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
#자기인식과 #자기이해
잘못된 신념을 깨는 과정은 결국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가 필요한 과정이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미 어떤 가정의 테두리 안에 놓여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랐고,
‘엄마’라는 이름의 따뜻한 품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평범한 가정의 소소한 행복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을 흘려보냈다.
이혼을 선택한 것도,홀로 아이를 키우기로 한 것도
결국 어른의 선택이었지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 던져진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언니만 그걸 모를까.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에게
“이해해 달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가혹한 인생의 장난질이었을 뿐이다.
“너를 이만큼 키웠으니 나는 충분하다”는 말은
진짜 힘든 순간에도 상처 입은 아이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짐이 되었을 말이었다.
“나는 해주고 싶은 건 다 해줬는데,
왜 쟤는 저럴까?”
“이모, 결혼해 보니까 알겠더라.
자식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갔지만, 변하지 않은 사고방식 앞에서
조카 또 한 번 좌절했다.
정작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힘들었던 기억만 붙들고,그 기억으로 자식에게
위로와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자식은 원래 보상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였다.
조카의 말이 뇌리에 멤돈다.
“차라리 거리를 두고 안 보는 게 속 편하겠어!.”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말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이해받고 싶어 했다.잘못된 신념이 오래 쌓이면
아무리 좋은 말도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더 답답했고 더 안타까웠다.
내 언니이자, 내 조카라서 마음이 더 쓰였다.
조금만 더 유연하게, 조금만 더 열린 시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내가 본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아는 게 틀릴 수도 있다.”
나는 적어도
겪어보지 않은 인생을
쉽게 판단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어쩌면 지금 이 글도
모순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은
완벽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심과 성찰 속에 있다고 믿는다.
방금 전 통화로
수화기 너머 언니의 하소연을 듣다가, 속이 뒤집혀 열변을 토해도 벽을 향해 말하는 느낌이였다.
이제 막 새내기 엄마가 된
조카는 얼마나 답답할까.
“이모, 내가 원하는 건 반찬이 아니야.
얼굴 한 번 더 보고, 자주 이야기하고,
같이 웃어주는 거야.”
조카의 넋두리와 언니의 하소연이 겹쳐 들려 온다.
그 소리가
계속 귓가에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