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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Dec 19. 2023

단추가 어디서 잘못 끼워진 걸까?

자식 지침서라는 정답지가 있으면 좋겠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얼마나 더 눈물을 보여야 할까?

얼마나 시린 아픔을 견뎌야 할까?

얼마나 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까?


엄마라는 이름이 너무 버겁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지? 억장이 무너진다.


잘못된 환경과 사고방식을 심어 줬다고 이렇게 쓰라린 상처를 오래 견뎌야 한다는 건, 삶이 참 잔인한 것 같다.


다 비우고 이런 글과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모진 녀석은 매일 책으로 읽은 감정 다스리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고난이 축복이다."

그런 개소리 집어치우고 고난은 주지 말라고 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의 총량은 똑같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기나 한 걸까?


아들과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 몇 시간째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안 한 녀석이 신경 쓰여 집어든 책에 집중력을 흩트렸다.

그것도 어제 아들이 엄마 생일이라고 싸늘한 바람맞으며 산책하던 내 발걸음을 붙들고 살며시 던진 말이 가슴 뭉클했다.

"엄마가 책 좋아하니, 꼬모 들려서 엄마가 좋아하는 책 직접 고르면 안 돼?"

자기 할 일에 바쁜 남편과 딸아이와 달리 일주일 전부터 엄마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속 깊고 마음 여린 아들이라 쓰라린 마음 움켜쥔다.

"네가 엄마를 위해 골라주면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거야?"

즐비하게 놓여있는 서점 입구에서 한 참을 끼웃거리며 고른 한 권의 책이 어제부터 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귀들로 가득 채웠다.

<아들이 골라준 생일 선물>


"어디 암벽 위에 자라는 나무뿐이겠는가.

살다 보면 우리 인생길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벽을 만나게 된다. 그 벽이 너무나 크고 단단해서 그 어떤 노력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으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동도 없는 벽 앞에서 소리치고 화를 내 봐도 남는 것은 지독한 좌절감과 상처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한 달에 한 번가는 병원 예약으로 약간의 긴장감을 앉고 예약시간에 도착했다.

각자의 질병을 앉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기실 의자에 한가득 앉아있었다. 바쁘게 부른 이름들 속에 한 명씩 원하는 방으로 입실하듯 사라졌다.

의무적으로 처방전을 건네주는 간호사의 분주함 빼고는 초조하게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의 긴 여운과 마주함이다. 우리도 사뭇 다르지 않았다.


10분 남짓 기다림과 마주하며 익숙해진 진료실에 들어갔다. 상냥하고 친절한 젊은 선생의 몇 마디 질문까지는 내 표정의 별 이상이 없었다. 아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좀 어떠세요"

아들의 말에 한데 쥐어 패주고 싶었다.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고통으로 삶이 힘들어요."

입만 살아서 쉽게 지껄이는 아들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또 내가 잘못된 편견을 갖는 걸까?

"고통의 정도를 1-10까지로 매기면 몇 점인가요?"

선생님의 질문에 아들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10"라고 외치고 있었다.

피가 거꾸로 오르는 불쾌감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또 출렁거렸다.


평화로운 순간은 잠시 잠깐,

의사의 질문과 아들의 답변에 얼굴색이 찡그려지면서 깊은 한숨과 짜증이 몰려와 병실 문을 나오고 말았다.


진정시킬 마음도 없었고 그냥 입에서 욕 바기지가 쏟아져 나와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한 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지하실에 허덕이느라 갇힌 저 진료실의 오가는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옆에 있으면 더 어리강을 부릴 것 같기도 했고 내 마음이 견뎌 낼 힘이 없어 그냥 박차고 나왔나 보다.


"아들과 무슨 대화를 오갔는지?

다음에는 혼지 보내야겠다."

이런 속절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아들이 나왔다. 미리 꺼내놓은 카드를 손에 쥐어주고 최대한 말을 아끼려 했다. 서로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다.


진료실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릿 짐작을 했다.

카드만 주면 아들이 알아서 계산하는 터이라 머리가 아프다는 아들을 향해 MRI을 찍자고 했나 보다.

지하실이었던 기분은 저 깊은 수령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질료비가 40만 원을 일시불로 할 건지 묻는 아들의 답변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비는 이따 집에 가서 네가 입금해"

이제부터 너 인생 알아서 살아. 엄마는 여기까지만 엄마 노릇할게"

진심이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제 내려놓고 싶다.


뭐야~한동안 침묵하던 아들 방에서 잔잔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쉽게 쳐준 게 아니었을까?


큰 파도가 휩쓸고 간 현장에서 우린 각자의 방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못 먹고 병원을 간 거라 겨우 떡국을 끓여서 딸이랑 늦은 점심을 때웠다.

화가 부글부글 끓여 올랐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내 할 일에 집중하려 했다.

아들이 사준 책 속에 빠졌다가 스르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가, 마음이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 상화이였지만 이곳에 생각을 붙잡아 놓으려 아웅 성중이었다.


긴 시간 우린 각자의 삶 속으로 빠졌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들의 저녁이 신경 쓰였다.

한 끼 굶은 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살며시 거실로 나가서 아들 방을 향해 긴 침묵으로 망설였다. 지그시 새어 나온 문틈 밑 불빛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끌어당겼다. 그새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좀 전까지 다시는 먼저 다가서지 않겠다."

굳은 결심을 했는데 약해진 마음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침대에 철퍼덕 누워서 미동도 없는 아들의 모습이 또 한 번 무너졌다.

나를 보며 아들의 한마디가 칼로 베인듯한 통증을 느꼈다

"죄송해요 엄마"

그냥 두꺼운 옷깃을 토닥거리며 고장 난 수도꼭지 마냥 껴안고 울었다.

신이 있다면 정답을 알려 줬으면 좋겠다.

얼마나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 줘야 할까?

부모라는 봇짐이 무겁다.

"타자분리"

아들과 나를 분리시키고 싶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일상이 너무 밉다.

아니, 내 교육 탓 만 같아서 과거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상황을 바꾸고 싶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맞지만, 아들의 인생은 내가 어찌할 수 없어서 지켜보는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

언제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지금 아들을 위한 선택이 뭘까?

살며시 희망이란 끄나풀을 놓고 가면 좋겠다.

이제 나도 지쳐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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