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에 얽힌 사소한 집착
‘띵동'
어김없이 켜진 생명의 바람이다.
그래 눈을 떴구나. 하루의 시작이구나.
오늘은 어떤 가면의 비율이 높은 하루가 될까.
‘월요일’ 같은 하루가 매일이 아닐까 생각하는
초민감보스 사람인 나는 눈을 뜨자마자 감정을 다스릴 생각을 하니 금세 피곤해진다.
어제는 꽤나 나 같은 책을 읽었다. 기억에 남는 구절은 김 빠지게 맨 첫 장에 적힌 한 줄이었다.
‘계속해서 감동과 상처를 오가는
멋지고도 버거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
그놈의 예민, 나도 내가 예민에 잠식된 것 같아서
예민한 나를 다스리는 방법을 책에서라도 갈구해 봤다.
감동과 상처를 오가는 건 맞는데
’ 대체 하루에 몇 번 정도 오가는 게 기준치인지만 알려주지 ‘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요즘 ‘섬세’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예민을 조금 다정하게 부르는 말 같아서.
예민과 섬세는 둘 다 반대말로 둔하다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 둔하다는 말의 힘이 더 센 거 아닐까?
‘뭐야, 무슨 반대말은 왜 이렇게 퉁쳐버리고 마냐고’
‘누군 이딴 피곤한 생각을 하는데!!!’
'예민한 사람이 많이 느끼는 거면 둔한 사람은 많이 안 느끼겠네? '
나 같은 사람은 합법적으로 둔한 사람에게 끌리면 안 된다고 명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진정시키려 시원한 물 한 컵을 원샷한다.
근데 말이다.
나는 ‘예민의 대변자’ 같지만 놀랍게도
원래는 꽤 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미친 생각을 하는 나로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근데 변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낭랑 18세 고우리. 나는 고왔다.
하루하루는 무던했고, 나는 나로 충분했다.
이때 나는 깊게 감동받지도, 쉽게 상처받지도 않았다.
나는 외동딸로 사랑받고 자랐다. 우리 집은 남들만큼 산다고 생각했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만큼 밝았다. 가족보다는 친구가 좋았고 친구와 친해지는 것도 자신 있었다. 그래 그랬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 부모님이 바쁘셔서 입학식, 졸업식을 못 오신다 ‘
라거나
‘비 오는 날에 데리러 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라거나 하는 결핍은 없었다. 학교에서 신청서를 받고 고민하는 일도 없었고, 공부도 나름 해냈고, 수학여행비를 고민하기보다 장기자랑을 어떤 걸 준비할지를 더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당연해서 아주 고운 시절이었는지 몰랐다. 내 취향을 숨기기보다 내 취향으로 그룹을 만드는 것이 쉬웠던 내가 숨기 시작할 때부터 예민해졌다. 시간의 흐름, 환경, 상황에 따라 나 보다 타인이 읽히면서 단순하고 무던한 나를 서서히 잃어버렸다.
무던한 나를 울리던 시간이 흘러 나 고우리는
“사랑도 이제는 알 것 같아~ ”노래를 지나
27세를 맞이했다.
그리고 나이와 함께 ‘관찰’이라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얘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있다.
얘를 끄고 있는 하루란 의미 없는 하루가 될 만큼.
나이를 제외하고 내세울 건 얘밖에 없다.
‘초능력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본주의를 조금이라도 짓밟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ㄷ’
' 로또 당첨되면 좋겠습니다. 주식 만세.’
자본의 맛은 강렬했다. 그리고 무서운 거였다.
현실과 계산에 익숙해지면서 관찰이란 방어막이 생겨난다.
타이밍 좋게 누구를 기쁘게 하기도, 돌려 까기도, 챙겨주는 것도, 결점에 대한 배려도 모두 관찰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적어도 내 생각에 관찰은 나를 지키는 방법 중에 가장잔인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이다.
다만 부작용으로,
관찰 속의 삶이 진짜인지 끄고 있는 삶이 진짜인지
방황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을 읽는 건 쉬워졌는데
마음을 온전히 놓는 건 어려워졌다. 계속 깨어 있어야 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오래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초능력을 유지하려면 동굴은 필수인 듯싶다.
뭐든지 양날의 검은 존재한다.
베이면 관찰이 지나친 거고 지니고 있으면 자꾸 감사한 거고.
머리 아파서 일단 그렇게 정의하기로 나랑 타협했다.
관찰을 한다고 인지하기 시작한 건 슬픈 상황이 반복되는 구간에 오래 있었기 때문이다.
아끼던 사람이 떠나고, 마음을 쏟던 것이 사라지고,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방어막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무슨 일이 생길 때 침착하지 않으면 부정만 더해질 것 같은 기분이 쌓이다보면
어김없이 방어막은 작동된다.
이로써
' 나는 이제 깊게 감동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나는 자주 아프던 아이였다. 툭하면 넘어지고 감기 걸리고 열나고 골골대었다고 한다. 분명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옆에 나를 관찰하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찰은 사랑이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한 후 나를 관찰해 줄 사람을 잃었다. 아니, 잃어야 내가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변에 있는 상황과 사람들의 미묘한 불편함이 포착될 때면 무던한 나는 죽은 것이 실감 난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크게 와닿는다면 이미 관찰은 작동 중인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제 자주 아프지 않는다.
이젠 알고 있다.
무심함과 둔함이 있다는 건
옆에 누군가 관찰이란 초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란 걸. 이토록 감동적이지만 약간은 아쉽게도
관찰은 관찰을 의미 있게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당연이 아닌 다정이 된다.
프로 관찰러들은
아마 계속해서 당연을 맞서는 멋지고도 버거운
사랑을 감내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관찰이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숨은 사랑을 불러오기를 바란다.
고우리는 고마운 18세를 재발견했다.
그리운 나도, 지금의 나도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발견했다. 오늘도 나는 관찰이란 사소한 집착으로 소중한 고우리를 곱게 포장한다. 둔함에 부럽다면 무심에 지쳤다면 되뇌어본다.
고우리는 깊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간다고.
관찰이 방어막인 건
알면 보호하기 때문이며
관찰이 초능력인 건
알면 결국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띵동'
어김없이 켜진 관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