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엄마란 늘 강한 존재였는데
며칠 전 갑자기 형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뭔 일 있었어??”
“아니. 왜?”
"우리한테 속상한 게 너무 많은지 오자마자 대성통곡하면서 30분을 넘게 울더라고."
"갑자기?"
"너하고 내가 밥도 안 먹은 거. 자기 손으로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그 느낌을 아냐고 하더라고. 너네만 일하고 힘드냐면서 본인이 더 힘들다고 그랬어."
"......."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면서 혼자 조용히 사라지고 싶대."
엄마는 작년부터 갱년기를 겪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추위를 타던 사람이 뜬금없이 왜 이리 덥냐며 짜증을 냈다. 에어컨을 5분만 틀어도 춥다고 하던 엄마가 계속 에어컨을 틀어도 덥고,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라 했다. 짜증은 장마철 소나기보다 잦았다. 별거 아닌 것에 투덜거리는 그 모습이 우리 가족은 낯설었고, 당황스러웠다.
나 또한 엄마의 그런 모습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면 방으로 들어가고, 한 귀로 흘려듣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내 생활은 가족보다는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것이 당연시되었다. 형의 카톡을 봤을 때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왜 그러는 거야? 나도 힘든데. 자취를 해야 하나?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면서.
나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지쳐. 힘들어. 그냥 다 놓고 싶다고!'
1시간 정도는 짜증이 났다.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고, 한숨만 나왔다.
요즘 내 생활은 바쁘기 그지없다. 대학원 때문에 정말 정신차릴 틈이 없다. 그래서 그 무엇도 신경 쓰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날짜 감각 마저 사라졌으며, 어제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뜨면 학교, 잠깐 정신을 차리면 과제, 지쳐서 쓰러지듯이 잠깐 잠을 잤다가 학교를 가는 패턴이었다.
매번 몸은 피곤에 찌들었으며, 불만과 분노가 쌓였다.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고 온 탓에 집에서 대화를 나눌 힘조차 없었다. 눈을 감으면 기절할 것처럼 지쳐서 말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유가 다 있는데.. 엄마는 왜 모르는 거야? 서울에 자취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다가 2시간.. 3시간이 지나도 뭔지 모를 불편감과 머릿속에 이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왜 이렇게 계속 생각하나 싶었다. 엄마의 모습이 나에겐 어떤 의미였지? 머리를 굴려봐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득 이런 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메타인지라고 하던가? 지금 나의 모습, 생각들을 마치 또 다른 사람처럼 바라봤다. 1분쯤 지났을까? 놀랍게도 곧바로 답이 나왔다.
'아! 나는 지금 짜증 나는 게 아니라, 혼란스러운 거구나!'
왜 혼란스럽지? 생각해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해가 되었다.
갱년기의 전까지 엄마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본 엄마는 누구보다 강했고,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투덜거렸지, 엄마가 투덜거린 적은 없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힘들 때마다 종종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참 생각이 어렸다. 하지만 엄마는 그걸 받아주고 이해했다. 이러한 행동들이 익숙해지니 습관이 된 것 마냥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엄마가 투덜거리는 모습에 나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왜 엄마가 투덜거리지?'라는 생각에 회피하고 거절했다.
엄마가 항상 날 받아줬었구나.. 하는 동시에 엄마의 모습, 나의 태도,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냉장고 안에 상해있는 음식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100% 이해할 수 없어도, 적어도 얼마나 서럽고 속상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엄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갑작스러운 호르몬의 변화, 폐경의 신호에 엄마는 여성성을 잃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때 그 말을 조금이나마 빨리 이해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엄마에게 '딸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엄마는 어땠는지 물으며 가족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말 한마디 없이 한숨을 쉬고, 짜증만 부리며 밥도 먹지 않았으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래. 엄마가 엄마라는 이유로 항상 강할 수 없어.]
엄마에게 화낼게 아니라, 이해해야 했구나. 이해를 하게 되니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간 나의 생활 역시 반성하게 되었다. 조금 더 컨디션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과 가족에 대한 태도를 고쳐야겠다고 되새겼다. 그리고 엄마의 불편감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갱년기에 좋은 약을 샀다. 또한 엄마에게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기 부끄러워도 그 잠깐의 부끄러움에 후회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이 일을 이후로 아무리 피곤해도 곁에 가서 몇 번 더 말해주고, 관심을 써주니 엄마의 모습이 한결 나아졌다. 참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엄마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자식으로서.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는 한 인간으로서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잠깐의 관심과 표현은 누군가의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소중함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