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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Nov 16. 2023

달리기와 마주한 낯선 남자의 향기

아직도 나는 여자이고 싶다.

아직도 여자이고 싶다.

매일 5킬로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자.

적당히 힘듦을 즐길 줄 하는 여자,

고통 없이는 열매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여자

인생의 참 맛과 쓴맛을 즐기는 여자였다. 


언제부터인지 부족한 나를 끌어올리려 고군 분투 중이었다. 새로운 하루로 정해진 루틴을 만들어 하나씩 처리하며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데 큰 의미를 찾는 삶 말이다. 그로 인해 매일 정해진 5킬로를 달리며 완주한 결과물을 '커뮤니티" 공간에 인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역 꾸역 나 자신을 데리고 뛰는 순간 떠도는 생각 주머니가 열리면서 나와 친해지는 시간도 행복했다. 그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을 올리고 성취감을 찾아려 아등바등 중이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해 질 무렵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 시원한 바람맞으며 달리던 나의 모습을 누군가는 예상치 않은 모습으로 지켜봤나 보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정해진 페이스로 적당히 힘듦을 견디며 달리기 때문에 오고 가는 나그네의 모습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나였다. 달리기 인증을 한 지 두어 달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나를 응해주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늘어나 있었다. 첫 달은 이른 새벽에 달렸고 나중에는 일찍 일어나기 부담스러워서 늦은 오후로 자유롭게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은 '파이팅'을 외쳐 주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하고 그 누군가는 "잘 뛰시네요" 하며 힘찬 격려의 응원을 해주는 상황과 마주하는 일상이었다. 아마 꾸준히 달리기하는 내 모습을 이쁘게 봐 주었나 보다. 또 어느 날은 생 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앞에 달리고 있어서 같은 동지애라도 피워 오르 듯 말을 시키며 함께 같은 길을 달리기도 했다. 바쁘거나 지친 일상에 하루 이틀 운동을 건너 뛰고 나서 다시 익숙해진 자연 속으로 몸을 향했을 때 어떻게 아셨는지 나의 빈 공백을 정확하게 쾌취 하시는 분이 있었다.


" 왜? 아침에 운동을 안 나오세요"


가끔씩은 늦은 밤까지 잠 못 자는 날이면 이른 새벽에 깨어날 여 럭이 없어서 운동을 저녁 시간으로 미루는 날이 늘어만 갔다. 그런 나를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 날인가 한번은 달리기 방향을 반대로 달린 적이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에 아련한 여운이 남았다.


"나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달리시나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는지 획 던지고 간 말에 긴 울림을 남겼다. 워낙 달리는 속도가 있어서 한마디 대항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스쳐갔다. 그 의문의 꼬리표를 떼는 되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늦은 밤이면 몸에 에너지가 없어서 달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나였지만 그 어느 때와 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싱그러운 자연과 눈 마춤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침에 왜? 안 보이세요?"


지난번과 똑같은 안부 인사를 전하며 호주머니에서 작은 지퍼백에 하얀 종이가 담긴 물건을 건네줬다. 수줍은 듯 건네는 그이 얼굴을 유심히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달리다가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5킬로 달리기를 완주했고 나중에 그 사람의 체취가 담긴 물건을 열어 보았을 때는 뭉클거리는 찡한 감동이 머물다 갔다..


"꼭 연락 주세요, 뛰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이쁘고요. 점심 한 번 살게요."


그렇게 낯선 이의 핸드폰 번호가 내 주머니로 살며시 옮겨와 있었고 어느새 편한 내 침실 공간까지 파고 들어와서 나에게 설렘과 즐거움이란 단어를 선물하고 잠깐이지만 내 마음을 앗아갔다. 이걸 아는 이는 늘 엄마의 삶을 응원하는 딸아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때 딸아이의 말이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팬이니까 한 번 정도는 만나줘"


그런 답을 해주는 딸아이의 열린 사고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참 낭만을 아는 녀석, 삶을 즐길 줄 아는 녀석 이였다. 어느새 메모장을 화장대 서랍에 고이 모셔놓고 잊고 있었다.

햇살이 유난히 뜨겁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어느새 동탄 호수 공원의 풍경들도 예쁘게 묽든 단풍들로 탈바꿈을 했다. 딱 한 달간의 시간 동안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내 마음에도 허전함이 찾아왔는지? 살그머니 가을이란 녀석과 동행하다 보니 쓸쓸함과 추억을 꺼내오며 잊고 있던 종이쪽지가 생각났다. 딸아이의 용기 있는 발언도 한몫했고 어느새 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날도 달리러 갈려는 찰나에 나를 멈춰세워 문자를 남겼다.


"시간 되시면 차 한잔 사주세요"


긴 말이 필요 없는 짧은 문자였고 해석할 필요도 없이 딱 거기까지의 마음을 열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호감 가는 쪽지를 줘서 아마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가을 타는 중이었을 가? 한참을 달리고 나서 문자를 확인했다.


 "내일 점심도 괜찮고 저녁도 괜찮습니다"라는 답이었다.


"내일 점심 사주세요"


그렇게 우린 새로운 방향으로 낯선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매일 하던 대로 블로그에 사소한 글 한편을 올리고 여유 있게 외출 준비를 하려는 순간에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 통에 반가움으로 대신했다. 너무 오랜 세월 연락을 안 한 탓인지 그 간의 힘든 상황을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말을 무의 자르듯이 절단할 수 없어서 시간이 허락한 만큼 내 마음도 열어 보였다. 정말 준비할 시간이 15분도 남지 않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평상시 입던 청바지와 티셔츠 위에 청 재킷으로 걸치고 대충 덧바른 화장기로 거울 볼 여력이 없이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잊고 있던 설렘과 약간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아마 이쁜 여자로 보이고 싶었나 보다.


