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사이의 마음
'나'에 'ㅁ'만 받쳐주면 남이 된다.
'남'은 나에게 'ㅁ'이란 빈칸을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빈칸을 남긴다는 건 희망고문과도 같다.
끝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 더 붙잡게 된다.
일요일 8:00 am,
새벽에 비가 왔는지 촉촉한 바람이 집안에 열린 창문 틈을 통해 들어와 얼굴을 스친다.
이른 아침에도 부지런한 전철소리만 또렷이 들린다. 침대를 벗어나며 복슬한 카펫 위에 발을 디딘다.
아무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니. 약간 고민스러우면서도 상쾌하다.
일어나서 문을 열기 전 엄마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역시, 부지런한 사람.
내가 모닝인사를 건네니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난 거냐는 느낌의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으쓱한 표정으로 물 한 컵을 마신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졌다.
이내 조금은 큰 소리로 말한다.
"엄마, 오늘 나랑 브런치 먹으러 갈래?"
엄마는 즉흥적인 일을 싫어하지만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면 못 이긴 척 응해준다.
여유가 없을 때면 즉흥적이라며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그러던지."
사소한 결정도 10번 정도는 물어봐야 본인의 답을 명확히 하는 엄마는
한 두 번 듣고 결정하는 나로서는 아주 답답하지만, 나는 다시 말한다.
"다른 거 먹으러 가도 괜찮아. 아님, 안 가도 괜찮고!"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먹으러 가던지, 어차피 밥 먹어야 하는데."
명확한 대답을 원하는 나는 그녀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희미해서 애쓰며 해석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 해석은 늘 빈칸으로 남는다.
'에라 모르겠다. '~던 지'였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후다닥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준비를 끝낼 즈음 보니,
그녀는 나가는 김에 일반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기로 했나 보다.
쓰레기가 없는 날은 보부상처럼 큰 가방을 들고나간다.
그녀는 어떤 대비를 안고 사는 걸까?
나는 이상하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녀가 한 번쯤은 가볍게 집을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운전석에 앉는다. 내가 운전을 한다고 어필해도 어림없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운전해 줄 사람을 원한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
새로운 브런치 집을 가자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 흔든다. 그녀는 새로운 길을 두려워한다.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냐는 나의 말에 돌아오는 건, 길이 복잡해서 잘못 들면 엄청 오래 걸린다는 말 뿐이다.
그녀는 네비를 믿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만 믿는다.
나는 그 길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말했다.
"그럼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아님, 그때 우리 맛있게 먹었던 그곳 어때?"
내가 몇 가지 선택지를 준다. 어느 곳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아우라로 고민하더니
익숙한 곳을 제안한다.
"그럼 그때 거기 그 바다 보이고 빵이 맛있었던 데 가자."
"아~ 000집 말하는 거지?"
나는 좋았다.
새로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게 우리 둘을 더 기쁘게 할 것 같았다.
파스타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늘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는 성공했다. 나는 엄마가 꼭 친구 같다.
조금 추가하자면 걱정이 아주 많은 친구.
엄마는 과거 이야기를 좋아한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꼭 책 같다. 엄마의 삶은 책 한 권으로 내고 싶어 질 만큼 흥미진진하다.
파스타 집 창문 너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큰 돌에 웬 새 한 마리가 앉는다.
빤히 바라보던 엄마는 말한다.
"쟤는 왜 혼자 있고 그럴까. 가족들은 어디갔는강."
순간 나는 그 새가 엄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찡해왔다. 동시에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어 묻는다.
"엄마, 지금까지 살면서 힘든 일이랑 좋은 일 중에 뭐가 더 비율이 높았어?"
약간은 예상한 답을 들으려 몸을 엄마 쪽으로 틀며 그녀의 입술을 바라본다.
"음, 살아보니까 반반이었던 것 같다."
"좋은 일이 오면 나쁜 일이 오고, 나쁜 게 지나가면 좋은 게 오드라."
의외의 답변에 나는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어. 조금은 다행이다 엄마."
왠지 모를 안도감과 따뜻함을 느낀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의 삶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이후
나의 안쓰러운 찡함들은 멋진 찡함으로 바뀌었다.
엄마 같은 딸이 있어서 울 할머니는 좋겠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로 남을까.
적어도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딸로 남기를 소망해 본다.
내가 엄마에게 배운 빈칸의 답은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 자체가
이미 그 빈칸을 채우는 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