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소금

바닷물로 씻어내며

by 설보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래, 난 모욕감을 느꼈다. 모든 기억들 중 슬프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모욕감을 느낀 순간이 아닐까.

내가 당황하고도 수치심을 느꼈던 그 순간.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냐고?

정말이지 슬프게도 내 바운더리에도 있지 않은 별로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던, 모르는 사람과 다를 바 없던 사람이라고 말해두겠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 말은 이따금씩 나를 찾아와 괴롭힌다. 잘 털어내 보려 내가 잘하는 기억 차단을 해봐도 되받아치지 못한 장면 하나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내 이름은 이다음이다.

벌써 머릿속에 떠오르는 드립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상이다. '이다음' 아주 놀리기 좋은 이름이 아닌가. 제일 많이 들었던 놀림은

“이다음은 이다음에 뭐 할 거야?”와 같은 말 정도로 말하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거라 생각한다.


이름은 신중하게 지어야 한다더니 우리 부모님은 오래 고민하지 않으신 걸까. 이다은이라는 흔하디 흔한 이쁜 이름도 있는데. 이제 와서 화내봐야 뭣하나 이다음생에나 가능하겠지. 나는 철저하게 이름 따라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다음’이란 세음절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으니까.


나는 위로 언니가 한 명 있다.

언니 이름은 이다영이다.

이렇게 평범한 이름이라니 부러워 죽겠다. 평범한 이름과는 달리 우리 언니는 화려하게 이뻤다. 예상한 대로 나는 언니보다 이쁘진 않다. 그래도 자존감은 있을 정도로 이쁘장한 정도?라고 해두고 싶다.

나도 그리 꿀리진 않는다.

우리 동네 어른들의 “이쁘게 생겼네”를 담당하고 있으니까. 난 우리 언니가 이쁘다는 것을 인정한다. 꾸미지 않아도 저 정도라니 연예인을 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자매 사이의 질투는 당연한 거라지만 나와 언니의 사이는 질투이상의 끈끈함이 있었으므로

언니와의 관계가 꽤 자랑스럽다고 여겼다.


근데 이런 생각은 타인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나 보다.

가족 내에서도 밖에서도 상대적인 깎아내림은 사소한 비참함으로 쌓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직접적인 순간을 맞이하면 피가 뚝뚝 흐르는 상처가 되고 눈물로 씻어내려 해봐도 흉터가 남는다.

우린 같은 피가 섞였으니까. 난 질투로 잠식되고 싶진 않았다. 외모로 흔들리기 싫었으니까.


올해 초, 육촌의 결혼식이 있었다. 원래라면 엄마와 아빠가 가기로 했었지만 이맘때쯤 언니는 바빴고, 엄마가 많이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엄마 대신 아빠와 가기로 했다. 아빠 혼자 가면 엄마 성격 상 본인이 끝까지 간다고 고집부렸거나 마음이 불편할 것이 분명했으니 내가 간다고 자처했다. 나는 원래 결혼식 같은 희망찬 곳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해서 엄마를 위한 마음 반 설렘 반을 품고 가기로 했다.


결혼식장은 아빠가 다닌 대학가와 거리가 가까워서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대학생이던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아빠는 건물이 바뀐 것을 열심히 설명하며 평소 대화가 없던 부녀사이를 잠시나마 돈독하게 만들어주었다. 약간의 기쁜 마음을 간직하며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에는 낯익은 분들도 보였다. 사촌언니가 아기를 낳아 데리고 왔고 제사를 지낼 때만 보던 큰어머니와 같이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먼 친척 분들이 많았다. 나는 너무 어색해서 잠시 인사만 건넨 후 아빠 곁에만 있었다.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대화가 오갈 때쯤 저 멀리 사진 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름도 가물한 먼 여자 친척분이 내 앞으로 오시더니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너 언니랑 엄마는 왜 안 왔니?”

내가 답했다.

“엄마랑 언니는 바빠서 제가 대신 왔어요.”

“아 그래? 너도 뭐 좋지만 언니가 참 예쁘던데.”

“왜 네가 왔대? 언니랑 엄마가 오지. “

이어지는 말에는 기억이 흐릿하다.

나는 고작 이 몇 줄 안 되는 말로 그날 하루를 망쳐버렸다.


눈앞 직전까지 두드리던 눈물을 느끼면서도 지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심지어 축하하러 온 결혼식장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앞에서 울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울어버리면 지는 것 같은 비참한 생각이 스치자 나는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다행히 난 울컥했지만 울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아빠도 당황했는지 나를 막아주기는커녕 실없는 웃음만 흘려보냈다.

나는 그다음 말을 자연스럽게 건네기 위해서

언니의 근황을 버벅거리며 전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이상한 말까지 하며 웃으며 넘겼다.

아빠는 이어지는 친척분의 말에 언니와 엄마의 근황을 전달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나만 멈춘듯했고

나는 결혼식이 얼른 끝나길 빌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친척에 의해 순간 언니와 엄마, 아빠마저 미워져 버렸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영상을 담으며 눈물이 흐를뻔한 마음을 다잡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뷔페를 좋아하는 내가 없어진 듯 음식 맛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꾸역꾸역 아무렇지 않은 듯 나의 빈 마음을 눌렀다.

그때, 그 친척 분이 다가오더니 이제 먹고 가냐며 고모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곧 결혼을 앞둔 고모 아들의 연애사를 묻더니 혼전임신을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로 무례한 질문을 날렸다.

고모부가 기분 나쁜 티를 냈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분위기는 싸했고 옆에 있던 친척분들은 익숙한 듯 수습하려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체할 수밖에 없는 식사를 마치고 가려는데

다른 친척분이 날 세우시더니 말을 건넸다.

“아이고, 다음아 오늘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언제 또 보겠어~ 이쁘게 잘 컸네”

“다음 추석에 또 보면 좋겠네. 잘 가렴. “

정상적인 말이 비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 말을 처음에 들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아까의 기억과 교차하며 무의미했을 뿐이다.

“그러게요, 다음에 또 뵐게요. 감사합니다. "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답한 나는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결혼식장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고속도로는 마치 내 마음 같았다. 특유의 어질한 소음을 들으며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었던 깊숙이 간직한 얕은 패배감을 마주한 기분이란 역겹다. 나는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 않고 오랫동안 울었다.

그날의 눈물은 유난히 뜨거웠다.


나는 왜 울었을까.

‘그냥 넘기면 되지 않았을까?’

‘왜 내가 엄마 대신 가서 그런 모진 말을 들어야 했을까?’

‘왜 그 친척에게 인사했을까’

‘좀 더 유쾌하게 넘길걸.’

왜?라는 물음표가 지배할 때 나는 분노했다.


어렴풋이 감추던 감정에 뿌린 무례한 말은 야속하게도 잊어도 되는 결핍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 깊은 곳에 복수심이라는 새로운 불씨를 품게 되었다.

나의 잘못도 가족들의 잘못도 아님을 안다.

그래서 뭣도 아닌 친척의 무례함을 용서할 수 없다.

갖고 있던 상처에 소금을 뿌렸으면 바닷물이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용서하기 위해서 승리하기로 했다.

되려 고마웠다. 내 안의 분노를 알게 해 줘서.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변명은 필요 없다.

언젠가 말하나 없는 패배감을 심어주겠다 생각한 뒤

다짐했다.

' 한 사람의 하루를 짓밟는 무례한 사람은 되지 말자고.'



“이다음은 이다음에 뭐 할 거냐고?”


“바닷물이 될 거야.

소금이 아니라, 전부 삼켜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

“이다음은 계속 이어지는 사람이니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