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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Nov 20. 2023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지 않았다.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기분을 살피는 그런 친밀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서로에게 아픔을 전염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아들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저로 인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지? 미안한 속마음이 꺼내지는 상황이었다.


긴 시간 아픔을 참고, 방황의 끝을 견디며, 겨우 한 달에 한 번 예약된 병원으로 우린 몸을 실었다.

속 마음은 어쩔지? 모르지만 옆 자리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아들의 모습에 깊은 안도감을 내 쉬었다.

아들이 사소한 일상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냥 평범한 일상에서 얻는 작은 행복을 누리길 바랄 뿐이었다.


예약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평화로운 우후에 "신경과" 진료실에 발을 딛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사람들로 가득 메웠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었고 등치는 어른스러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호자 동반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등을 기대며 언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할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나를 향해 이번에도 아들은 불만을 하소연 해 되었다.

예약이 2시면 정확하기 지켜야지? 자기 앞으로 대기가 3명이나 줄 지어 있다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떠들어 됐다. 여러 번 이런 상황을 목격했기에 건성으로 건너뛰고 침착함을 지켜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앞사람 예약은  건너뛰고 아들의 이름을 호명하니 그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우리는 진료실 문을 노크했다.


씩씩하고 다정 다감한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 앞 환자의 여운을 버리지 못한 채 

아들에 대한 질문 공새를 늘어놓았다.  


"한 달 동안 별일 없냐는?" 


안부에 아들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를 힘들게 했어요.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으로 밤에는 잘 수가 없어요?"


이 말이 내 가슴에 뇌리 꽂았고 마스크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숨죽여 울고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늦은 밤이면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아들의 외침이 얼마나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려 깊고 배려 있는 아들이었다. 만성 통증으로 머리를 찌르는 아픔을 늦은 밤이면 가끔씩 불안한 기색으로 내 방을 찾아오곤 했다. 온 몸으로 부대끼며, 엄마가 힘들까 봐 자신의 방에서 혼자 아픔을 삼키는 시간이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참다 힘들면 가끔씩 나를 찾아와서 뇌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내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두려움과 걱정이 많은 아들은 힘든 세상의 걱정거리를 혼자 짊어진 듯 버티기 힘든 일상이었다. 

괜찮은 줄 알았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틈틈이 혼자 아픔을 견디는 아들이었다. 저로 인해서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싫었던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머리 두통의 강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통증의 세기가 점점 커진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두근거렸고 가슴으로 흐느끼는 내 절규는 숨이 꽉 막히는 답답함이었다.

"아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뭐였을까?"


그토록 아들을 괴롭히는 게 뭐였을까?"


'어떻게 해야 통증을 없앨 수 있을까요?'


아들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겨내고 싶은 욕구를 보았다. 살아보려는 발버둥이 느껴졌다.


"통증을 없앨 수는 없지요.?" 

그냥 그 통증에 집중하지 말고 다른 거에 몰입하면 통증의 강도는 줄어든다는 말이었다. 

아들은 통증 때문에 다른 거에 집중을 할 수 없다고 맞 받아쳤다. 


"뜨거운 불 덩어리를 앉고 사는 느낌이다"

라고 표현하는 아들의 말에 얼마나 삶을 힘들게 사는지? 안타까웠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약간의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자기도 가끔씩 편 두통을 호소해서 약을 먹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는 말에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아들에게는 힘이었고 용기였고, 삶의 희망이었다.

삶에 대한 아들의 애절함을 짧은 15분의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토록 힘겨운 시간들로 한 발 내딛는 아들의 욕구가 내 가슴에 박혔다. 자신도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일상이 답답한 상황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말없이 아들의 등을 토닥여줬다.


한림대 병원에서 주차등록과 처방전을 등록하느라 한 참을 넓은 복도에서 서성거렸고 약국을 향하기 위해 로비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 아픈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었다. 자리를 이동하고 약국으로 들어섰을 때 번호표의 대기줄이 지금 현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약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뭉치의 약봉지 꾸러미가 내 눈길을 끌게 만들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단 말이가?

위로라도 받아야할까?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우리의 삶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간이였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한 생기 넘치는 20대 초반의 우리 아들은 왜 그토록 삶에 반항하며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 다 내 탓만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꼬인 실타래를 풀 수만 있다면 대신 풀어주고 싶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온몸으로 아들이 견디고 느끼며 터득하고 삶의 방황을 잡고 하루하루를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마음이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아들의 마음 근력이 언제쯤 단단하게 지탱할 수 있을까?

4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나는 약이 없이도 삶을 꿋꿋하게 잘 이겨 내고 있는데 아들은 약과 실랑이하는 삶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 했다. 고통의 크기만큼 삶의 깊이도 묻어났으면 좋겠다.

자식의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피를 토하는 절규였다. 점점 좋아질 거라 믿는 희망하나로 오늘도 아들이 가는 길에 용기을 놓고 간다. 아들과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아들을 볼 수 있어서 그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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