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냐옹 냐옹“
귓가에 울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먼 듯하다 점점 가까워진다. 착각인가 생각하다 무섭게 조용하다.
바로 그때!
“냐아아 아옹 “ “냐아 아아 아옹”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창틀 가장자리로부터 하얀빛이 들어온다. 하얀빛이 깜빡거리더니 이내 암흑으로 변한다.
눈을 뜨고 있어도 여전히 어둡다. 손을 더듬어 평평하고 네모난 물건을 집는다. 옆 버튼을 누르자 강렬한 빛이 눈을 향해 쏜다.
왼손으로 눈을 비비다 4:42분이라는 글자를 바라본 뒤 한숨을 쉰다. 거실로 나가 물을 한 컵 마신 뒤 다시 이불을 덮고 눕는다. 눈을 감으니 이미 정신이 또렷해졌음을 느낀다. 눈을 뜨고 폰을 살짝 보다 천장을 바라본다. 깜빡거리던 하얀빛이 다시 들어온다. 새벽이라는 사실에 뭔가 뒤숭숭해진다. 나는 갑작스레 이미 오늘이 되었음을 모르는 듯 내일을 걱정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든 고양이 녀석이 보고 싶어 진 것도 잠시, 내일 마주치게 된다면 혼내주리라 마음먹는다. 난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새침한 척, 도도한 척, 세상 고고한 척하니까.
고양이 녀석 새벽에 일어난 원인이라니.
그 사실로 원래 있던 편견에 비호감이 플러스되었다.
다시 잘 수 없음을 느꼈기에 일찍 일어나기로 한다.
그 탓에 평소 하지 않던 이불도 정갈하게 정리하고 먼지 쌓인 창틀을 닦고 환기를 시킨다. 그리곤 아침에 듣기 좋은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멍 때리기 시작하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될 날임을 자각한다.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를 꺼내 간단한 아침을 만든다. 먹기 싫은 건지,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무감각하게 한입을 뜬다. 세입을 먹을 때쯤 뇌가 활성해짐을 느끼며 물을 한 컵 마신다. 하나가 된 듯한 몸을 느끼며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쨍한 햇살이 비추고 살짝 추운듯한 바람이 반김과 동시에 반지하라는 사실을 잊는다. 집주인처럼 문 밖을 나서니 앞집에 검정색 반점을 가진 누런 고양이가 앉아있다. ‘어제 그 고양인가’ 하고 생각하며 다가가니 내 손길을 확 피한다. 기분이 약간 상함을 느끼며 골목길을 내려간다.
일찍 일어난 탓에 그날은 박카스 없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내내 피곤했다. 터덜터덜 오르막을 내려가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쉬며 접어놓은 마음을 펼친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사람들이 가득했다. 버스 시간을 바라보니 곧 도착이다. ‘나이스, 지각은 안 하겠네’
130번 버스가 두 대여서 헷갈릴 것을 대비해 얼른 앱을 확인한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웬일로 행운의 날인가 싶은 생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차가 출발하고 우회전을 하겠구나 하는데 직진을 한다.
편안했던 마음이 살짝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쎄한 느낌이 지속되자 잘못 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히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후 택시를 잡았다. 간당간당하게 늦지는 않을 듯했지만 조마조마하며 시간을 계속 확인한다. 다행히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았다.
딱 맞춰 들을 수 있었던 이 수업은 평소와 다름없이 교수님의 일상부터 아재개그가 섞인 농담과 칙칙한 이론 반으로 이루어졌다.
강의 한 개만 끝났을 뿐인데 하루를 다 보낸 것만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음 수업 전 남은 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향한다.
'같이 먹을 친구가 있을까'하며 생각하다 수업이 있을 것임을 짐작하고 더 이상은 물어보는 게 귀찮아 혼자 먹기로 한다.
'사랑은 타이밍인 것처럼 밥친구도 타이밍이다'라는 나름의 철학을 떠올리며 단골 집으로 향한다.
항상 먹던 샌드위치만 먹으려다 오늘의 스프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트 메뉴를 발견하고 한번 시켜보기로 한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소한 노선 변경이라 생각하는 나는 가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고집한다. 오늘의 수프는 진한 양송이 수프였다. 랜덤은 무섭지만 사소한 기쁨이 될 때가 있다. 수프와 함께 먹는 샌드위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풍족한 것만 같았다. 가게에는 손님이 적당했고 뉴에이지 음악이 은은하게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유도했다. 근데 그래서일까. 순식간에 혼자 먹는다는 사실을 크게 인지하게 되어버렸다. 오늘은 혼자 먹기 싫었다는 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오전에 먹는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알록달록한 소스와 초록색의 신선함이 어우러지면 깨끗한 내가 되는 것만 같다. 관리하는 여자가 된 기분은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이상하게 같은 루틴에도 금세 촉촉해진다.
