잠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동뜨게 힘들었다. 세상의 어떤 일보다 겹으로 힘든 일이었다. 아이보기는 허수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긴장의 연속이었으니 감당하기 힘든 피로가 쌓여갔다. 날로 늘어가는 예쁜 짓이 안겨주는 기쁨 뒤에는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존재했고 늘 피로는 배가 되었다. 더구나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육아였기에 더욱 나를 지치게 했다. 낫잡아 돌까지 돌봐주면 될 거로 생각했다가 두 돌을 넘기고 나자 나의 체력은 쇠진되고 말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잘 적응해나갈 때쯤 어렵사리 손주 보기 퇴직을 했다. 이제 도담도담 잘 크고 있으니 본격적인 나의 은퇴 후 생활을 시작할 때이다. 정말 진동 걸음으로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힘듦이 있었기에 이 시간이 몇 겹 더 소중하고 값지다.
그날, 물꽃이 피는 바다 가운데 동그마니 몸을 담그고 있던 아름다운 범섬 너머로 드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던 아침, 장 그르니에의 <섬>을 떠올렸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케르겔렌 군도>에 나오는 마음 설레던 구절들을 떠올리던 그때의 감성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 아무런 욕심 없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조금씩 조명해보면서 내 마음속의 섬을 찾아 나설 것이다. 때로 주변을 돌아보며, 때로 멈추거나 주저앉아 쉬기도 하면서 나의 진정한 섬을 찾아가리라. (2014.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