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 대학원에 입학한지 어느덧 한달.
심리학에 관심이 생긴지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게 좋았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나’ 에 휘둘리기 보다는 직접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하는 내가 좋았다.
정신을 차리니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문득 대학원 입학을 하려고 자소서를 썼던게 기억난다. 합격만 시켜달라고 아등바등 했는데..막상 들어가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이다!
어느덧, 대학원 생활을 한지 한 달이 되어 간다. 황금연휴이기에 충분히 쉬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치, 종이가 엉켜서 뒤죽박죽 나오는 프린터 같다. 뭐라도 출력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소리만 큰 느낌.
우선 대학원에 대한 총평을 요약하자면
1. 학부와는 수업방식이 다르다.
2. 알아서 챙겨야 한다.
3. 돈 모일 구멍은 없고 빠져나가는 구멍만 쉴 새 없이 생긴다.
4. 단어 선택이 신중해진다.
5. 스스로에 대한 탐구 및 생각이 많아진다.
라고 할 수 있다.
1. 학부와는 수업방식이 다르다.
대학교 시절에는 대부분 이론 중심의 수업이었다. 교수님을 바탕으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약간의 과제를 수행하면 되는 형식이다. 반면 대학원은 학생의 몫이 매우 크다. 해당 주차의 학생 발제(발표)를 먼저 하고, 이후에 교수님의 부연설명으로 이루어진다.
즉, 대학교는 교수님의 지식을 온전히 축적하는 느낌이라면 대학원은 학생이 먼저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해야 한다. ‘저는 ~부분을 공부했습니다. 이해가 되시나요?’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게 된다.
학생들이 준비를 대충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학부와는 다르게 굉장히 준비를 잘해오셔서 깜짝 놀랐다. 본인 같은 경우에는 발표할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찾아가는 편이고, 다른 분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우수한 수업의 질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어떠한 부분에 대해 ‘~ 방식으로 이해를 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이 참 좋다. 이러한 부분이 공부의 의욕을 자극하게 되는 것 같다.
교수님들의 스타일은 가지각색인데, 대학생 시절에 있던 이론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진행이 부드럽다고 느껴진다. (물론 시간이 얼마 안남으면 말의 빠르기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수업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재밌는 일화를 섞기 때문에 상당히 재밌다. 또한 학부때 들었던 부분들이 중복되긴 하지만 더 섬세하게 배우게 된다.
특히 수업에서 배운걸 바로 사용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 행동수정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누군가 요즘 우울하다고 말하면 ‘우울하다는 행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측정될 수 있는 행동의 특성 (행동차원)을 파악한다던가, 무언가를 떠올려보고 조건화된 감각 중에 어떤 부분을 사용했는지 되새기는 등 직접 해보는게 필요하다.
해보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써먹는게 좋다. 막상 사용해보니 이로운 부분을 발견한다던가, 나중에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파악하는게 필요하다. 적어도 실생활에 적용하면 쉽게 까먹진 않으리라.
2. 알아서 챙겨야 한다.
말 그대로 대학원생은 알아서 챙겨야 한다. 직접 정보를 얻어야 하고, 해결해야 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적어도 ‘학생’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일종의 보호막(안정감)이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도 많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되니 특강도 들어야 하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없다.
학기가 늘어날수록 실습도 해야 할 테고, 자격요건 준비 및 논문도 써야 할 터. 이 모든 것들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는다. 수업을 듣다 보면, 교수님과 대화를 하면 몸소 느끼게 된다.
‘아.. 더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생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몸소 느끼고 있다.
덧붙여, 대학원생은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특강, 실습의 기회, 취업 정보, 이론 지식 등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모르는데 누군가 특정 기관에서 특강을 듣고 온다던가, 실습을 하는 경우를 종종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3. 돈 모일 구멍은 없고 빠져나가는 구멍만 쉴 새 없이 생긴다.
돈 쓰는 게 재능이라면 나는 천재가 틀림없다. 스타킹, 세상이 이런 일이, 그것이 알고싶다 등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나를 찍으러 온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어쩜 돈 모으는 건 없고 쓰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먹을 것에 많이 쓴다던가, 사치를 부리는 등 다른 용도로 쓰는 건 없다. 그냥 학회 신청하고 (연회비가 날강도처럼 느껴진다), 학식 먹고, 과제 프린트하는데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나가는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대학원은 돈이 많이 든다.
교수님께서 이번 학기 마치고 교육 분석을 50회 정도 들으라고 하는데.. 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통장에 몇십억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슈퍼비전도 받아야 할 것이고, 특강, 사례 발표, 개인상담받는 것, 교육 분석 등등.. 여러 과정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4. 단어 선택이 신중해진다.
상담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거 같다. 특히 교수님들도 그렇고, 다들 그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더욱 원활한 표현 방법이 무엇인지, 감정 단어 목록, 상대방의 비언어적인 모습에 대해 신경 쓰게 된다.
작년부터 좋아하게 된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라는 표현이다. 이도 저도 아닌 말 같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정답일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보면 다른 곳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확실하지 않은 답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곤 했다. 1+1 = 2처럼 왜 확실한 답을 말하지 않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1+1이 굳이 2일 필요는 없다. 찰흙과 찰흙을 합치면 그것은 더욱 커다란 찰흙이 된다. 즉, 1+1 = 1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정답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너무 괴로운 삶이 될지도 모른다.
