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 목놓아 울고 싶었어

나 자신이 미워서, 그 미움을 가족에게 돌려줬다.

by 마이데이

어른이 된 이후부터였을까. 스무살 이후, 연말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할 때, 혼자서 무언가를 자꾸 생각하며 걱정이 많아진다.


주변 친구들이 직장에 들어가거나, 자신만의 과정에서 해내는 것들을 보면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싶었다. 괜한 씁쓸함과, 공허함을 곁들인 자책을 하기도 했다.


대학을 간 이후에는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중에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래도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벼락치기를 하기 일쑤였고 자연스레 성격이 괴팍해졌다. 무엇보다 나는 예민한 상태의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안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급격한 짜증이 생기고, 몸에 열이 많아진다. 잠도 잘 못 자며 너무 예민해서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깨버린다. 그래서 가족끼리 있을 때 정말 별거 아닌 일, 사소한 자극에 펑 터져버렸다. 가족들은 이런 예민한 상태의 나를 피하곤 했다.


다행히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을 받다 보니 예민함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마 심리학을 배우지 않고 다른 일을 했다면, 상담을 받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절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자책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게 뻔했을 터다.


점점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럴까? 또다시 생각이 많아지고, 할 일이 많은데 자꾸만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가 뭘 해야 하는지 자주 까먹게 되었다. 예를 들어, A를 하려고 생각하면 3초도 지나지 않아 B에 대해 생각하며 금세 해야 할 일을 잊었다. 그렇다고 B를 하진 않았다. 또다시 C를 생각하고, 어떠한 일을 제대로 실행하지도, 계획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내 나이 26.(만 나이 24) 어쩌면 ADHD인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끈기부족, 불필요한 움직임, 산만하며 충동적임. 반박할 말이 하나도 없다.

요즘의 나는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다. 그냥 동굴 속에 쉬고 싶다. 누워서 푹 쉬다가 올해가 지나가길 빌고 싶을 만큼 다 놓아버리고 싶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미루는데, 머릿속에서는 하루 온종일 생각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해야 하는데 아, 한심하다. 짜증 나. 뭐 하는 거야?'

'.. 하기 싫어. 해야 하는데 진짜 싫다. 하지 말까?'

이런 생각에 빠져 살다가 지쳐서 생각을 포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불안해지고, 짜증이 났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No라고 외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힘들다. 바빠'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막상 대학원 동기를 보면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조바심, 두려움이 덜컥 났다. 정작 공부는 안 하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대학원 동기들에 비해 젊은 나는 시간을 쓸모없게 사용하고, 모든 순간을 낭비하며 사는 기분의 반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참 짜증 나고, 어쩌라는 건가 싶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말하기가 참 애매해서, 말하지도 못했다. 남들 앞에서는 웃고, 성실한 모습을 보였으나 사실 속에서는 갈증이 나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답답함과 괴로움이 쌓여갔다. 결국 시간이 생겨도 하루종일 미루는 나에게는 오직 핑계만 늘어갔다.


'내 기분은 뭘까.. 나는 뭘 원하고 있는 거지? 내 상태는 뭘까.' 참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잔잔한 노래, 울적한 노래를 찾아들었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뭔가 위안이 되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와 함께한다는 기분이 들었던 거 같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한숨을 쉬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화요일 상담 사례회의를 듣게 되었다. 특강은 정말 유익했다. 완벽하기 그지없었고, 박수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문제는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하루 온종일 맴돌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계속 생각하지? 싶다가 문득 대학생 시절 자주 했던 되뇌던 문구가 떠올랐다.


'무언가 자꾸 신경 쓰이고, 생각나는 건 그걸 알아달라는 신호다.'

어떤 부분이 신경 쓰였지? 돌이켜보면 '인지하기 힘들면 감정을 타당화하라'는 조언과, '이해와 수용은 다르다'라는 말이었다.


요즘의 나는 24시간 생각하고 사는 사람 같았다. 자면서도 꿈에서 자꾸 무언가를 하고 있으며, 일어나면 늘 피곤하고 잠을 잔 거 같지 않았다. 무기력이 점점 늘어난다는 게 몸으로 체감된 것이다. 이런 생활의 반복은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계획은 별거 없어도, 심리적으로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달며 그것들을 아주 성실히 실천하는 부지런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타당화하고 싶었지? 스스로를 탐구해 봤다.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나 확인해 보니 그제야 보였다. 나의 모든 일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좋은 결과물, 성공적이어야 하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 이것들을 수행해야 내가 쓸모 있는 하루를 살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게 무서워서 하지 않았고,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덮어버린 채 혼자 아파했다.


그래서 나는 할게 많으면 늘 예민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내 기준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으니까. 사실은 이런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결국 인정받지 못한다는 답답함, 분노에 그만 가족에게 폭발적으로 화내거나, 멋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덜컥 수용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불쾌함, 적대감을 느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수용받길 원했구나..'

깨달음과 함께 울컥 눈물이 났다.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잔잔한 울림, 전율이 느껴졌다.

이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편안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신체적으로 가슴이 차분해지고, 숨 쉬는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이 차분함이 주는 의미는 나를 이해했다는 뜻이자,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왠지 모를 안도감이 놓였다. 한편으론 지금의 나에게는 시간보다 마음을 더 신경 쓰고 가꿔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감정을 아니까, 이런 내 모습을 더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떤 감정 때문에 힘들다면, 그것을 느껴보고 꼭 안아주자. 내 자양분이 되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진심으로 대한 감정은 삶에서 진실되게 돌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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