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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Nov 21. 2023

미움받을 용기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나답게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남들 눈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

남들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은 단단한 마음 근육, 그거 하나면 된다.

밥그릇 개수만큼, 세월의 흔적만큼, 늘어난 나이만큼, 점점 삶이 자유롭고 편해질 줄 알았다


 험난한 세상, 온갖 풍파를 겪고 살다 보면 남들의 시선 따위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행동과 목소리를 높이며 세상과 잘 타협하며 살 면 되는 거였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고 오해였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가슴속에 새기며 사는 나처럼 남편도 남의 시선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내가 못 했던 말을 남편이 칼같이 똑 부려지게 정리하길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고 교만이었다.

차마 손쉽게 뿌리치지 못해서 우리는 이른 새벽 줄기차게 내리는 빗 줄기를 해치며 예식장과 반대 방향인 인천행 나들이를 떠났다. 보름 전 인천에 사는 작은 아버님이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화근이었다.


"결혼식 함께 가자, 좀 태우로 오면 안 되겠냐?"


황당한 부탁임에도 남편은 주말 결혼식에 함께 가자며 인천까지 모시러 오라는 작은아버지의 어이없는 호출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알겠다." 하는 쿨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어른의 부탁에 거절할 용기가 없어서일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나쁜 아내이고 말았다.

집에서 한 시간을 후진 상황이면 왕복 2시간의 아까운 시간을 길에 저당 잡혀야 하는 꼴이 벌어졌다. 

무슨 배짱으로 우리 신랑에게 그런 부탁을 하신 걸까?

속 좁은 나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아마 갑자기 어른이 전화를 하니 거절하기 민망했나 보다.



어느새 잔잔한 빗 줄기까지 퍼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본인이 선택했으면 웃으면서 운전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괜히 험난한 날씨와 거절 못 한 자신의 속상함을 나에게 짜증 한가득 털어놓았다. 


부부 싸움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심기가 불편한 남편의 마음을 맞추는 게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있다. 그만큼 운전은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안 들린다. 괜찮다.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다. 그럴 수도 있지? "


비움과 알아차림, 그리고 수용이란 단어를 붙잡고 숨 고르기 중이었다. 작은 아버지를 만나기 직전까지 우린 수많은 단어들 붙잡고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부부는 너무 편한 게 문제였다.


작은 아버지가 등장하고 난 다음부터 나는 침묵하는 다소곳한 아낙네로 변했다. 반대로 기세 당당한 남편은 아껴 놓은 이야기보따리가 그리 많은지? 쪼잘거리는 참새처럼 좀 전의 불평불만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어쩜 둘이 장단이 잘 맞는지? 뒷자리에 앉은 내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어 됐다.


무례한 작은아버지를 만나자마자.


"당신이 뒷자리 앉지 그래."라며 나를 밀쳐 내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 앉고 긴 침묵으로 조수 석에 앉아 가는 것보다는 두 분 만의 리그를 만들어 웃으며 운전하고 가는 게 나에게도 이득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싱글벙글 웃어 되는 남편의 표정에 약간의 배신감이 스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인천에서 다시 전주로 목적지를 리셋하고 운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평택 휴게소에서 멈췄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아침 식사를 먹자는 거였다. 또 한 번 의견 충돌이 일어났지만 이번에도 쿨하게 남편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천에서 작은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 7시 30분을 넘나들고 있었으니 미리 아침을 드시고 나오지 않았을까? 란 착각에 빠졌다. 나는 아침 한 끼 정도는 굶었다가 점심때 진수성찬의 음식을 즐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각본을 짜 놓았다. 나에게 맞는 연출 말이다. 전혀 두 분의 상황을 고려하거나 묻지도 않았다. 당연한 줄 알았다. 세상에는 말 안 하고 알아 봐주는 그런 당연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식 끝나면 뷔페에서 많이 먹으면 되지 꼭 아침을 먹어야 돼"