상담을 할 때 역시 사례 개념화(가설 설정 및 상담 목표, 전략을 수립하는 것)가 필수고, 이 안에서도 여러 가지 과정을 겪게 된다. 상담이란 참으로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그만큼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낯선 환경에서 무언가를 계속 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자주 쓰는 표현은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적합한 것인지 검토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표현할 때, 생각할 때 도움이 되는(건설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단어 선택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상황과 인간을 이해하는데 신중해지는 것 같다.
5. 스스로에 대한 탐구 및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앞서 말한 부분들과 연관이 있다. 수업을 들을수록 배운 이론을 토대로 생각하게 되고, 이외에도 실생활에 적용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가 여러 가지 부분을 고려하고, 가설을 세우게 된다. 참으로 고마운 부분이다!
즉,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외에도 무의식에 있던 부분(혹은 결핍)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애쓰게 된다. 특히 속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적인 자기대화가 정말 늘어났다.
작년에 현대상담이론을 들으면서 스스로가 정말 독하다고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뭔지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인데, 요즘은 아주 절정에 이르는 중이다.
특히 어떠한 상황, 의미가 실존적으로 어떤 것인지 고뇌하는 경향이 늘었다. 어쩌면 철학적인 부분이라고 느껴진다. 무엇보다 최근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바로 ‘인간은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고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처음에 느껴지는 감정, 감각이 정말 중요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면 동기가 생기게 된다. 요즘 이 자리에 오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스스로를 싫어하려고 애썼다. 주변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노력하다 상처받기 일쑤였고, 결국에는 그것들을 외면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래 이건 내 잘못이야.’라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정말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나를 넘어서 남을 미워하고, 세상이 싫어졌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저 인간이 나를 저렇게 만든 거 아닌가? 세상은 도움이 안 된다는 등 (인지삼제) 원색적인 비난을 토해냈다.
그래서 심리학을 알아갈 때는 바다를 만난 기분이었다. 시원하고, 바라만 봐도 속이 풀리는 느낌. 바다는 멀리서 봤을 때 아름답고, 더욱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한 발자국 나아가 가까워지고, 점점 그것들이 덮쳐오기 시작하면 한없이 두렵기 그지없다.
신기하고 알아갈수록 재밌었던 심리학은 깊게 파고들수록 고통스러웠다. 마치 마음에 상처들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기분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던, 좌절하고 나약해진 부분들이 보여서 반갑게 느껴질 수 없었다.
과거를 기억했을 때, 그때의 과정을 설명한 이후에는 술 먹고 실수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지고, 잠을 더 자게 되고, 입맛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감기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힘이 생겼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과거는 과거고, 나는 그때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선택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인정하게 되니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아픔 속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내가 심리학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나란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부분에 약하고 강한지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무력감이 늘어났다. 무력감이라고 보이는 행동 차원의 경우 계속 쉬고 싶은 생각이 들고, 평소보다 유난히 피로감이 들며, 한숨이 하루에도 5번 이상 자주 나왔다. 즉, 불만족스러운 경향, 주관적인 답답함이 늘어났다는 소리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이 무력감이 늘어났는지 돌이켜보니, 대학원 3주차부터 이러한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일주일 전 교수님과 면담을 한 이후로 확실하게 느껴졌다.
짧고 굵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상심(한국상담심리학회) 요건을 듣고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부분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사실 한상심 요건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는데, 직접 해야 할 차례가 되니 느낌이 남달랐다. 그리고 이 불편함 속에는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인지적 오류가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음에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나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아니다. 쉽게 말해 MBTI 중에 P 성향이 강해서, 즉흥적이고 무언가 계획하기를 꺼려 한다. 그래서 계획을 세울 때는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세밀하게 세우게 된다. (이렇게 보면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계획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피로감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계획이 틀어졌을 때 이것을 곧바로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즉, 대처법이 이롭지 못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는 것’ 보다는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가 맞는 것 같다. 며칠 동안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스무고개도 해보고 별짓을 다하면서 정답을 찾아내려고 했거늘,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감정이라고 특정 지어 말하기엔 복합적인 요소가 강했기 때문이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대체 왜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곱씹어보니, 동기와 관련이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상담을 받으면서 느꼈던 소중한 감정을 토대로 발전하고, 내담자에게도 내면의 힘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유능한 상담사가 되지 못한다면?
한상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대학원을 졸업한다면 어쩌지? 라는 불안이 있었다.
대학원을 입학했을 때 조급한 감정보다는 천천히 나아가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 바쁜 나날속에 어느순간 그 다짐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매학기가 시작되면 무기력한 감정이 느껴지곤 했다. 그러다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이유없는 감정은 없다는걸 잊고 있었다! 이 부분을 무시하지 않고 찾아내서 참 다행이다.
무력감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학부때 배운 부분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1. 이유없는 감정은 없다.
(감정은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신호이며, 불편한 감정 또한 이해하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 감정은 단 하나로 설명되지 않을수 있다. (복합적인 감정을 하나의 무엇이라고 단정지을수 없다는 것)
3. 특정 행동, 충동을 느낀다면 의미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4. 조급한 감정보다는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자.
5. 긍정적인 나는 내일의 웃음으로 꽃피운다. (나를 사랑하자)
한달동안 참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 한가지 자랑스러운 것은 지금의 나는 배우고 있는 분야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흘러가는 이 과정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아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