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의 시작

회피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by 설보라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난 분명히 나였는데.

이 억울하고도 슬픈 유령은 왜 나를 떠나지 않는 건지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내 분노와 슬픔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애원하고픈 심정이다.

나를 이루던 세포들이 하나씩 이별을 선언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게는 ‘회피’라는 나쁜 절친이 생겼다.


회피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본능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요즘 기분은 어때?”

“연애는 잘하고 있니? “

와 같은 부모님의 걱정이나,

“경험이 중요해.”

“MZ세대는 확실히 다르더라.”

“공부가 다가 아니야. 근데 이쁘고 잘생긴 애들이 공부도 잘하더라.”와 같은 말이 바로 따라오는 어른들의 악의 없는 감상이나,

“우리 이번엔 어디로 놀러 갈까.”

“돈 많은 백수 되고 싶다.”

”이번에 그 선배가 말이야 신입생 여자애를…“

“번호 따고 싶다. “라는 말만큼 존잘 존예가 일단 중요하고 보는,

나와 또래 친구들의 대화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불만 섞인 막막함 따위 같은 것들에 마주할 때면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바람은 대체로 실패한다.


회피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회피본능은 의미가 없다.

회피를 하려면 대화를 듣기 전에 차단해야 하는데 소통을 차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할수록 더욱이.


그렇다면, 듣고 나서 회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변명하고 싶다.

이미 들어버린 부정의 기운은 회피를 하려 하면 할수록 깊숙한 속마음 어딘가에는

‘강한 회피는 강한 긍정’이라는 집착 비슷한 감정에 휩싸여 부정이란 매력에 퐁당 빠져버리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회피 챌린지는 실패했다.

‘이 챌린지를 릴스나 쇼츠에 적용시켰다면 조회수라도 올렸을까 ‘하는 미친 생각을 하면서.


기피 대신 회피는 책임이 덜하다. 어딘가에서 봤는데 기피는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고, 회피는 소극적으로 빼는 것이라나…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나는 회피를 회피하지 못해서 회피를 마주했다.

이런 개또라이 같은 생각이라니 MZ또라이라 이름 붙여주고 싶다.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새로운 시도나 하면 좋으련만 영어 한 단어라도 외우던가.


그렇지만, MZ또라이는 몸이 무겁다. 터져나가는 SNS의 정보에는 마치 남의 성공이 내 실패처럼 느껴졌다.

끝없는 비교 끝에 남는 건 자기혐오였으며, 자책은 회피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그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나는 꽤 오랜 시간 진실된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회피의 끝은 공허했다.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회피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러다 보니 회피는 객관화하지 못한 내 모습에서 오는 어리석은 반항이었다.

그제야 회피하려 노력하는 자칭 MZ또라이가 안타까웠다. 또라이라면서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을까.

나에게 미안하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뭐, 사랑보단 인정부터 시작했다. 인정은 별 볼일 없는 나를 마주하도록 떠밀었지만 현실을 보게 했고 진실과 진심을 보게 도와줬다. 그로 인해 나는 겸손이란 지혜를 얻었고 실패라는 회피의 먹이로부터 달아날 수 있었다.


회피는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 나쁜 친구로 남아있다. 하지만, 회피를 하려다 회피의 시작점을 찾아버린 나는

회피라는 회로를 벗어나 비슷한 상황에서도

많은 소리를 너무 진지하게 듣지 않을 힘이 생겼다.

그리고 자각몽의 끝에서 알았다.


‘도망치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말이다. ‘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