배는 찼지만 허한 상태로 다음 수업을 듣고 알바를 하러 카페로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음을 인지한 나는 편의점에 가서 우산을 사기로 한다.
우산의 가격을 5천 원 정도로 예상하며 들어왔지만,
7천 원이 적힌 가격표를 보자 밑에서 올라오는 뜨끈한 감정을 느낀다.
서둘러 샀다고 생각했는데 알바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평소에 10분 전에 도착하는 나는 정각에 도착했음에도 깊숙한 죄책감을 느끼며 동료에게 미안함의 인사를 건넨다. 비가 오는 날이라 커피는 덜 마시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며 숨을 고르고 청소를 시작한다.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새 비닐을 채우고 있는데 갑자기 15명 가까이 되는 단체 손님이 찾아온다. 속으로 내쉬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어서 들어오는 다른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예측을 하는 날에는 나를 비웃듯이 늘 반대의 상황이 이루어진다. 오늘같이 변수가 샘솟는 날이면 분노 섞인 자포자기의 마음과 함께 "변명할 시간에 한다"라는 말을 하던 유명 MC의 말을 새기며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던 날은 유독 보상심리가 일렁인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매운 라면 2개와 과자 3봉지를 산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도착하니 배차시간이 30분 가까이 된다. 나는 걸어가는 게 빠른 것임을 알게 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켜고 라면과 과자를 세팅한다. 최근에 좋아하는 드라마가 하루 2편씩 공개되고 있어서 아침부터 이 시간을 기대했다. OTT를 연결해서 드라마 이름을 선택한다. 그런데 2편이 업로드되지 않았음을 마주한다. 네이버를 검색해서 찾아보니 오늘은 부득이하게 밀린 것이 맞다는 확인된 사실만 가득하다. 결국, 익숙한 예능과 함께 라면을 먹으며 실망감을 달랜다. 먹는 게 귀찮은데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인간의 몸뚱이는 왜 이럴까 하는 짜증이 난다.
씻고 잠자리에 누워있는데 이유 모를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피곤한 하루였다고 넘기기엔 이상하게 슬펐다.
그 순간 “냐아 아아 아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침보다 더 요란한 울음소리에 눈물을 닦고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 바로 밑에 비를 쫄딱 맞은 고양이를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울망울망한 눈망울을 보고 있으니 얘도 하루가 고달팠나 싶어 동질감을 느낀다. 이내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데려온 고양이를 씻기고 닦아준 뒤 물과 함께 급하게 산 사료를 건넨다. 뽀송한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힐링이 되는 것도 같다. 나를 바라보는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집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그 순간, 고양이가 마치 사람 같았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하소연했다. 감정 해소와 변명을 왔다 갔다 하고 합리화를 할 때도 이해하는 것처럼 내 말을 들어주었다. 할 말이 없어질 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든다.
아침이 밝아오고 개운하게 잠을 잤다는 사실을 느끼며 일어난다. 거실에는 어제 데려온 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다주고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130번 버스가 보인다.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버스에 올라탄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니 버스가 직진한다.
수업에도 일찍 도착해서 폰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어김없이 샌드위치를 먹으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친다. 돌아보니 같은 수업을 들었던 친구다.
‘같이 밥 먹을래?’
나는 강아지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샤브샤브를 먹으러 간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밥을 먹으니 기분이 들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고 2차로 간 카페에서는 1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그다음 수업이 싫어하는 팀플 수업이었는데도 무난하게 의견이 잘 정리되어서 뿌듯한 기분으로 알바를 하러 갔다.
그날은 사장님에게 죄책감을 덜 느끼고 내가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손님이 왔다. 음료도 여유롭게 먹을 수 있는 직원복지의 시간이 주어졌고 마감 전에 손님들도 빨리 나가주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삶은 계란 두 개를 먹는데 고양이를 데려오는 걸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히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내일 데려가겠다고 답한 뒤 잠에 빠져든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고양이를 마주하니 그저께 끌렸던 마음과는 달리 고양이가 도도해 보였다. 그제야 나는 고양이를 싫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키우겠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 데려오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다.
집에 다다를 때쯤 다른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는다.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왜 데려오지 않았을까’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때,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엄마에게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전하며 어리광을 부린다. 그리고 엄마의 일상도 하소연도 공유받는다. 전화를 끊고나니, 잠시 집안이 조용해진다.
그제야 고양이가 끌렸던 그날의 감정을 떠올린다.
이윽고 사람과의 연결이 없어 느낀 적적함과 불운한 변수가 넘쳤던 그날은 내가 무척 외로워진 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새롭고 무서운 사실도 마주한다.
‘외로움은 감기 같은 거라는 것을'
3일이 지난 후부터 나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밥을 챙겨주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고양이가 새침하지도, 도도하지도, 고고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 고양이가 나 같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