목구멍까지 내려오는 말을 꾹 눌러 참고 표정 관리까지 연기하느라 내 안의 나를 죽이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없었다면 고분고분 아내 말을 잘 듣는 남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은 아버님께 아침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나 보다. 아마 아버님과 꼭 닮아있는 모습에서 잊혔던 그리움과 추억과 살아생전에 못 해 드렸던 아쉬움을 한 바가지 퍼 오고 있었다. 슬그머니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고 얼마나 살지 모르니 용돈을 드려야겠다며 조용히 자기만 식의 통보만 뱉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얼큰한 우거지 해장국으로 너덜 너덜한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고 한참을 말없이 두 사람의 얼굴만 빤히 쳐다 받다. 지친 줄 모르는 남편의 말 줄기에 참 넉살도 좋고, 언변과 임기응변까지 남편의 숨은 능력을 꺼내 보였다.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변을 토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마음을 바꾸니 어느새 내 마음도 평안한 바다처럼 진정이 되어 가고 있었다. 험난 파도가 휩쓸고 간 다음에 고요한 바다와 마주했을 때의 느낌말이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하고 결혼식 장에 늦지 않게 잘 도착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중간에 또 우여곡절이 있었다.

작은 아버님은 우리 신랑이 너무 만만한 건지? 편한 건지?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결혼식 끝나고 올라오는 버스표를 전주 터미널 들려서 예매하고 예식장으로 가자고 한다. 차는 막히고 운전은 힘들고 예식 시간은 다가오는데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작은 아버님이 야속했다.


너그러운 남편은 또 Yes였다.


남편이 예스맨도 아니고 내가 중간에 끼어드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척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작은 아버님이 너무 한 것 같기도 하면서, 연세가 있으니 이해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남편의 어리숙한 행동에 애간장이 타 들어갔지만 애써 태연한 척 일관하는 상황이었다.


상대방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상대방의 마음을 최대한 다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사람, 남편이 만만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울 필요는 없다.


불현듯 시간을 확인하고 9시가 넘은 듯하니, 딸아이에게 전화해서 버스표 예매를 부탁했다. 전주에서 인천행 고속버스, 직접 가지 않아도 핸드폰 하나면 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신랑은 답답할 정도로 거절 못 하는, 아마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주말이라 9시 넘어서 일어나는 딸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한 위기를 지혜롭게 넘겼다. 


세상과 자연, 그리고 나와의 관계 속에 깨치고, 부대끼고 상처받고, 그러면서 삶은 공존한다. 그래서 적당히 거절하고 타협하는 용기가 내 안에 꿈틀거려야 자신의 삶이 한 결 수월하다. 


'내가 되고 싶은 나, 사람들이 원하는 나, 내가 사랑하는 나, 내가 빚어내는 나, 남들에게 맞추려는 나를 데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하고 망설이며 고된 하루를 살아낸다. 아직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런 남편이 안쓰럽다. 


다시 갇혔던 프레임을 꽤 부수고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뱉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안겨주며 살지 않았을까? 그냥 적당히 주어진 고난 속의 나와 타인과 타협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을 힘들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신랑은 그걸 수용하고 행동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 의견을 짓밟는 행동 때문에 내 마음이 출렁거릴 뿐이었다. 우리 신랑은 자신의 헌신과 배려 덕분에 작은 아버지에 대한 신임과 존중을 얻어냈을 수도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긴 안목으로 볼 때는 신랑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미 완성된 글 속에 떠돌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었다. 내 삶은 주인공이 나 일뿐이지 남편의 삶을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것만 인정하고 살자


그냥 내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문제였다. 지나고 나면 어떤 결과든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린 겨우 아무 일 없는 듯 북적거리는 예식장을 12시 정각에 들어갔다. 많은 일가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 신랑의 칭찬 덩어리를 꺼내 오며 "민영이가 고생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순간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고 왜 그렇게 내 마음대로 남을 조정하려는지? 늘 나와 함께 사는 남편이 많이 힘들었겠다란 생각이 스쳐갔다.


좌충우돌하는 인생살이에 내 안의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데리고 살기 잘했다.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자.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네가 응원해 줄 것이다"


나는 "미움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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