약속했던 장소에 미리 대기해 있었고 달리기하면서 몇 번 마주했던 상황이라 얼굴은 알고 있었다. 운전대에 앉은 그의 모습은 오래된 가족 재킷에 목에는 단순한 스카프로 멋을 잔뜩 낸 솜씨가 풍겨져 왔다. 뭐 먹고 싶냐 물었으며 결론은 아는 데가 없어서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봉담에 있는 불닭집이 유명하다고 슬며시 내 의견을 물었다. 뭐든 다 좋다고 하고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오랜 된 노래로 메웠다. 낯선 타인과의 만남이 어색할 즈음 가볍게 몇 마디 말을 던졌는데 또 한 번 짜릿한 전기 흐르는 것 같았다.


"메모지 주고 후회 많이 했지요? 얼굴 마주칠까 봐 운동도 피해 다녔어요"


연락 줘서 고맙다


는 멘트 정도로 쑥스러움을 표현했다. 묵혀 놓은 심경 고백 같은 말에 혼자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그렇게까지 했을까?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나? 하는 약간의 미안함이 올라왔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 가끔씩 취미가 뭐냐? 뭐하고 하루 보내냐?로 신상 조사를 하다가 조용한 침묵의 어색함과 잔잔한 노래로 어설픈 만남을 이어갔다. 몇 번이나 나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그였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그 근처 친구를 불러내도 되냐 물었다. 별 상관이 없어서 편할 대로 하라고 말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맛집 주차장에 미리 나와 있었고 빈자리가 거의 없는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들어갔다. 푹 익은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은 고수한 김치찌개 냄새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메뉴를 시키고는 모르는 친구분의 말 재간에 넋이 나갔다. 어색한 만남이 깨졌다. 입담이 좋은 친구는 자기가 서비스학과를 나왔다며 김치찌개를 떠주고 셀프 코너에서 떨어진 음식을 퍼 나르며 웃긴 얘기를 늘어놓느라 지루한 틈이 없었다. 

친구와 반대로 조용하게 밥을 먹으면서 나더라 달리기하는 모습에 반했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아니 그 친구는 나의 사연을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 아마 미리 고민 상담을 했을듯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나는 또 다른 낯선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 만의 웃음보따리가 터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본 낯선 남자들 앞에서 후적 후적 김치찌개를 밀어 넣었고, 상추에 불고기와 파채와 양파를 올려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입을 크게 벌려서 어근적 먹어 재꼈다. 배도 고팠고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한 나로 변해있었다.


불현듯 내민 "귀엽고 예쁘며 성격도 명랑하다"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살면서 함께 사는 우리 반쪽에게 이쁘다는 말을 들어보기나 했는지? 아니 설렘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즐기는 나였다.


훈훈한 분위기로 친해질 무렵 자리를 옮겨서 확 뚫린 야외에서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조금은 알듯 모를 듯 낯선 만남을 즐기는 나였다. 부끄럼거나 어색하기는커녕 잘도 말장난을 맞추고 환한 미소와 함께 웃고 있었다. 아마 불러낸 친구 분하고 열띤 재테크 대화로 이어져 부동산과 주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옆집 아저씨랑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젊은 청춘들의 고충을 주체로 한참을 떠들었고 자영업 사장님의 힘듦에 관해 허심 탄하게 얘기를 나눴다. 나를 부른 그 사람은 조용한 침묵으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고 살며시 옆에 있는 빵을 때워 쑥스러운 듯 내 손에 쥐여줬다. 우린 그렇게 잠깐이나마 삶에 대해 논하며 잊지 못한 추억의 한 장면을 남겼다.


어느새 집으로 향하는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어색한 정적에 한참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참 민망했다.

분위기를 친구가 뛰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얼마 안 남으면 내려 할 상황이라서 우린 그렇게 마지막을 침묵으로 보내다가 힘들게 한마디를 던졌다.


 "또 연락해도 될까요?"


 어떤 말로도 답을 할 수 없어서 입가에 미소만 남긴 채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작별을 고했다.


시끄러운 음식집에서 그 사람이 한 말들이 이제는 퍼즐처럼 짜 맞혀졌다.

"파이팅"을 외치던 사람도..


"잘 달린다"라는 용기를 주던 사람도

"자기 때문에 반대로 달리냐"라고 황당한 질문을 하던 사람도

"아침에 왜 운동 안 나오냐"

라고 사소한 안부를 묻던 사람도 알고 보니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오로지 내 목표에만 집중해서 달리고 있는 상황이라서 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대화만 기억에 남았던 나였다. 한 번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내 달리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그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평상시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고 외모에 신경도 쓰지 않고 사는 게 현실이었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뜨거운 햇살과 자연 벗 삼아 달리기로 일상을 함께해서 그런지 피부가 새까마해 변해버린 내 모습이 못마땅한 나를 데리고 사는 여정이었다. 꾸미지 않은 그런 나를 이쁘다고 해 주는 낯선 남자의 한마디에 감춰 쳤던 여자의 향기에 심장이 두근 걸렸던 것 같다. 묻어 놨던 설렘과 그리움의 낭만을 꺼내다 준 그분이 고마웠다. 그런 마음을 들키기가 싫어서 더 아닌 척 편한 친구분에게 집중하는 나였다. 예전이었다면 엄두도 나지 않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나였다. 정말 많이 변해 버린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전부 다 꺼내오며 사는 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인으로 남게 만들어준 그 사람의 안부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쓸쓸한 바람과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애틋한 추억을 소환해 오겠지? 


우연한 만남은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라 더 아름다운 거였다. 

딱 거기까지... 

살아갈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었다.

차마 쓰지 못한 사실은 그가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 말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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